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경고음을 울렸다. "위기감 도는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음이다.
꽤 요란하다. "걱정이 태산", "의원들이…혀를 차는 지경", "정말로 한심한 작태" 등의 격한 언사를 거르지 않고 전했다. 험구를 숨기지 않은 사람은 세 명이다. 한나라당의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 나경원 대변인, 그리고 '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의 이석연 공동대표다.
<조선일보>는 세 사람의 혹평을 기초로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검증공방을 맹비난했다. "경선 후 양 캠프 간의 갈등 후유증으로 한나라당이 안으로 곪거나 본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양측이 경선이 끝난 뒤 본선에서 협력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요구사항은 간명하다. 상대후보 약점 들추기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짚을 게 생겼다. 원칙과 현실이다.
약점 들추기, 중단될 수 있을까?
언론이 검증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온당한지부터 따질 일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건 상대 후보 이전에 언론이 먼저 나서야 하는 일이다. 이건 당위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심하게 몰아칠 수는 없다. <조선일보>의 기사 표현은 정밀하다. "검증공방과 함께 상대후보 약점 들추기가 경쟁처럼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검증과 약점 들추기를 나눴다. "양측이 주고받는 언어들은 이미 같은 당에 있는 선의의 경쟁자 차원을 넘어섰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 언사가 문제라고 했다.
그러니까 선의의 검증공방은 괜찮지만 극언을 동원한 약점 들추기는 안 된다는 얘기다. 딱히 틀린 지적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그게 칼로 무 자르듯 확실하게 갈라지는 것이냐는 의문은 남지만….
보다 집중해서 짚을 문제는 현실이다. 과연 약점 들추기는 중단될 수 있을까?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어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다. 강재섭 대표가 두 캠프의 검증공방이 "한계에 도달하면 준엄한 결정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극단적 검증공방을 주도하는 두 캠프 소속 의원들에게 레드카드, 즉 출당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여운, 그리고 그 여운을 타고 긴장감이 흐를 법도 했건만 그렇지 않았다. 강재섭 대표 말이 끝나자마자 이재오 최고위원이 박근혜 캠프의 '의혹 부풀리기'를 격하게 비난하며 "최고위원을 그만 둘 수도 있다"고 했다. 박근혜 캠프의 이규택 의원이 맞받아쳤다. "모두 중립인데 왜 당신만 독불장군이냐. 경거망동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했다.
지도부의 제어력이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완충지대, 또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경선관리위원장조차 "걱정이 태산"이라고 할 정도다.
외부의 힘이 제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캠프 내부에서 자제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능해보이지 않는다.
상대 후보, 상대 캠프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좋게 말하면 '너희'이고 나쁘게 말하면 '적'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박근혜 캠프에서 추가로 제기한 게 있다. "이명박 후보가 전과 14범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이명박 캠프가 발끈했다. "현대건설 대표로서 벌금형을 받은 경우는 10여 건 있었지만…선거법상 공개하도록 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았다"고 되받았다. 그러면서 또 다시 '결탁 의혹'을 제기했다. "벌금 전과는 국가기관 외엔 못 구하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명박 캠프는 박근혜 캠프를 여권과 결탁하는 곳, 또는 여권의 공작에 놀아나는 곳으로 본다. 같이 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참는 모양을 보인다. 네거티브 공세를 모두 중단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박근혜 캠프는 이를 "검증을 안 받겠다는 소리(최경환 의원)"로 규정한다.
이명박 후보를 이탈한 표는 부동층?
박근혜 후보는 검증공세 덕에 지지율 격차를 10%포인트 안팎으로 좁혔다. 뒷바람을 받아 가속도를 올리는 판이다. 멈출 수는 없다. 그러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다음 달로 예정된 검증 청문회를 앞두고선 더더욱 그럴 수가 없다.
상황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흐름을 제어하는 건 사실상 무망하다. 오히려 흐름이 멈추는 곳을 쳐다보는 게 더 생산적이다.
홍준표 후보는 흐름이 멈추는 곳에 폭포가 있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의 지지율 모두 하향평준화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그것이 부동층으로 가고 있다"고도 했다.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이명박 후보에서 이탈한 표는 왜 부동층으로 도는 걸까? 이명박 후보 지지표 상당수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표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고 보면 이런 질문으로 대체해도 될 것이다. 왜 이탈표는 범여권으로 가지 않고 서성이는 걸까?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 범여권·반한나라당 후보를 정하지 않아서 그렇지 후보가 확정되는 순간 되찾아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홍준표 후보는 아니라고 한다. "뱀이 허물을 벗어도 뱀은 뱀"이라면서 "아무리 허물을 벗고 덧씌워도 국정실패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두고 볼 일이다. 밥 짓기도 전에 숟가락 드는 꼴이다. 반한나라당 후보가 과거의 '집토끼'를 되찾아올지를 잴 때가 아니다. 반한나라당 후보를 만들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명박-박근혜 캠프의 싸움이 폭포수를 이룬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용이 승천하는 곳은 아니다.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