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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 앞에서(10일 공개변론직전) 침목 시위하고 있는 이건우 재일국민선거권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일본측 간사(1997년 1차 헌법소원단 대표. 왼쪽)와 헌법소원 청구인 이수남씨.
ⓒ 백병규

"선거권 부여의 유일한 기준은 대한민국 국민이냐, 아니냐 하는 점에 있을 뿐입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들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 것은 다수의 횡포입니다. 다수가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이야말로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이고, 헌법재판소의 몫일 것입니다."

5월 10일 서울 재동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반이 넘게 진행된 공개변론 마지막 참고인으로 나온 동아대학교 방승주 교수(헌법학)는 재판관들의 질의에 마지막으로 이같이 답했다.

헌재는 이날 주민등록이 돼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주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 관련 조항이 위헌이라는 재일국민(재일동포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 10명이 2004년에 낸 공직선거법 제15조 2항 등에 대한 위헌확인소송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다수의 횡포로 침해된 소수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존재이유"라는 그의 진술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사건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판결 등으로 그 위상이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이들 사건을 통해 헌재 또한 대통령이나 국회에 버금가는 '권력기관'이란 인식이 강하게 각인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소수자 권리의 파수꾼'으로서 헌재의 존재이유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방승주 교수의 논리와 주장은 명쾌했다. 주민등록이 안 돼 있다는 이유로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다수자들의 횡포라는 것이다.

표 계산 때문이든, 혹은 권리와 의무 문제 등 어떤 명분을 들어서든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내에 거주하는 다수 국민들의 대표로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역시 다수파의 위세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소수자(재외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가 다수자들의 힘으로 소수자들의 헌법상 당연한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바로 헌법재판소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헌법재판소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진술이었다(사실은 헌재 본래의 역할이 그렇다는 것은 뒤늦게 관련 법조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방교수의 언급처럼 헌재는 과연 소수자들의 지킴이,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국회의 직무 유기를 헌재가 바로잡아 줄 것인가? 수십 년 동안 방기돼 온 280만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회복시키는 한국 헌정사상 기념비적인 결정을 내리게 될까? 세계화의 시대에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면서도 정작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민들에 대해 "현지에서 잘 적응해 잘 살려 해야지 왜 자꾸 쓸 데 없이 선거권 같은 것을 달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일관해온 한국정부의 황당한 '재외국민 현지화 정책'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는 일제 식민지시대 때 강제 노역 등의 이유로 끌려가 척박한 차별의 땅 일본에서 2,3세를 거치면서도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재일국민들의 한 맺힌 설움을 풀어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의 왜곡된 유산과 아픈 상처들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해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는 그런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10일 헌재의 공개 변론은 그 선택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숙고'의 장이기도 했다.

헌재는 최근 들어 매달 한건 정도의 공개 변론 일정을 잡고 있다. 하지만 '공개변론'을 꼭 열도록 돼 있는 국회나 정부와의 '권한쟁의' 사건이 아닌 이번 사건에 대해 헌재가 공개변론 까지 연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헌재로서도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헌재는 1999년 재일국민들이 낸 유사한 헌법소원에 대해 분단현실 속에서 북한과 북한 주민들 까지 선거권을 달라고 할 수 있는 혼란이 우려된다며 이를 기각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에 헌재가 청구인들의 청구를 받아들인다면 헌재의 판례를 뒤집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개변론 청구인측과 외무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리인의 진술과 함께 청구인측의 참고인, 그리고 헌재가 직권으로 선정한 방승주 교수의 진술과 함께 이들에 대한 재판관들의 질의 응답이 2시간 45분가량 진행됐다.

재판관들의 질의는 법리적인 쟁점과 함께 재외국민 선거를 실시할 경우 그 공정성 확보 문제를 비롯해 준비 기한 등 실무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 많았다.

