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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난공불락 로체남벽 원정대가 현지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오마이뉴스> 특집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로체남벽은 8516M로 현재까지 이 곳을 등반한 산악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로체남벽 원정대의 현지 체류 기간은 2006년 10월 25일부터 2007년 1월 6일까지 입니다. <오마이뉴스>는 21일 보내온 1신을 시작으로 4~5일 간격으로 원정대 소식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충직 대장을 비롯한 김형일, 성낙종, 안치영, 강기석, 최준열 대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 5100m 전진캠프의 오마이뉴스 깃발. '모든시민은 기자다'라는 깃발 너머로 아마다블람봉이 보인다.
ⓒ 한국산악재단
5200m 베이스 캠프의 노트북 컴퓨터가 11월 26일 동파되어 등반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위성으로 우리는 등반진행 소식을 <오마이뉴스>에 실시간으로 송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로체남벽 8200m까지 진출한 등반은 2006년 12월 27일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대원들은 철수를 하였다.

문화관광부, 외교통상부, 오마이뉴스, 월간 사람과산이 후원을 하고, 기아자동차(주)와 K2코리아의 협찬을 받은 로체남벽 원정대(단장 홍일식 박사)는 재단법인 한국아리랑문화협회가 주관하고 한국산악재단 주최로 2006년 11월 7일 카라반을 시작으로 장도에 올랐다.

▲ 거대한 로체남벽에서 깃털과 같은 캠프2의 텐트(오른쪽)와 등반중인 대원(왼쪽 점)
ⓒ 한국산악재단
세계 최고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로체남벽(8516m)은 정오가 지나고 오후가 되면 항공기 엔진 소음 같은 공포의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아마다블람의 추쿵쪽에서 시작한 바람은 미세한 모래 먼지를 동반해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지나 로체 남벽으로 매일 밤낮으로 맹렬하게 돌진한다. 그리고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남벽의 모든 능선에 눈 기둥을 만든다. 이번 등반의 최대고비는 혹한의 강풍과 낙석이었다.

12월 중순을 넘긴 등반 막바지가 되어 가면서 다들 고된 루트작업과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모래먼지의 강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다. 셀파들도 많이 힘들어한다. 그들은 고소(고산병)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우리 대원들보다 체력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 그들이나 똑같은 인간이다. 거대한 로체남벽의 위용 앞에선 바람에 날아가는 깃털처럼 나약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단적이다. 혹한의 강풍과 낙석의 악조건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멋진 등반이다.

정상 등정VS극한 극복, 잠깐의 의견 대립

▲ 한국 로체남벽 원정대 베이스캠프에서 한국팀 이충직 원정대장(오른쪽)과 일본팀 오사무 다나베 원정대장(왼쪽)이 한-일 협력 등반을 약속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 한국산악재단
한국 로체남벽팀은 출국전에 슬로베니아 토모첸센 루트로 등반 계획을 잡고 준비를 했다. 김형일 부대장(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강사)이 정찰에 나섰다. 우리가 준비한 자료와 정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김형일 부대장은 눈사태와 낙석 예상 구간과 캠프설치 위치, 주등반 루트와 비상시 탈출루트, 등반루트에 따라 우리가 준비한 장비를 비교한 치밀한 정찰 결과를 보고하였다.

대원들은 캠프1을 구축할 때까지 캠프2에서 갈라지는 러시아 루트로 등반할지 슬로베니아 루트로 할지에 대해 토론을 많이 했다. 등반 길이로 보아서는 러시안 루트가 훨씬 짧았지만 난해한 구간이 많아 보였다. 대부분 이 루트를 선호하는 듯했다. 특히 우리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일본팀과 같은 토모첸센 루트 등반에 대해 몇 몇 대원들은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다.

우리가 이미 이 루트로 등반계획을 하고 도착했지만 일본팀이 등반을 한다면 우리는 다른 루트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피니즘의 본질은 정상 등정보다도 극한의 조건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먼저인데 정상등정을 염두에 둔다면 히말라야 14좌 등정 최초 소동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며 격한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충직 대장은 로체남벽 자체가 이미 극한의 세계이며 여기서 등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시 고려해보자고 일단 격론을 봉합했다. 명령이 아닌 이 대장의 인내력과 설득력은 매우 논리적이었다. 결국 이 대장은 몇 일후 대원 전원합의를 이끌어 우리 팀은 토모체센 루트로 등반하기로 결정하였다.

