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와우도와 사선정이 보이는 삼일포 전경. '포'라는 이름 때문에 항구의 느낌을 주는 삼일포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와우도와 사선정이 보이는 삼일포 전경. '포'라는 이름 때문에 항구의 느낌을 주는 삼일포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 안경숙
구룡연 등정에 이은 오후 일정은 온천욕과 삼일포 관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거였다. 점심을 먹고 나자 몸이 나른해지는 게 온천의 유혹이 컸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데만 장장 11시간, 들인 시간이 아까워 몸을 추스른 나는 삼일포행 버스에 올라탔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온정리 마을이 보이고 옥수수를 심어놓은 들판과 개울물을 건너가는 염소떼가 보이고 하얗게 칠한 우체국과 조그만 소학교와 중학교가 스쳐 지나간다. 학교 운동장을 혼자 걸어가는 노란색 상의를 입은 꼬마아이 말고는 주민의 모습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남측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동안은 학생들의 운동장 출입과 북한 주민들의 통행을 제한한다고 하는 조장(관광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도로변에 기립해 있는 두 명의 북한군인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묵직한 돌 하나가 세게 날아와 가슴에 퍽 얹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구경꾼이 되어 북측 주민들의 삶을 내다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고 또 불편했다. 그래 봐야 감정적 놀음이지 싶어 실소를 하는데 뒷자리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도 재미없다. 손 흔들어도 흔들어주지도 않고."

에어컨을 켜놓은 시원한 버스 안에서 지열을 견디느라 탈진해 버렸음 직한 군인들을 내다보며 저게 어디 할 소린가. 나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 재미가 없다고 한 당사자를 찾아보았다. 음성이 귀에 익다 했더니, 새벽에 기차에서 내려 여러 대의 버스에 나눠 탈 때 일행이랑 떨어트려 놓았다며 소동을 벌인 여자였다.

'그래, 당신 같으면 저 땡볕에 몇 시간씩 서 있으면서 관광객 지나간다고 손 쳐들고 흔들고 싶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끼리끼리라더니, 그 여자 말에 맞장구를 치는 일행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봐주라. 쪼맨한 게 불쌍타 아이가. 우리 아아들 같으면 저게 중학생이나 될라나. 김일성이가 독재한다고 다 곯게 해놓으니 저래 쪼맨한갑다."

멀어져가는 군인들을 돌아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소년병으로 불리는 게 더 어울릴 저 두 청년은 자신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남쪽 사람들에 대해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강산 관광의 길을 튼 까닭이 호기심 충족이나 눈의 호사를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마치 잘사는 나라 관광객이 생활수준 낮은 원주민을 둘러보며 함부로 말을 내뱉는 듯한 태도는 예의가 아니었다. 그건 저들에 대한 모욕이며 폭력이었다. 명목상 관광을 앞에 내세우기는 했으나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이 이념의 벽을 넘고 말투와 옷차림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넘어 서로 가까이 느끼게 하는 소통의 길로서의 기능을 해야 하는 거라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걸까.

고래 같기도 하고 물개 같기도 한 커다란 바위가 산책로 가까운 물가에 묵직하니 엎드려 있다.
고래 같기도 하고 물개 같기도 한 커다란 바위가 산책로 가까운 물가에 묵직하니 엎드려 있다. ⓒ 안경숙

버스가 멈추고 포장도로에 내려선 사람들 입에서는 절로 덥다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멘트로 덮어놓은 길을 10분쯤 걸어 삼일포 산책로로 내려서자 조장이 먼저 단풍관으로 가자며 길을 잡았다. 담배를 피울 수 있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고 소개한 단풍관을 들어서자 막걸리며 묵이며 녹두지짐을 늘어놓고 파는 평상이 눈길을 끈다. 한 병(500ml)에 3달러인데 한 잔에 1달러로도 판다 하여 마셔보니 맛이 달짝지근한 게 생탁보다 더 진하다.

단풍관 안으로 들어가 기념품 판매대에 카메라를 들이대니 북측의 남자안내원이 우스갯소리인 듯 "사진을 그렇게 찍었으니까 여기 있는 거 많이 사가시라요"라며 말을 건다. 그 옆에 서있던 여자판매원(?)은 "백두산자락에서 따낸 들쭉이로 우려낸 술입네다"라며 종이상자에 든 술병을 가리켜 보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온정각의 면세점보다 2달러가 싸다며 여기서 사라고 꾄다.

