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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원갑씨의 최근 저서 <한국사 제왕 열전> 표지
ⓒ 마야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는 수많은 제왕들이 이름과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사료가 분명치 않은 고조선들의 통치자들은 제외하고라도 무려 176명(고구려 28명, 백제 31명, 신라 56명, 고려 34명, 조선 27명)의 군주들이 역사의 전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로운 숫자는 썰렁한 기분마저 안겨준다. 이 숫자에 비해 역사를 빛낸 명군(名君)들이 너무도 적은 탓이다. 우리가 일상 생활권 안에서도 손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역사 속의 제왕들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역사의 빈곤'을 반영한다.

당대의 조건 속에서 온 백성과 더불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한 제왕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역으로 우리의 역사 발전은 민중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더욱 되새기게 한다.

아무튼 우리는 역사를 풍미한 왕조 시대의 제왕들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물론 이것은 우리만의 사정은 아니다. 왕조의 역사를 가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평범한 벌판의 고산준령(高山峻嶺) 같은 제왕들을 적은 수나마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소설가 황원갑(黃源甲)은 <한국사 제왕열전>(마야 간)이라는 책을 저술하면서 22명의 제왕들을 선정하여 다루었다. 일단은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우리 역사를 이끌어온 역대 제왕들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한국사의 여명기를 밝힌 고조선의 국조 단군왕검을 비롯하여 신라 시조 박혁거세거서간,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백제 시조 온조왕,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 발해 태조 대조영, 후고구려의 궁예왕과 후백제의 견훤왕, 고려 태조 왕건,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각국의 창업자 10명, 또 고구려의 태조왕과 광개토태왕, 백제의 근초고왕과 무왕, 신라의 진흥왕과 선덕여왕, 고려의 광종과 공민왕, 조선의 세종대왕과 정조 등 각국의 중흥조 또는 개혁군주 10명을 밀도 있게 다루었다.

여기에다가 실패한 리더십의 반면교사라 할 만한 백제의 의자왕과 비록 왕위에서는 쫓겨났지만 절묘한 외교술로 오늘날 한국 외교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조선의 광해군을 보태어 22명의 일대기와 업적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소설가 황원갑이 책의 목차에다 제시해 놓은 22명 제왕들의 업적에 대한 간략한 의미부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단군왕검 - 고조선을 개국한 한국사 최초의 리더
(2) 박혁거세 - 6부 통합으로 신라를 세운 개국조
(3) 동명성왕 - 동북아 대제국 고구려를 세운 개국조
(4) 온조대왕 - 부여의 맥 이어 백제를 세운 개국조
(5) 김수로왕 - 가야연맹 이끈 가락국 시조
(6) 태조대왕 - 고구려의 국력 신장기를 이끈 중흥조
(7) 근초고대왕 - 백제사 최대 영역 개척한 중흥조
(8) 광개토태왕 - 민족사상 최대 판도 개척한 고구려의 영주
(9) 진흥태왕 - 신라의 최전성기를 이끈 중흥조
(10) 선덕여왕 - 슬기로 나라를 이끈 최초의 여왕
(11) 무왕 - 백제의 중흥을 꿈꾼 영주
(12) 의자왕 - 백제 망국을 부른 비극의 군주
(13) 고왕 대조영 -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태조
(14) 궁예왕 - 고구려의 부활을 꿈꾼 난세의 영웅
(15) 견훤왕 - 백제의 부활을 꿈꾼 난세의 풍운아
(16) 태조 왕건 -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창업주
(17) 광종 - 고려 5백년 기틀 다진 제왕
(18) 공민왕 - 반원자주로 고려의 중흥 노린 개혁군주
(19) 태조 이성계 - 강력한 리더십으로 역성혁명 이룩한 창업주
(20) 세종대왕 - 조선왕조 문민정치 기틀 다진 성군
(21) 광해군 - 절묘한 외교술 구가했던 난세의 군주
(22) 정조 - 조선왕조 문예부흥기 이끈 개혁군주


