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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진 준이를 찾으면서 드디어 구멍의 위험성을 깨닫는다 <113회>
ⓒ MBC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이 내달 종영을 한단다. 속편을 제작하지 않겠다니 더욱더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킥이 인기를 끈 여러 가지 비결이 있겠으나 나는 극중 민용의 '옥탑방 봉구멍'을 빼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옥탑방은 극중 민용이 아버지 몰래 본가로 잠입해 들어온 곳이다. 극중 민용의 어머니 문희는 아버지 몰래 민용이 집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옥탑방 방바닥에 아래층과 직접 통하는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 봉을 꽂아 민용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고 봉에는 교묘히 마늘 꾸러미를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옥탑방 봉구멍은 그런 모성애의 산물이었다.

옥탑방 봉구멍이 등장하면서 극은 부쩍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등장인물들이 수평이동에 그치지 않고 이젠 수직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근 50년 TV 드라마 역사상 그런 집 구조는 없었다. 그 느낌이란 마치 외짝 스피커로만 음악을 듣다가 스테레오로 듣게 되었을 때의 그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봉구멍만을 직접 소재로 한 얘깃거리가 만들어졌고 매회 빠짐없이 그것에 얽힌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특히 봉구멍으로 두더지처럼 얼굴을 내밀고 말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의 뇌리에서 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옥탑방 봉구멍은 대사 없는 스타요 드라마 인기의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건설현장의 개구부, 개구부 추락으로 해마다 약 80명의 노동자가 생명을 잃는다
ⓒ 강태선
아무리 봉구멍 때문에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한들 '우리 집에도 구멍을 뚫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극중에서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내려오는 것은 또 어떤가? 심지어 소방서에서도 그런 구조는 피한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가면을 취하다가 갑자기 출동해야 할 경우 근육에 힘이 들어갈리 없다. 봉을 만지면서 추락하는 꼴이 될 테고, 사건은 소방관이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극중 윤호로 출연하고 있는 정일우가 그 구멍을 오르내리다가 다친 일이 보도된 바 있다. 사실 나는 봉구멍을 보면서 처음부터 걱정해 마지않았다. 아마도 건설현장에서 그런 구멍을 보았다면 당장 '작업중지'를 명했을 것이다.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는 많은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엘리베이터 또는 공조 덕트를 설치하기 위해 뚫어 놓은 것이 대표적인데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그러한 구멍을 '개구부'라고 부른다.

법에서 개구부는 즉시 폐쇄하거나 사람이 빠지지 않도록 안전난간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2004년에는 463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추락'으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중 개구부 추락사가 79명이었다. 여기에는 불과 2m 남짓 되는 높이의 개구부에서 추락한 경우도 상당수가 포함된다.

극중 민용은 116회에서 가족들에게 봉구멍 폐쇄를 선언했다. 이유는 사생활보호였다. 그러나 가족들의 극성스런 요구에 이내 조건부 허용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나 민용은 사생활이 아니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봉구멍, 즉 개구부를 폐쇄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무리없이 사생활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하이킥은 더 이상 시청율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될 만큼 최고봉에 올랐다. 종영을 앞두고 봉구멍을 완전히 폐쇄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구멍을 포기할 수 없다면 봉을 치우고 구멍주위에 안전난간을 만들고 수직사다리를 설치하는 것도 괜찮다. 시청자들은 극중 유미가 한 동안 떠난 것만큼 섭섭해 하겠지만 건설현장에서 지금도 거듭되고 있는 잔혹사를 마감하는데 효험이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강태선기자는 노동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 글은 김상진기념사업회 <선구자>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거침없이 하이킥, #옥탑방, #봉구멍, #개구부,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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