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시사저널> 기자들(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 <시사저널>을 박차고 나와 독립 언론을 새로 창간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난감했다. 축하해야 하나 위로해야 하나. 1년여의 피땀 흘린 노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되나 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일었다.
그러나 안타까움도 잠시, 나는 그들의 새 길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한 언론인이란 족쇄 찬 죄인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전 <시사저널> 기자이자 '미래 독립 시사주간지' 기자들의 탈출만을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아직도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많은 언론인들에게, 그리고 왜 내적 언론자유가 중요한지 알아야 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모범을 보일 것을 믿기 때문에 그들의 장도를 축하하는 것이다.
시사기자단 도울 여건은 나아졌지만...
지난해 <시사저널> 사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뿌듯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 왔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소식은 1974년 <동아>·<조선>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동아·조선 투위 선배들처럼 의로운 항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나 가슴 한 켠에서는 혹 이들도 선배들처럼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일었다.
동아·조선 투위 사건은 독재 정권의 언론탄압 정책 탓에 발발한 문제다. 좀 더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에 편승한 사주들의 결정도 간과할 수 없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정치적 탄압은 사라졌다. 그러나 언론 산업을 좌우하는 다양한 자본이 의로운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이에 편승하는 또 다른 자본가인 사주가 벌이는 오늘날의 언론 행태는 동아·조선 투위 사건과 본질이 다르지 않다.
반면 전개되는 양상은 많이 다르다. 해직 후 취업까지 방해받았던 선배들과 달리 시사기자단은 최소한 자신들의 길을 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푼돈으로나마 정성들여 광고를 했던 그 엄혹한 시절의 이름없는 광고주들의 정성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시사기자단을 도울 수 있는 주변의 여건도 나아졌다. 새로운 매체의 창간을 도울 사람들의 경제적 여력이 과거보다는 더 커지지 않았겠는가.
또 한겨레신문 창간보다는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우호적인 조건이다. 현실에서 언론자유 수호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진정한 '독립언론' 독자에게 돌려줘야
하지만 시사기자단에 기우 삼아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사기자단은 독립 언론 18년의 자랑스런 <시사저널>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독립언론을 창간하는 그들의 미래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사기자단의 의로운 투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것은 <시사저널>의 자유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사기자단의 성공은 날이 갈수록 자본의 압력 아래 허망하게 무너져가는 언론 현실을 염려하는 이들에게 밝은 전망을 줄 것이다. 구 경인방송 노동조합원이자, 현 OBS 경인TV 희망조합원들의 3년여에 걸친 투쟁이 성공으로 끝났을 때 우리가 희망을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시사기자단은 그들이 창간할 매체가 과연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1년여 투쟁해온 그들에게 우문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본이 끊임없이 유혹할 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흥미라는 쉬운 길을 선택할 것을 요구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현실의 벽에 지칠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시사저널>에서 사장·사주와 대립했다면, 앞으로는 그보다 더 무서운 자본과 직접 맞닥뜨려야 할지 모른다. 지난 1년간의 투쟁과 독립언론 창간의 이유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시사기자단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쓸 것인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지난 1년간 시사기자단은 분명히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사기자단이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음에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20년 전 놓친 '창간 주주'의 기회, 이번엔 잡아야지
또 시사기자단은 전체 언론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해야 할 빚을 지고 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시사기자단과 함께할 사람들에게 진정한 독립언론을 돌려주는 것은 시사기자단의 의무일 것이다.
아울러 더 이상의 다른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언론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고자 언론개혁 진영이 노력하고 있을 때 시사기자단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시사기자단이 출범한 장소는 희망조합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그들의 꿈을 실현시킨 바로 그 장소다. 비록 짧은 기간이겠지만 희망조합원들의 꿈과 희망이 깃들어 있는 그 곳에서 새로운 독립언론의 기반을 닦기를 기대해본다.
고백하자면, 1987년 6월항쟁 시기에 나는 항쟁 현장에 없었다. 뒤늦게 군입대를 하는 바람에 그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6월항쟁의 산물이기도 한 <한겨레신문>의 창간 당시에도 어영부영하다 창간 주주가 될 기회를 놓쳤다.
시사기자단이 새 길을 가는 이 역사적 기회를 나는 다시 놓치고 싶지 않다. 시사기자단이 창간하는 새 매체에는 주주와 창간 독자로 참여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서중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