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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간판
▲ 안다시베 국립공원 입구의 간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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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깨어났다. 마다가스카르에 온 이후로 새벽 2∼3시에 배가 아파 잠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해보니 시차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새벽 2∼3시는 한국의 아침 8∼9시다. 한국에서 매일 화장실에 달려가던 그 시간에, 이곳에서도 배가 아픈 것이다.

화장실이 방에 붙어 있는 숙소라면 별문제가 없다. 그냥 침대에서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면 되니까. 문제는 지금처럼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경우다. 배가 아파 깨어나더라도 침대에 누워 일단 참는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것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새벽 2∼3시에 바라보는 수많은 별들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나와 방문을 잠그고 화장지를 들고 공용화장실까지 수십 미터를 걸어가야 한다. 밤의 공기는 신선하지만 차갑고 아무 불빛도 없이 고요하다. 귀신처럼 생긴 여우 원숭이 한 마리가 어디서 툭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 보면 의외로 횡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살로에서 그런 경험을 했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지방은 아주 공기가 좋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방갈로를 나서면 밤하늘에 가득히 박힌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 단순한 별이 아니라 거대한 은하수를 통째로 볼 수 있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는 도중에 바라본 밤하늘. 그 경치에 취하다 보면 화장실 가는 것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렇게 새벽을 보내고 나서 아침 7시에 안다시베 공원의 가이드 클로디아를 만났다. 지금 나의 옷차림은 카고 바지에 운동화 그리고 점퍼를 입고 있다. 작은 가방에는 물과 빵이 들어있고 작은 우산도 하나 있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지만, 언제 비가 쏟아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안다시베 국립공원의 입구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서 클로디아는 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마다가스카르의 상징인 트레블러스 팜(Traveller's Palm)이 있고 바나나 나무도 많다. 한쪽으로는 작은 호수가 놓여 있다.

공원 입구에는 트레킹 코스를 그림으로 그려 커다란 간판에 붙여두었다. 어떤 코스를 따라서 트레킹할까. 주간 트레킹의 코스는 총 3가지다. 가장 짧은 코스는 인드리 원숭이 한 그룹을 볼 수 있는 코스(Circuit Indri 1)다. 가장 긴 코스는 인드리 원숭이 두 그룹을 볼 수 있는 코스(Circuit Indri 3)다. 그래서 난 가장 긴 코스를 택했다.

입장권을 사고 가이드 비용도 지불했다. 하루 입장권은 2만 5천 아리아리, 4시간 트레킹을 위한 가이드 비용은 3만 아리아리다.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라노마파나처럼 안다시베 국립공원도 온통 열대우림이다. 숲의 길은 질척질척하고 나뭇잎들은 모두 젖어있다.

인드리 원숭이를 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다

입구의 매표소
▲ 안다시베 국립공원 입구의 매표소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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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한 숲으로 들어간다.
▲ 안다시베 국립공원 축축한 숲으로 들어간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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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이라고는 하지만 라노마파나와는 조금 다르다. 라노마파나에는 경사가 급한 지역도 있고 폭포도 있었다. 안다시베의 트레킹 코스는 그렇지 않다.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으면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인드리 원숭이도 볼 수 있고 다른 여우 원숭이도 볼 수 있다. 안다시베에는 얼마나 많은 인드리 원숭이가 살고 있을까?

"인드리 원숭이는 그룹으로 모여서 생활해요. 한그룹은 4∼5마리로 구성되구요. 안다시베에는 총 32그룹의 인드리 원숭이가 있어요."

클로디아의 말이다. 그러니까 안다시베에는 대충 150마리 정도의 인드리 원숭이가 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드리 원숭이는 나 같은 일반여행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깊은 숲 속에 살고 있다. 150마리라는 이 숫자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드리 원숭이의 숫자이기도 하다. 이 150이라는 수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태학에는 '50/500 규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종의 집단이 생존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 수와 연관된 규칙이다. 어떤 종의 개체 수가 적어질 경우에, 그 종은 멸종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적어지면 '개체 수가 적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 이보다는 다른 문제가 있다. 개체 수가 적어지면 왜 위험한 것일까. 단기적으로는 근친교배의 문제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돌연변이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개체 수가 얼마만큼 많아지면 이런 장단기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50/500 규칙은 이 문제와 연관이 있다. 단기간의 문제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체 수는 50이고, 장기간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개체 수는 500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드리 원숭이는 장기적인 문제에 직면해있는 셈이다. 지금은 150이라는 개체 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숲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고, 개발의 바람이 마다가스카르에도 불어오고 있기 때문에다. 숲이 사라지면 인드리 원숭이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150의 숫자가 언제 0으로 추락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드리 원숭이는 꼬리가 없어요. 보통 7∼10kg 정도의 체중을 가지고 있구요. 푸사(Fosa)라는 야생동물이 인드리 원숭이를 공격하기도 해요."