헌법재판소는 빠르면 5월말 결심공판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재외국민선거권 어디까지 왔나?
이건우 재일국민 선거권 회복을 위한 시민연대 일본측 간사

어제 헌재에서 재일국민 선거권 공개변론을 보면서 조금은 가슴이 복받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일국민 선거권 문제를 제기한 지 12년. 처음에는 그 누구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신들은 군대도 안가고, 세금도 안내는데 무슨 선거권이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벽을 마주하는 듯 했다. 하지만 어제 헌법재판관 9분이 한결같이 변론인과 진술인들의 변론과 진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 성급할지는 몰라도 큰 희망을 갖게 됐다.

여기에서 다시 재일국민 선거권 문제를 구구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일본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재일국민, 나아가 재외국민 선거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일본의 재외국민 선거권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금년 7월에 일본 참의원 선거가 있다. 이 선거는 재외일본인이 처음으로 비례대표 의원과 지역구 의원을 함께 뽑을 수 있는 선거이기도 하다. 지난 98년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고 2000년 6월에 사상 처음으로 재외일본인이 참의원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비례대표의 투표만 인정되었었다. 그러나 해외 유권자들의 제소에 따라 지난 2005년 9월 14일에 일본 최고재판소가 국내에 있는 국민과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평등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재외선거는 중의원이 선거일 12일 전에 공시되고 참의원은 17일 전에 공시되는데, 재외일본인의 선거는 공시된 다음날에 바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왜냐면 국내 선거일에 맞추어 먼 곳에 있는 해외로부터 투표용지를 회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시되고 입후보자가 확정되면 바로 해외공관에서는 다음날의 선거를 대비해서 밤새워 가며 입후보자들의 자료작성에 들어간다고 한다. 유권자가 총무성의 홈페이지에서 후보자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하루 만에 후보자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 흠이다.

일본외무성에 의하면 이번 참의원선거에 올린 예산은 한국 돈으로 약36억 원이다. 주로 사용되는 내용은 선거일이 확정된 후부터 투입되는 주요 일본 일간지의 해외판, 현지동포지, TV, 라디오 광고 등이다. 이외에 투표소의 설정 비용, 투표용지의 분실을 피하기 위해 대사관 직원이 직접 가져가는 운반비 등이다. 유권자에게 개별통지를 안 하기 때문에 의외로 우편부담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우편투표의 경우도 우편료는 개인부담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관리하는 총무성도 약1억2천만원정도의 비용 발생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선관위와의 우편대나 재외선거인증의 발급비용 등에 쓰여 진다. 매년 10월1일에 실시되는 재외일본인수의 조사에 의하면 작년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일본인은 1,012,547명(영주권자:약31만 명)이며, 20세 이상의 유권자수를 75%로 추정하면 약 76만 명이 된다고 한다.

유권자는 3개월 이상 거주를 증명할 수 있는 임대계약서나 여권 등을 제시하여 재외선거인증의 발급 신청을 한다. 일본에서는 주민등록이 없는 영주권자를 고려하여 부재자투표제도가 아닌 재외선거인명부 작성이라는 법 조항을 신설하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명부에 등재되는 곳은 최종 주민등록지며 영주권자의 경우 본적지로 하고 있다. 우편투표의 경우 분실되지 않도록 국제특급우편의 이용을 권장하고 있고 투표용지 청구는 등재된 선관위에 개인부담으로 직접 청구하게 된다.