소설가 황원갑은 매우 부지런한 작가다. 이미 이태 전에 환갑을 넘긴 데다가 건강 문제도 많이 생각하며 살아야 할 형편이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의욕이 참으로 왕성하다. 그는 오랫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수시로 현장 취재를 해야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공부와 연구에 게으르지 않아 한국사와 관련해서는 누구보다도 통달한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작가와 언론인 생활을 병행하며 오랫동안 자료 수집과 현장 답사를 통해 취재해 온 것들을 가지고 지금까지 한국사의 백미(白眉)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그리하여 소설 창작집들 외로도 지난 1988년부터 지금까지 <역사인물기행>, <민족사의 고향을 찾아서>, <인물로 읽는 한국풍류사>, <한국사를 바꾼 여인들>, <민족사를 바꾼 무인들>, <부활하는 이순신> 등 '역사대중화'에 기여한 저서들을 꾸준히 펴내 왔다.

이처럼 역사연구가로서 예리한 안목을 지니고 탁월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그는 최근에 펴낸 <한국사 제왕열전>에 대해 스스로 여러 가지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그는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의 리더십'이라는 이름의 '머릿글'을 통해 저술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사실 이들 역대 제왕이 우리에게 남겨준 정신적 유산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들은 무엇보다도 출중한 위기관리 능력으로써 유비무환·무비유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또한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한편, 법을 엄격하게 시행하고, 솔선 수범하는 리더십의 중요성도 일깨워주었다."

총 464쪽에 이르는 방대한 책의 표지에는 머리글의 한 부분이 명료하게 올라 있어서 저자의 저술 의지를 더욱 뚜렷이 가늠케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지상 과제는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는 최고 지도자의 칭호가 제왕이 되었든 대통령이나 수상이 되었든 만고불변의 원칙이다.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최고 지도자의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는 저자 황원갑의 이런 저술 의지에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이 말 속에 여러 가지로 얼비치는 것들이 있어 약간은 '고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리라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된다. 옛날 군주시대의 리더십과 오늘의 민주주의 시대의 리더십이 같을 수는 없다. 현대 사회의 복잡 난해한 구성 성분과 조건들 앞에서 군주시대의 리더십이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다.

또 저 군사독재 시절의 폭압적 리더십이 진정한 리더십일 리도 없다. 저 왕조 시대, 그리고 군사 독재 시절의 리더십과 오늘의 리더십은 근본적으로 성격이나 차원이 다를 터이지만, 왕조 시대 리더십에 대한 조명 작업이 오늘의 리더십 부재 상황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로 좀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저자 황웝갑은 명확하게 저술 의지를 피력하면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역사의 통렬한 교훈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데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또 "최근 우리나라가 처한 내외의 난국이 결국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근래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자질도 부족하고 리더십은 말할 나위도 없이 부족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올해 12월로 예정된 제18대 대선에서는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그러나 자신의 책이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만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국가 지도자든, 한 단체의 수장이나 기업의 경영자든, 또는 한 가정의 가장이든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리더십의 중요성에 관해 깊은 성찰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저술 목적임을 밝힌다.

▲ 저자 황원갑
ⓒ 지요하
황원갑은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제왕들의 일대기와 사적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사를 이끌어온 제왕들은 출중한 자질을 타고나서 비상한 리더십을 발휘한 최고 경영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사 제왕열전>은 한마디로 잘 읽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중견 소설가인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으로 인해 마치 단편소설집을 읽는 듯한 묘미도 얻게 된다. 어렵지 않게 읽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도 하면서 논술공부도 하게 되는 이점(利點)이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의 논술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요즘 방송사들의 치열한 대하 사극 드라마 경쟁으로 일반 대중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사극 드라마들의 역사 왜곡과 유치함은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사극 드라마들의 역사 왜곡 폐해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견 소설가이며 정통 역사연구가인 황원갑씨의 <한국사 제왕열전> 출간은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하겠다.

한국사 제왕열전

황원갑 지음, 마야(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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