푸사는 육식성의 야생 고양이같은 동물이다.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에 보면 이 동물이 나온다. 여우 원숭이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을 추던 도중에 '푸사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면서 모두 흩어지는 장면이 있다. 인드리 원숭이는 주로 나무 위 높은 곳에서 생활한다. 이렇게 진화한 것도 푸사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클로디아가 다시 말한다.

"인드리 원숭이는 세 가지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울음소리, 이성을 유혹하는 울음소리, 그리고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알리기 위한 울음소리 이렇게 세 가지요."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자신의 영역을 알리기 위한 울음소리다. 그 소리는 높은 소프라노에 가깝기 때문에, 2km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정도라고 한다. 과연 어떤 소리일까. 주간 트레킹을 이렇게 일찍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인드리 원숭이가 우는 시간이 오전 시간이기 때문이다.

숲 속 멀리 퍼져가는 인드리 원숭이의 울음소리

나무에 앉아있는 인드리원숭이
▲ 안다시베 국립공원 나무에 앉아있는 인드리원숭이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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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인드리 원숭이의 사진
▲ 인드리 원숭이 울고 있는 인드리 원숭이의 사진
ⓒ 안다시베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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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나 말고도 다른 외국인 여행자들이 많다. 모두 가이드를 앞세우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열심히 걷고 있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는 클로디아를 따라서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얼굴에는 거미줄이 달라붙고, 발을 디딜 때마다 축축한 나뭇잎이 밟힌다. 한참 동안 주위를 살피던 클로디아가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저기 보세요."
"어디요?"


클로디아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내 눈에는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어느새 주위에는 다른 외국인들도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한쪽을 가리키면서 작은 탄성을 내고 있다. 그러자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나무 위 높은 곳에 무언가가 앉아있다. 털로 뒤덮인 커다란 생명체다. 움직이지도 않고 이쪽을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클로디아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이쪽에서 더 잘 보일 거에요. 좀 기다려보세요. 인드리 원숭이가 낮은 곳으로 내려올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기다렸다. 인드리 원숭이는 저 높은 곳에서 무얼 하는 것일까? 망원렌즈와 쌍안경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 인드리 원숭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랗고 높은 소리다. 숲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소리는 점점 높아져 간다. 마치 사이렌이나 공습경보를 알리는 소리 같다. 영장류가 내는 울음소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소리다. 한 마리가 우니까 다른 놈들도 따라서 울고 있다. 숲 속에 서서 그 소리를 한꺼번에 듣고 있자니 귀가 멍해지는 것 같다.

바로 이런 소리였구나. 나는 넋을 잃은 채 가만히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 이렇게 높은 소리니까 2km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타잔이 샤우팅을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관악기가 만들어내는 커다란 음정 같기도 하다. 한번 울 때마다 그 높은 소리는 몇 초 동안 지속된다. 그리고 잠시 끊겼다가 다시 반복된다.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울어대다니 목청 하나는 대단한 놈들이다.

"내려오고 있어요."

클로디아의 말처럼, 한 마리가 밑의 나뭇가지로 내려왔다. 숲을 한바탕 휩쓸었던 울음소리도 어느새 그쳤다. 나는 고개를 쳐들고 인드리 원숭이를 보았고, 그놈도 나를 의식했는지 한 번씩 바라보고 있다. 눈이 크고 코가 높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털을 가지고 있다. 그 놈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이방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순식간에 뛰어다닌다. 움직임이 워낙 빨라서 따라가기가 힘들다. 한마리가 움직이니까 다른 놈들도 함께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들이 첫 번째 인드리 원숭이 그룹인 모양이다. 5마리 정도가 다른 지역으로 뛰어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우리도 가죠."

나도 클로디아를 따라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뻣뻣해진 목을 쓰다듬으면서. 주간 트레킹의 끝에는 호수가 있다. 그곳에 가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쉴 수 있을 것이다.

트레킹 코스의 호수
▲ 안다시베 국립공원 트레킹 코스의 호수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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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마다가스카르, #안다시베, #인드리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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