신청주의를 채택한 일본에서의 투표율을 보면 2000년도 참의원 선거 때의 신청률은 전체 유권자의 약10%, 투표율은 신청자 대비 29%, 해외유권자 대비 2.85%였다. 2005년 중의원 선거 때의 투표율은 신청률 25.82%, 실제 투표율 2.96%로 나타났다.
2005년에 사용 된 총 해외공관 수는 195곳이며 유권자의 편의를 위해 일본인학교나 일본인회, 상공인회 등의 사무실을 이용하는 것도 검토됐지만 빈 조약에 의해 해당국으로부터 경비를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공관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경비를 해야 한다는 점, 선거 입회인과 별도로 선거 관련 업무에 익숙한 대사관 직원이 선거현장을 관리해야 하는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는 보류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의 경우는 선거관리자 양성을 현지에서 실시하고 수많은 동포조직 사무실, 민족학교를 선거 때 활용한다면 우리의 투표율은 훨씬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재외일본인의 선거권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관료였다. 일본 관료들은 재외국민을 세계전략에 있어서 귀중한 재산으로 여기며, 영주권자에게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일국민선거권회복을 위한 시민연대가 활동을 시작했던 10여 년 전, 그들에게 관련 자료들을 얻기 위해 찾았을 때 일본 외무성의 관료들은 그 때 이미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같아야 한다고 역설했던 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일본 외무성은 해외 영주권자인 일본인들에게 이제 해외에서도 선거권까지 행사할 수 있으니 굳이 귀화할 필요 없이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냐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 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너무 다르다. 지금껏 한국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은 그나마 애국자일수도 있을 터인데, 한국의 외교통상부는 공공연하게 현지화를 유도하고 단기체류자들과 차별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하나같이 재외국민의 기본권인 선거권에 대해서는 야당 보다 훨씬 보수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국민기본권에 대한 한일 정부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헌법재판소가 부디 이번에는 일본최고재판소 이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차별하지 않고 단호히 지켜주는 법의 수호자임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재일국민 선거권에 대한 외교통상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술 요지

외교통상부 진술 요지

재외국민 선거권은 헌법에 규정된 권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당연히 실현돼야 한다. 특히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재외국민의 경우 가급적 조기 시행이 바람직하다.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재외국민의 경우 국민으로서의 의무 이행 등과 관련한 논란 가능성과 선거관리 등의 측면에서 해결돼야 할 난점이 있으나 다수의 OECD 국가들이 영주권자에 대해서도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는 점 등도 감안해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헌재가 1999년 3월 25일 결정에서 확인한 것처럼 현행 ‘공직선거법’의 관련 규정이 위헌이 아닌 이상 재외국민 선거권의 도입 여부, 도입 시기, 대상이 되는 재외국민의 범위와 대상 선거 등은 국회에서 논의 결정돼야한다. 특히 영주권자의 경우 단순히 국외부재자투표 제도의 도입문제가 아니고, 이들의 선거권 인정 자체와 관련하여 헌재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있으므로, 이 문제는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를 고려하여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술 요지

선거의 공정선 확보 문제

국외 부재자투표의 경우 인터넷, 우편, 팩스 등을 이용하여 부재자 신고를 받을 경우 제3자에 의한 허위신고 등이 이루어지더라도 현실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고하였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국외부재자 신고는 재외국민이 직접 관할 공관을 방문하여 본인여부를 확인받고 신고하도록 하고, 본인 여부가 확인된 신고자에 한아여 투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한편 국외부재자투표 결과 후보자의 당락을 좌우하게 되는 선거 상황에 이르게 되면 재외 선거인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이 과열될 수 있으며, 이 경우 교포사회의 분열, 선거인 매수, 금품 제공 등 부작용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국외에서 불법선거운동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선관위나 수사기관의 조사나 수사가 어렵고,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투․개표와 관련된 문제점들

국외부재자투표는 공관투표와 우편투표, 인터넷에 의한 투표방법을 상정할 수 있다. 인터넷 투표의 경우 보안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공관투표를 원칙으로 하되 우편투표를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공관투표는 체류자수가 많은 공관에만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는 방안과 공관의 관할 구역이 넓을 경우 광관 외의 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재일국민 헌법소원 경과와 배경

이번 헌법소원의 쟁점은 간명하다. 재외국민에게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 위헌이냐, 아니냐는 점이다.

재일국민선거권회복시민연대(대표 이건우)는 지난 1995년부터 재일국민의 선거권 회복을 주장해왔으며, 1997년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었다.

헌재는 1999년 이에 대해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거를 실시할 때 ‘공평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분단 상황에서 형식상 동일한 국민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가 선거권을 요구할 수 있으며, 재미동포처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민을 간 사람들은 스스로 국민의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기각했다.

