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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저절로 몸을 흔들게 만드는 팝송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실내를 때렸다. 음악이 신호였는지, 무대 안쪽에서 '통큰 언니' 두 명이 무대 앞으로 나와 포즈를 취했다.

두 언니의 얼굴은 달걀처럼 갸름하지 않다. 보름달처럼 동그랗다. 몸은 'S라인'이나 '쭉쭉빵빵' 같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통'이 크다.

그래도 두 언니는 보름달 같은 얼굴에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짓고, 통큰 몸을 우아하게 흔들며 당당하게 '런웨이(Runway)'를 걸었다. 패션 모델은 그렇게 당당하고 우아하게 걸어야 한다는 세상의 상식에 두 언니는 더없이 충실했다.

그런 모델의 모습이 기특하게 보였던 것일까.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박진창아 총감독의 목소리에도 리듬이 실렸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고개 숙이지 말고 천천히 턴!"

이 말에 맞춰 통큰 패션모델 임향(21)씨와 조혜임(22)씨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등장했던 모습 그대로 우아하게 퇴장했다. 붉고 노랗고 보라색의 조명이 무대 뒤로 사라지는 이들의 '넉넉한 등'을 비췄다. 이렇게 7일 저녁 7시 리허설 현장인 서울 패션아트홀은 통큰 모델들의 워킹과 현란한 조명의 움직임으로 뜨거웠다.

"날씬해도 뚱뚱해도 나는 나예요"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세상에는 참 많은 모델이 있다. 패션 모델이 있고, 광고 모델이 있으며, 누드 모델도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추가 특산물인 지역에는 고추 아가씨가, 마늘이 많이 나는 어느 도시에서는 마늘 아가씨가 탄생하고 또 소멸했다.

이렇게 많고 많은 모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얼굴은 달라도 몸은 '늘씬'하고 '날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늘씬하고 날씬한 몸을 향해 세상은 끈적한 욕망을 담아 '쭉쭉빵빵'이라 불렀다. 그리고 어느새 그 쭉쭉빵빵은 여성의 몸을 옥죄는 기준이 됐다.

그래서 이 기준에서 모자라거나 넘치는 여성들은 자신의 살을 저주하고, 외모를 부정했으며, 때로는 스스로를 학대하고 비하하고 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준비한 이번 빅우먼 패션쇼는 이런 자학적인 쭉쭉빵빵의 세계관을 뒤집고, 외모 지상주의에 딴지를 걸며,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축제의 장이다.

"그냥 저 스스로 당당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엄마가 말렸어요. '뚱뚱한 몸이 뭐가 자랑스러워서 그런 무대에 서냐'고요. 그래도 제가 즐겁게 연습하니까 엄마의 태도도 바뀌더라고요."

임향씨의 말이다. 그렇게 통큰 모델이 되는 건 쉽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하고 싶은데, 주변에서 말린 것이다. 어쨌든 임씨는 약 7대 1일의 경쟁률을 뚫고 20명의 통 큰 언니들에게만 주어지는 모델의 타이틀을 거머줬다.

임씨가 살이 찌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다. 학업과 진학 스트레스는 임씨의 몸을 "두 배 정도 불게" 만들었다. 다이어트 시도를 안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살이 줄지 않았고 오히려 삶에 대한 자신감은 반감됐다. 세상의 이런 저런 말은 비수가 돼 임씨 가슴에 꽂혔다.

"지하철 타고 가는데, 반대쪽에 있는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저 여자 진짜 뚱뚱하다, 옆에 가자 말자'고 하더라고요. 내가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닌데, 단지 덩치가 좀 크다는 이유로…. 이런 것 말고도 상처받은 적은 많죠."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임향씨가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모델로 나선 임향씨가 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현재 임씨가 착용하는 옷 사이즈는 '99'다. 이런 임씨에게 옷을 사는 일도 큰 스트레스다. 보통 매장에는 55 사이즈 옷들뿐이고, 좀 크다 싶으면 66이다. 이러다 보니 임씨는 여자 동생과도 자주 비교된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동생의 옷 사이즈는 33이다. 세상은 이런 임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동생이랑 반씩 섞어 놓으면 좋겠다."

여기서 반씩 섞는다는 건 당연히 임씨의 살 절반을 동생에게 주라는 뜻이다. 이런 상처는 임씨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무대에 서게 되는 20명 통큰 언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아픈 기억이다.

역시 빅우먼 패션쇼에 서는 송서희(20)씨도 황당한 일화를 풀어냈다. 송씨는 지난겨울 바에서 일을 했다. 살은 그 때부터 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라는 사장님의 압력이 시작됐다. 송씨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상처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송씨는 다시 웃었다.

"아니, 다들 왜 남의 몸 갖고 그렇게 말들이 많아요? 날씬했을 때도 나는 송선희고, 이렇게 '통통'해도 송선희예요.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해요."

언니들의 몸

음악에 맞춰 런웨이를 몇 차례 오간 모델 20명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저녁 9시께 끝난 이날 리허설의 마지막 무대는 춤판이었다. 음악은 밴드 자우림의 '하하하송'.

"모든 게 그대를 우울하게 만드는 날이면 노래를 불러보게. 아직은 가슴에 불꽃이 남은 그대여, 지지말고 싸워주게. 라라라라~ 후회는 저 하늘에 날리고~"

노래는 마치 20명의 통큰 모델들을 향한 축가 같았다. 이 노래에 맞춰 모델 강경미·김희정·윤효정·안수지·송서희씨가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1절이 끝나자 다른 모델들도 모두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박수를 치며 통큰 몸을 흔들었다. 노래 제목처럼 하하하 웃으며 말이다. 천장의 조명도 신나게 빛을 뿜으며 이들을 비췄다.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댄스공연을 펼치고 있다.
7일 저녁 열린 2007 빅우먼 패션쇼 '통 큰 엄마와 언니, 그리고 명랑 딸들의 축제' 리허설에서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댄스공연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통큰 언니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본 행사의 마지막 무대 음악은 아바의 '댄싱 퀸'이라고 한다. 이 음악에 맞춰 20명의 언니들이 자유롭게 춤을 춘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2007 빅우먼 패션쇼는 8일 저녁 7시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다. 사회는 개그맨 이영자와 여성학자 오한숙희씨가 맡았다. 가수 양희은은 축하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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