캠프1을 한일 팀이 별도로 구축한 다음날 일본팀의 센다 부대장이 한국팀 베이스캠프로 찾아와 루트 공동 개척에 대해 김형일 부대장에게 의사를 타진하였다. 그리고 이 대장이 긍정적인 의사 표시를 하자 다시 일본팀 베이스로 돌아간 센다 부대장은 다나베 대장의 지시를 받아 다시 우리 캠프를 찾길 수차례 하였다.

이로서 한국 로체남벽 원정대 이충직대장외 6명의 대원은 일본의 오사무 다나베 대장외 6명의 로체남벽팀과 B.C 현지에서 루트 개척을 공동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

협력의 이유는 동일한 거벽 루트에 있어 먼저 오르는 팀에 의한 낙석 예방, 그리고 고산거벽에서의 경쟁심리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와 신뢰 훼손을 예방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루트개척에 한해 협력하며, 산소와 장비, 식량 등 물량은 각 팀에서 별도로 운송하는 등 완전한 합동등반은 아니었다. 그 이후 한국팀과 일본팀은 격일로 각 팀의 장비로 루트를 개척하였다.

잇단 낙석으로 대원 부상, 10시간 구출 작전

▲ 낙석을 피하기 위하여 온도가 상승하기 이전인 새벽에 등반을 시작하여 오전에 마친다.
ⓒ 한국산악재단
11월 17일, 우리 한국팀은 김형일 부대장을 선등으로 하여 처음에는 호기롭게 도전하였지만 막상 남벽과 마주치자마자 대원과 셀파 2명이 무더기로 공격하는 낙석으로 부상을 입었다. 강기석(안동대산악회O.B) 대원은 캠프2로 향하다 팔에 강력한 낙석을 맞아 팔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부터 6300m 직벽에 매달려 한일 합동으로 강기석 대원 후송 작전이 시작되어 저녁 8시에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낙석 공포를 피하기 위하여 새벽 1시에 일어나서 온도가 상승하는 오전 10시경 운행을 마무리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수시로 발생하는 낙석의 공포도 등반 한 달이 넘으면서 반갑지는 않지만 일상의 친구처럼 되어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벌써 등반을 시작한지 한 달이 넘은 12월 18일.

▲ 산소가 희박한 8050m 캠프3 휴식을 취하는 성낙종 대원
ⓒ 한국산악재단
낙석(落石)으로 인한 부상과 공포로 장비와 식량을 수송할 셀파들이 대부분 카트만두로 하산하였다. 이제 우리로선 헝그리 정신으로 버텨온 한계에 이른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공격이 될 것이다. 오늘 안치영(봔트크럽산악회) 대원과 강기석 대원, 그리고 고소포터인 파상보티와 함께 출발한다. 낙석으로 부상을 입은 강기석 대원은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20여일 동안은 팔을 쓰지 못한다. 회복이 다된 상태고 컨디션도 좋은 것 같다. 다만 그동안의 요양으로 급격한 고도상승시 고소적응이 우려스러웠다.

김형일 부대장의 선등으로 시작된 루트작업은 12월 18일 현재 캠프3(8050m)까지 완료된 상태다. 자신의 정상보다 팀의 정상을 위한 희생정신이 강한 성낙종(수원한울산악회) 대원이 전날 루트개척을 8050m까지 하여 캠프3을 구축하고 호흡기 후두 각혈로 하산하였다.

성낙종 대원은 전형적인 고산거벽 체질의 등반가이다. 낙석의 공포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대원들은 '떨어지는 낙석이 성낙종 대원이 무서워서 성 대원만 피해서 떨어진다'라고 할 정도이다.(기록 안치영 대원)

태그:#로체, #오마이뉴스, #난공불락, #등반,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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