그러나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등이 헌법상 국민의 지위로 선거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당서 헌재의 판단은 법리적으로도 무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실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 명백하다는 점에서 냉전논리를 극대화한 오도된 법리라는 지적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또 OECD 29개국 가운데 터키와 우리나라만 재외국민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전세계 100여개 국가가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에서도 선거관리나 선거절차의 기술적 문제 등을 들어 이를 거부할 명분도 퇴색하고 있다. 특히 신생 정부가 들어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도 재외국민선거를 실시하고 있다는 점도 헌재가 이번에 이 사건을 재고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이미 해외 단기체류자들의 부재자투표를 인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으며, 영주권자 까지를 포함한 재외국민에게 국정선거권을 부여하는 선거법 개정안도 다수 국회에 상정돼 있다.


청구인측 대리인 정지석 변호사(법무법인 남강)의 변론 요지

재일국민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 원칙은 아무런 차별없이 국민의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의 원칙에 따라 구성된 권력을 통해 실현된다면서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이같은 국민주권의 원칙이나 보통선거․평등선거의 원칙을 모두 위배하는 것이다.

또한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선거권자에 한해서만 선거인 명부를 작성토록 함으로써 재일국민처럼 국외에 거주하고 있거나 국내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선거권자들에 대해 아예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 않고 있어 명백한 위헌이다.

재외국민들의 경우 재외공관에 하도록 돼 있는 재외국민등록과 국내거소신고 등으로 주민등록을 대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민등록만을 선거권 행사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보통선거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납세·병역의무 선거권 주지 않는 이유 안돼

재일국민들이 납세의 의무나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선거권을 주지 않은 이유로 삼는 논리도 있지만 이 역시 잘못됐다.

우선 헌법상 기본권은 선거권을 포함하여 그 어느 것도 국민의 의무와 결부되지 않는다. 다만 법률에 의해 유예되는 경우에만 예외다.

게다가 재외국민이 납세·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세금은 이중과세 방지협약에 따라 거주국에 내면 본국에서의 납세의무가 면제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 대신 국가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소득에 납세해 국가 간 징세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개정 병역법에 따르면 해외 영주권자도 병역면제 대상이 아니다. 일반 국외체류자와 마찬가지로 병역이 연기되고 있을 뿐이다. 또 법 개정 이전에도 일정기간 국내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병역 의무가 발생했으며, 많은 재외국민들이 이에 따라 병역의무를 마친 바 있다. 청구인 가운데 한 명인 이 모 씨의 경우 재일동포 2세로 일본영주권자이면서도 병역을 마쳤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19살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어 실제로 병역을 필하지 않은 많은 젊은이들이 투표에 참가하고 있으며, 여성인 국민의 경우에는 병역의무를 들어 선거권을 제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선거의 공정성 관리는 국가의 책무

선거의 공정성 여부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일이며, 대한민국 형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도 국민의 일반범죄에 대해서는 효력이 미치는 만큼 물리적으로 수사와 공소제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재외국민에 관해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법적 제제와 구속력은 유효하다. 선거운동 기간 또한 적절히 연장하거나 인터넷 등 발전된 통신기술을 이용하면 된다.

북한추종세력 개입 주장은 근거 없는 허구

북한이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선거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그에 따라 북한 주민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법리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거나 대한민국 국적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국외에 재외국민 등록을 하고 있어야 하는 징표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이나 조총련 등이 선거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단기체류자부터 주자는 발상은 '불법적 입법'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에는 찬성하면서도 그 범위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국민은 제외하고 외교관, 유학생, 상사주재원 등 국내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단기체류자, 또는 일시체류자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에서 해외파견 군인이나 외교관 등 단기체류자부터 시작해 영주권자로 재외국민에 대한 선거권 부여를 확대해온 것은 보통선거의 원칙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 인식되고 확인된 과정이다. 뒤늦게 재외국민 선거권을 도입하면서 그 같은 절차적 잘못을 차례대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또 이런 주장에는 심각한 법률상 문제점이 있다. 주민등록법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주서나 거소, 즉 거주지를 옮기게 되면 주민등록을 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단계적 도입 대상인 재외공관원이나 상사주재원, 유학생, 그 가족들의 경우도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국외에 거주지를 정하는 경우이므로 주민등록을 통한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이라는 주민등록법상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당연히 자진신고, 혹은 직권으로 그 주민등록을 말소돼야 한다.