들쭉술을 한 병 사들고 실외로 나오자 너르게 펼쳐진 수면이 기다리고 있다. 호수 한가운데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와우도가, 그 뒤로는 네 명의 신선이 들러 세월아 네월아 놀았다는 사선정이 보였다. 바깥 평상에 앉아 쉬고 있던 조장이 산책로를 돌자며 음성을 높였고, 남쪽의 여느 관광지 풍경과 다를 바 없는 단풍관을 나서는 사람들 손에는 더러 기념품이 들려 있다.

봉래대에서 만난 안내원. 아직 '초짜'인지 안절부절못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봉래대에서 만난 안내원. 아직 '초짜'인지 안절부절못하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 안경숙
8km에 이르는 산책로를 걸어 연화대인가 봉래대인가로 올라서자 달맞이꽃처럼 생긴 앳된 안내원이 여행객들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성질 급한 관광객 몇이 답답해서 못 듣겠다며 자리를 뜨자 발개진 얼굴로 간신히 말을 이어가는데 저러다 졸도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덜덜 떠는 게 안쓰러웠다. 내용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해설을 끝낸 안내원에게 잘 들었다며 인사를 건네자 세상에 저런 무공해 웃음이 다 있나 싶을 만큼 수줍게 웃는다.

거기서 출렁다리를 지나 장군대에 도착해서는 안내원의 설명을 귓등으로 넘기며 삼일포 전경에만 넋을 놓았다. 여기서 나가면 곧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다시 오는 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땅, 직접 밟아본 저 풍경을 되도록 선명하게 내 눈 속에 담고 싶었다. 앞에서 해설에 열을 올리던 안내원도 그런 내 마음을 꿴 듯 '삼일포 아름다운 풍경 귀에 쟁쟁 눈에 삼삼 간직되시기 바랍네다'며 간드러지게 마무리한다.

돌아오는 길, 북측CIQ를 거치면서는 흙이나 솔방울이나 돌멩이 등 자연물을 들고나가는 것은 엄금이라는 경고의 말을 들었고 남측CIQ에서는 북측으로 들어갈 때 맡겼던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폰을 켜자 왜 문자를 '씹느냐'는 친구의 메시지와 옷 사러 가자는 여동생의 메시지, 내 휴가여행을 알고 있던 또다른 친구의 메시지 예닐곱 개가 경쾌한 음을 내며 한꺼번에 살아난다.

이산의 그리움과 적성국으로서의 경계 속에서 멀어졌던 세월에 대해 생각의 너울을 펼치며 서있던 출렁다리.
이산의 그리움과 적성국으로서의 경계 속에서 멀어졌던 세월에 대해 생각의 너울을 펼치며 서있던 출렁다리. ⓒ 안경숙
장군대 부근 바위에 새겨져 있던 '속도전'처럼 몰아쳤던 북녘 땅 기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씁쓸함이 뒤섞인 감정이 무박삼일의 고단함과 함께 밀려와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언젠가는 관광신고 같은 거 없이, 검역 없이, 이동 중 촬영금지 경고 같은 거 없이 여느 주말 산행팀을 꾸리듯 금강산 산행팀을 꾸릴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그 산행팀에는 '북한 주민'이 아니라 서울 사람 부산 사람들과 함께 평양 사람, 함경도 사람이 끼여 있을 것이고…….

남녘사회를 알고 싶어하던 구룡연의 발랄한 안내원과 확성기를 옆구리에 낀 채 수줍어하던 봉래대의 달맞이꽃 소녀와 들쭉술을 팔기 위해 상술을 발휘하던 단풍관의 접대부에게서 내가 본 건 분명 우리의 미래상 가운데 일부였다. 또한 나는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 군인들을, 그들의 검게 탄 피부와 텅빈 듯 무심한 눈길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하여, 며칠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건 구룡연과 삼일포에 겹쳐지는 이들의 모습과 함께 이제야말로 참으로 '그리운 금강산'이다.

덧붙이는 글 | 7월 30일부터 무박 3일로 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삼일포#금강산#출렁다리#단풍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