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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레 빗방울이 떨어지니 솥뚜껑을 머리위에 인 빨간 장화의 보살이 등장했다.
 갑작스레 빗방울이 떨어지니 솥뚜껑을 머리위에 인 빨간 장화의 보살이 등장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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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빨간 장화를 신은 것으로 봐 일찌감치 뒤쪽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보살 중 한 명이 분명하다.

불교호스피스 교육관인 마하보디 개원식이 열리는 10월 7일 오후 2시 10분경, 오전 개원법회에 이어 오후에 열리고 있는 산사음악회에서 보살 한 명이 느닷없이 때 아닌 솥뚜껑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조금은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무대 앞으로 뛰어 든다.

무르익은 분위기일지라도 때 아닌 솥뚜껑 춤이 등장하니 사람들 시선이 순식간에 솥뚜껑으로 쏠린다. 그런 시선이 버거운 듯 보살의 인상은 점점 울상이 된다. ‘왜 이런 건 나한테 시키는 거야’하며 투정이라도 하듯 입술을 비질거리며 반쯤은 일그러진 표정이다.

제 15호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일찌감치 있었지만 지금껏 멀쩡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였다.

 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보살은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주춤거리는 발걸음, 반쯤은 울상이 된 표정으로 봐 보살은 누군가에게 등이라도 떠밀려 나오는 모양이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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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3시, 끝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조금만 더 참아주면 되는데 심통이라도 부리듯 빗방울이 떨어지니 비를 피하려는 사람들과 우산을 꺼내드는 사람들로 주변이 어수선해 질 때 솥뚜껑이 등장한 거다.

두 번째 보는 비오는 날 솥뚜껑

비가 나리기 시작할 때 솥뚜껑을 머리 위로 든 보살을 보고 있으려니 기억 속에 있던 그 모습,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집 안팎을 돌며 벌을 키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39년 전이나 되는 1968년 음력 7월 7일, 필자의 나이 9살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임종을 하시던 날에도 필자는 저런 솥뚜껑을 본 적이 있다. 여행을 다녀오다 갑자기 지병이 돋아 입원하였던 아버지는 들것에 들려 집으로 돌아오셨다.

지금이야 자동차가 쌩쌩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지만 그때만 해도 리어카 하나 다닐 만한 길이 못돼 거동이 불편한 환자라도 발생하면 들것을 만들어 운반해야만 했던 까마득한 시절이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였고, 후텁지근하긴 했지만 비가 올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아버지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임종하셨을 때, 천둥번개가 치며 때 아니게 소나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그때, 아직은 청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니는 집에 와 계시던 어르신 중 누군가의 지시(?)로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집둘레를 돌며 잘못을 빌고,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던 걸 본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벌이라도 서듯 어머니가 솥뚜껑을 뒤집어쓰고 그렇게 집 안팎을 돌고 났을 때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췄었다.

한여름에 내릴 수 있는 소나기, 한 줄금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였기에 그 시간만 내리고 그친 것일 수도 있지만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며 수군대던 걸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9살이라는 어린나이였기에 기억하기 힘든 세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 제삿날에 비라도 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그때 일들을 아픔처럼 꺼내곤 하니 또렷하게 기억한다. 

 솥뚜껑을 뒤집어씀으로 비를 멈추게 하였던 빨간 장화의 보살, 처음엔 그렇듯 쑥스러워 하던 보살이 나중엔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불렀다.
 솥뚜껑을 뒤집어씀으로 비를 멈추게 하였던 빨간 장화의 보살, 처음엔 그렇듯 쑥스러워 하던 보살이 나중엔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불렀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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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나이에 보았던 그 모습, 갑작스레 비가 나릴 때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춤 아닌 춤을 추며 비가 그쳐줄 것을 기도하는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되는 현장이다.

믿거나 말거나 비는 그쳤다

행사의 막바지, 조금만 참아주면 멋지게 끝 낼 수 있는 산사음악회 말미에 갑작스레 비가나리니 누군가가 그 보살에게 주술적 의미일 수도 있는 그 모습,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행사장 주변을 한 바퀴 돌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으로 나서야 하니 빨간 장화를 신은 보살은 그렇게 우거지상이 되었을 게 뻔하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신명 많은 보살이 톡톡 튀고자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등장한 정도로 짐작하였을 거다.

어찌 되었건 신기하게도 솥뚜껑이 등장하니 빗방울은 멈췄다. 우연에 일치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몇 방울의 비가 다 떨어지고 나니 그친 것일 수도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비는 멈췄고, 행사를 무사히 마친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다시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니 주춤거리던 분위기는 다시금 달궈지고, 달궈진 분위기 속 솥뚜껑은 자연스레 분위기를 더해주는 좋은 소품이 되었다. 처음 나올 때는 울상이었던 보살, 등이라도 떠밀리듯 주춤거리던 보살도 달궈진 분위기에 동화되어 춤꾼이 된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또 다른 보살이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등장하니 무대 앞은 솥뚜껑으로 번쩍거린다.

 솥뚜껑을 뒤집어쓰는 게 내리는 비는 멈추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겐 웃음을 줄 수 있을듯하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면 솥뚜껑 하나 들고 엉거주춤 춤 한번 춰봐야겠다.
 솥뚜껑을 뒤집어쓰는 게 내리는 비는 멈추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겐 웃음을 줄 수 있을듯하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면 솥뚜껑 하나 들고 엉거주춤 춤 한번 춰봐야겠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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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등장한 솥뚜껑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했고, 보지 못했던 솥뚜껑 춤에 사람들은 박장대소 했지만 솥뚜껑의 등장에 맞춰 내리던 비는 멈췄으니 주술적 의미였던 미신의 하나였던 유효했던 건 분명하다. 

솥뚜껑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듯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으니, 사람들 가슴에 있는 작은 근심, 빗방울 같은 근심을 멈추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한듯 하니 멀쩡했던 하늘에서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면 솥뚜껑 하나 들고 엉거주춤 춤 한번 춰봐야겠다.


#솥뚜껑#보살#주술#속설#마하보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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