다만 영내에 기거하는 군인의 경우에는 그가 속한 세대의 거주지(집)에 본인이나 세대주의 신고로 등록할 수 있도록 돼 있으므로 군인들만 예외에 해당된다.

따라서 단기체류자들은 신고 절차가 명시돼 있지 않아 주민등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주민등록법상 말소돼야 당연한 대상인 만큼 단계적 도입론은 결국 당연히 말소돼야 할 주민등록이 형식상 남아 있는 위법한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인 만큼 법률적 타당성이 없는 위법적 입법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을 포기하고 있는 정부의 현지화 정책

외교통상부 장관은 헌재에 대한 의견서에서 "거주국에서 생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이주한 영주권자에게까지 선거권을 확대할 경우, 거주국에서의 정착 촉진을 통한 '현지화'보다는 정부의 각종 지원에 대한 기대심리와 과다한 모국지향성을 촉발할 가능성을 감안"하여 장기적으로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면서, 영주권자에 대한 선거권 확대를 사실상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외교통상부가 앞장서서 재외국민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국외에 있는 국민에 대해 차별적으로 투표권을 부여하여 결국 새로운 분열과 갈등의 불씨를 조장하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재외국민의 모국 지향성이란 결국 애국심의 발로이자 정체성의 자연적인 표출인데, 이는 정부가 국민의 '애국심'을 걱정하고 빨리 '현지화' 즉 '다른 나라의 국민'이 되라고 장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교통상부의 이 같은 현지화정책은 세계 각지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고 있는 재외국민, 특히 일본에서 온갖 차별과 박해를 견디면서 3대, 4대에 걸쳐서 우리 국적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일동포에 대하여

재일동포에게 일본에서의 영주권이 부여된 것은 한일간의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1966년의 한일협정에 의한 것이다. 1963년에 제정된 해외이주법에 의해서 외국으로 이민을 간 다른 나라들의 재외동포가 그 나라들에서 취득한 영주권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청구인들이 재일동포의 특수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은, 선거권 문제는 재일동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외국민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기본권은 그 국민이 가난해서 세금을 못 내도, 교육을 못 받아도, 몸에 장애가 있어도, 그리고 거주지가 다르더라도, 국외에 거주하는 이유가 자발적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제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국민에 대해서 폐쇄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국가 발전의 귀중한 자산을 사실상 무국적 상태로 몰아내고 영주권자들을 거주국에서 사는 외국인으로 취급하여 현지 동화를 촉진하여야 할지, 아니면 외국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겠다는 재외국민들에 대해서 선거권을 인정하고 함께 국가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는 국민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느 것이 바람직한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단순위헌 결정이 필요한 이유

청구인들이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해서 단순위헌 결정을 해달라고 요망하는 이유는 국회가 국외 부재자투표에 관한 규정이 폐지된 1972년부터 35년 이상 아무런 입법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재 국회에는 재외국민의 선거권에 관하여 5개의 법률개정안에 제출되어 있으나, 모두 재외국민의 선거권 보장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당파, 정파별로 재외국민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표계산의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바쁜 실정이다. 지금까지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부수된 입법촉구 기한을 지키지 않고 위헌상태를 방치한 예도 허다하다.

따라서 헌재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해서 단순위헌 결정을 하지 않고 헌법불합치 결정 및 입법촉구 기한 설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회는 또 표계산과 당리당략에 휩쓸릴 것이고, 결국 이번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법 개정을 하지 않고 300만 재외국민의 기대를 허공에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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