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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만난 바위채송화, 타는 목마름으로 꽃을 피우는 들꽃이다.
금강산에서 만난 바위채송화, 타는 목마름으로 꽃을 피우는 들꽃이다. ⓒ 김민수
바위채송화는 말 그대로 바위에서 피어나는 채송화다. 돌나물과에 속하는 바위채송화는 꽃모양이 돌나물꽃과 다르지 않지만 척박한 환경은 그들보다 더욱 더 진노랑색의 꽃을 피우게 했다. 소나무 이파리를 닮은 다육질의 이파리는 목마름이 더할 수록 붉기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빛나는 노란꽃과 잘 어울린다.

금강산 구룡폭포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바위채송화는 아직 조금더 기다려야 한다는 듯 했다. 비가 많고 위치한 곳이 적당한 그늘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푸른빛을 많이 띄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활짝 피어난 바위채송화를 만나는 것도 운치있는 일이리라 생각하며 바위채송화를 눈여겨 봤지만 하산길에 겨우 한 송이 피어낸 꽃을 만났을 뿐이라 허전했다.

삼일포 오르는 길에 만난 바위채송화
삼일포 오르는 길에 만난 바위채송화 ⓒ 김민수
그러나 삼일포에 들렀을 때 바위 곳곳에 바위채송화가 활짝 피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활짝 피어난 바위채송화를 실재로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활짝 피어난 꽃을 처음 만난 것도 큰 기쁨인데 더군다나 평생 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북녘땅에서 그를 만나다니 꿈만 같았다.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을 최선을 다해 피울 뿐이다. 때로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것들과 경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네 사람들처럼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는다.

비무장지대(DMZ)는 지난 분단의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경쟁하며 자랐지만 남북한 통틀어 가장 완벽한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의 삶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자연은 경쟁하지만 결국에는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타는 목마름 끝에 더욱 더 화사하게 피어난 바위채송화
타는 목마름 끝에 더욱 더 화사하게 피어난 바위채송화 ⓒ 김민수
바위 혹은 바람이 많은 절벽, 곤충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피어난 꽃들은 향기가 더 진하고, 빛깔도 더욱 화사하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틀리지 않는가 보다. 하늘의 별들이 땅에 흩뿌려진 듯, 은하수를 보는 냥 피어난 바위채송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행운이다.

여름밤 잘 말린 쑥대로 모깃불을 놓고 멍석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똥별이 떨어지곤 했다. 유성의 꼬리가 사라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던가! 그래서 무슨 소원을 빌까 생각하다 보면 유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떨어지고, 다 사라진 후에야 소원을 빌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너무 예뻐서 '와! 저기 떨어진다!'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다보면 어느새 내가 빌고 싶은 소원을 잊어버린 것이다. 간절한 소원마저도 잊게 하는 그 아름다움, 빛의 공해에 찌들려 살아가는 요즘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버렸다.

한 번 피었다 지는 꽃보다도 짧은 인생이건만
한 번 피었다 지는 꽃보다도 짧은 인생이건만 ⓒ 김민수
금강산도 그랬지만 삼일포는 바위들마다 이런저런 구호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남한측 안내원들은 그런 글귀들을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한 민족이긴 하지만 아직은 엄연한 독립국가로 서로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잣대로 바라보지 말라는 이야기다.

바위채송화와 바위에 새겨진 문구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한 번 피었다 지는 꽃보다 짧은 인생, 그래서 그 이름을 세세만년 전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가고 꽃은 남았다. 그리고 내가 다시 흙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간 내가 만났던 모든 꽃들은 이 땅 어딘가에서 피어날 것이다. 인생무상을 절로 느끼게 하는 한 컷의 사진으로 남을 것 같다.

바위에 무리지어 피어난 바위채송화
바위에 무리지어 피어난 바위채송화 ⓒ 김민수
그들은 평평한 바위에만 피어난 것이 아니라 수직의 바위에도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그들은 욕심내지 않는다. 너무 욕심을 내서 자신들의 세를 불려보려고 하는 순간에 그들을 부여잡고 있는 뿌리가 뽑힐 수도 있으니까.

현대인들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능력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더 풍요롭고 더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선이다. 그러나 진정 그럴까? 소유한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에는 소유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더 풍요롭게가 아니라 좀더 적게, 더 편리하게가 아니라 좀더 불편하게 살아감으로써 소유하는 삶이 아닌 존재하는 삶의 비결을 먼저 깨달은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무조건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더 큰 것, 더 빠른 것, 더 높은 것, 더 예쁜 것을 추구하던 삶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렇게 살기에도 짧은 삶이 우리네 삶인데 우리는 우리의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여 마침내 뿌리채 뽑혀나갈지도 모르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삼일포를 바라보며 피어난 바위채송화
삼일포를 바라보며 피어난 바위채송화 ⓒ 김민수
운이 좋았다. 삼일포를 방문한 다음 날 해금강을 들렀다가 다시 삼일포를 들른 것이다. 좀더 여유있게 걸으니 어제 보지 못했던 풍광들도 들어오고, 어제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느낌들도 느껴진다.

삼일포를 걷는 길에 산초나무의 연한 이파리를 따서 먹어보았다. 진한 산초의 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 역시, 남한의 산초이파리와 다르지 않은 맛이다. 그들끼리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들은 그들만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변질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분단의 세월동안 피차간에 너무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나 있는 것일까? 사람으로 살아야 꽃보다 아름답다 할 수 있을 터인데, 과연 나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일까?
#바위채송화#금강산#삼일포#해금강#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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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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