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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는 후쿠다 야스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아베 전 총리의 리더십 부족이 부각되지 않았다면, 후쿠다 전 관방장관이 2007년 9월 25일에 일본 제91대 총리에 취임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는 후쿠다 총리에게 행운만 가져다준 게 아니다. 행운의 기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무거운 숙제를 후쿠다 총리에게 떠넘기고 아베 전 총리는 물러갔다. 오는 11월 1일로 만료되는 대테러특별조치법(테러특조법) 연장이 바로 그 숙제다.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1월 2일부터 시행된 테러특조법은 대테러활동을 수행하는 외국군대에 대한 협력지원·수색협조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로서, 인도양에서 활동 중인 미군 등 다국적군에 대한 급유를 뒷받침해온 법적 근거다.

 

본래 이 법은 시행기간 2년의 한시법으로 출발했지만, 2003년 10월에 2년 연장, 2005년 10월 및 2006년 10월에 각각 1년씩 연장되었다. 만약 금년 11월 1일까지 일본 국회에서 연장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일본 자위대가 인도양에 있는 미군에게 급유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후쿠다 내각이 연장조치에 실패할 경우, 이것은 단순히 급유 중단 수준으로 그치지 않고 대테러 전쟁에서의 미일협조체제에 균열을 초래하는 상황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자민당이 미국의 지지와 미일협조체제를 바탕으로 존립해온 정당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에, 테러특조법 연장 실패는 자민당과 미국의 상호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후쿠다 총리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것이다. 테러특조법 연장 추진과정에서 리더십 부족으로 결국 사퇴까지 하게 된 아베 전 총리의 경험을 볼 때에, 후쿠다 총리 역시 테러특조법 연장을 성사시키지 못할 경우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자민당 내 8개 파벌 지도자들을 돌아서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테러특조법 연장은 후쿠다 총리와 자민당 정권이 어떻게든 넘어야 할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이에 관한 이해를 얻기 위하여 후쿠다 총리 및 민주당의 입장과 향후 전망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후쿠다 총리의 입장은 어떠한가?

 

테러특조법 연장에 관한 한, 후쿠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 못지않게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자민당 총재이며 일본 총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후쿠다가 그 누구 못지않게 미일협력체제 지지자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9월 15일 발표한 <자민당 총재 입후보의 결의>에서도 그는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주체적 외교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할 만한 점은, 후쿠다가 지난 2001년에 테러특조법 제정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9월 26일자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모리 요시로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그림자 외상’으로 불리던 후쿠다는 테러특조법 제정뿐만 아니라 부시-고이즈미 주도 하의 미·일 밀월관계를 떠받든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미일협력체제 강화를 정치적 신조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러특조법 제정을 직접 주도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에, 후쿠다 총리가 누구 못지않게 테러특조법 연장에 열의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후쿠다와 상대하고 있는 야당 민주당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와 관련하여 2006년 12월 일본 민주당이 홈페이지에 올린 <정권정책의 기본방침>(일명 ‘정책 마그나카르타’)의 제3장 제2절 및 제7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일미동맹의 확립’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2절에서는 “일·미 양국의 상호신뢰관계를 구축하며 대등하고 진정한 일미동맹을 확립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자신의 외교전략을 구축하고 일본의 주장을 명확히 한다.”(日米両国の相互信頼関係を築き、対等な真の日米同盟を確立する。そのために、わが国はわが国自身の外交戦略を構築し、日本の主張を明確にする.)고 규정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일본어 원문을 직역하면 “대등한 진정한 일미동맹”(対等な真の日米同盟)이지만, 어감을 고려하여 “대등하고 진정한 일미동맹”이라고 번역했음을 밝힌다.

 

이에 따르면, 일본 민주당이 생각하는 진정한 미일동맹이란 일본 자신의 외교전략을 세우고 일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대등한 동맹이다. 종래 일본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하여 미국의 보조자 역할을 한 데 대한 반성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위 기본방침 제3장 제7절에서는 “(자위권의 행사는) 전수방위의 원칙에 기초하여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급박하고 불법적인 침해를 받은 경우에 한하여 헌법 제9조에 근거하여 행사된다”고 규정하였다.

 

지난 11일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미군의 활동에 대한 자위대의 지원은 명백한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라면서 “자위권의 행사는 우리가 직접 공격을 받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주변사태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답변함으로써 ‘인도양에서의 대미(對美) 지원활동은 일본의 평화 및 안전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은 기본방침 제3장 제7절에 근거한 것이다.

 

위와 같이 민주당이 테러특조법 연장에 반대하는 것은 ‘진정한 미일동맹’과 ‘제한적인 자위권 행사’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입장은 후쿠다 전 총리의 입장과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앞으로 양쪽의 대결은 어떻게 전개될까?

 

11월 2일 이후에도 자위대가 인도양에 있는 미군에게 기름을 실어 나를 수 있으려면, 그 이전까지 국회에서 테러특조법 연장조치가 의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참의원은 야대여소, 중의원은 여대야소의 판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양원에서 각각 다른 결의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야대여소인 참의원에서는 테러특조법 연장을 부결시킬 가능성이 있고, 여대야소인 중의원에서는 그 반대로 법률 연장을 가결시킬 가능성이 높다.

 

현행 일본국헌법 제59조에서는, 동일한 법률안에 대해 양원이 각기 다른 의결을 하는 경우에는 중의원에서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다수결로 최종 결의를 하거나 혹은 양원 협의회를 열어 의견을 절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조문에 따르면, 참의원에서 법률 연장을 부결시키는 경우에는 중의원에서 최종적으로 법률을 가결시킬 여지가 있다.

 

이처럼 헌법 규정과 중의원 구성을 보면 후쿠다 총리가 얼마든지 테러특조법을 연장시킬 수 있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구조적으로는 불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자와 민주당 대표가 자신감을 갖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일본 후지 TV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4.6%가 테러특조법 연장을 반대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일본 내에서는 무조건적인 대미 추종외교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이 같은 국민정서를 반영하여 민주당 내에서도 반미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최근의 민의를 반영하는 7월 29일의 참의원선거에서 국민들은 자민당이 아닌 민주당 등 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정원 242명의 참의원에서 자민당은 무소속을 끌어들이고도 84석밖에 점하지 못하고 있다.

 

또 최근 에다 겐지 중의원 의원이 “자위대가 미군에 지원하는 연료의 80% 이상이 대테러 활동이 아닌 이라크전쟁에 전용되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이래, 일본에서는 테러특조법이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수행하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자민당으로서는 중의원에서의 여대야소에도 불구하고 테러특조법 연장을 강행하기가 부담스럽고, 민주당으로서는 중의원에서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를 압박하여 그의 사퇴를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쿠다 총리 역시 중의원 다수 의석만을 믿고 사안을 밀어붙이기가 힘든 상황이다.

 

후쿠다 총리가 야당과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대화가 아닌 의석 수만을 내세워 법률 연장을 관철시킨다면, 그 역시 아베 전 총리처럼 단명 총리로 끝나고 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후쿠다 총리가 테러특조법 연장을 관철시키고 자신의 리더십을 구축하려면, 야당인 민주당의 의견을 반영하여 테러특조법의 지원 수위를 약화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그:#대테러특별조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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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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