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홍구 교수는 국내 최초로 195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남파된 직파간첩 명단을 공개했다. 그 가운데 고문과 가혹행위로 만들어진 이른바 '간첩조작사건'의 진실도 파헤쳤다. 특히 '간첩통계'는 매우 유의미한 자료로 기록될 만하다.
 한홍구 교수는 국내 최초로 195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남파된 직파간첩 명단을 공개했다. 그 가운데 고문과 가혹행위로 만들어진 이른바 '간첩조작사건'의 진실도 파헤쳤다. 특히 '간첩통계'는 매우 유의미한 자료로 기록될 만하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인혁당 사건 때 사형됐던 하재완 선생의 막내가 네 살이었어요. 일곱살 먹은 동네 아이들이 이 네살짜리 꼬마의 목에 새끼줄을 묶어 나무에 매달고 '빨갱이 간첩 새끼는 이렇게 죽여야 한다'고 '사형놀이'를 했어요. 끔찍하지만 현실입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 활동에 마침표를 찍으며 건넨 말이다.

한 교수는 "안기부와 중정의 조작간첩사건 조사발표를 그대로 베껴쓴 언론, '빨갱이는 죽여야 한다'고 같이 손가락질했던 국민들은 '간첩조작' 피해자에게 사과할 게 없는가"고 묻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법에서 화해에 이르는 길을 찾자"고 주문했다.

지난 25일 아직도 초록이 짙은 서울 성공회대 교정에서 그와 만났다. 국정원에서 보낸 3년 그리고 새롭게 조명한 간첩의 역사에 대해 '뒷담화'를 나누자는 취지로 말이다.

2년 전, 그는 국정원에서 상근을 시작하면서 수염을 길렀다.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진실규명을 모두 끝낼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주변에 공표했다. 2년간 그는 진짜 수염을 깎지 않았고, 국정원 내부에서 '공포의 턱수염'으로 통했다.

"'보도간첩' 만든 언론들, 진실밝힐 책임 있다"

한홍구 교수는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진실규명을 모두 끝낼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주변에 공표했다. 3년간 그는 진짜 수염을 깎지 않았고, 국정원 내부에서 '공포의 턱수염'으로 통했다.
 한홍구 교수는 시험 앞둔 수험생처럼 진실규명을 모두 끝낼 때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주변에 공표했다. 3년간 그는 진짜 수염을 깎지 않았고, 국정원 내부에서 '공포의 턱수염'으로 통했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그는 가장 '점잖은 방법'으로 가장 끈질지게 요청해 국정원 존안자료에 기초한 '간첩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간첩 잡는 일을 하는 국정원으로서는 거의 '자기부정'에 가까울 정도로 '고문에 의한 간첩조작'과 '직파간첩' 역사를 있는 그대로 실토했다. 치부를 다 드러냈다.  

3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는 느낌을 묻자 "시험을 잘 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시험이 끝났다"며 "군대 두 번 다녀온 느낌"이라고 말한 뒤 한참을 웃었다. 

"쉬운 일 아니었어요. 국정원에서 겪은 일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요청한 자료는 모두 봤어요. 물론 시간이 많이 걸려 답답했죠. 좀 일찍 자료를 줬더라면, 시간이 좀 더 많았더라면, 더 많은 사건을 조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활동 전반부는 인혁당 사건 등 주요의혹사건 7대 의혹사건에 대한 조사였고, 이것이 마무리돼 갈 즈음에 분야별 사건조사에 나섰다.

정치, 학원, 언론, 노동, 사법, 간첩사건 등 6대 분야 중 그가 맡은 쪽은 간첩과 사법. 법 위에 안기부가 존재하던 시절, 우리 사법부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을 했는지 낱낱이 고발했다. 결론은 당시 사법부는 '법과 양심, 그리고 안기부의 의견에 따라' 판결했다는 것이다.

또 의혹이 많았던 간첩사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폭로했다. 국내 최초로 197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남파된 직파간첩 명단도 공개했다. 그 가운데 고문과 가혹행위로 만들어진 '간첩조작사건'의 진실도 파헤쳤다. 특히 '간첩통계'는 매우 유의미한 자료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나 많이 하지는 못했다.

"15건의 간첩사건을 추렸어요. 물론 더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15건도 다 못했어요. 딱 4건. 11건은 자료도 못 보고 끝낸 셈이지요. 송씨 일가 사건의 피해자 송기복 선생(재북간첩 송창섭의 장녀)이 '축복받은 간첩' 얘기를 한 적 있는데, 그나마 억울한 사연이 밝혀져 새롭게 조명받는 간첩이 있는가 하면 30년 전 그대로 억울하게 살아가는 간첩이 있다는 거지요. 정말 송구한데.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억울한 사건은…, 기자들의 몫으로 하는 게 어떨지."

한홍구 교수는 기자의 마음을 떠보는 듯 옆으로 눈을 떴다.

"80년대 '보도간첩'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기자들이 안기부가 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껴 썼을 때 일이지요. 언론사에 재직중인 기자들은 자사 간첩보도가 어떻게 돼 있는지 확인 좀 부탁해요. '송씨 일가 간첩사건'이 대표적이죠. 무작정 간첩이라고 매도했던 피해자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양심껏 보도할 책임이 언론에 있어요. 아닐까요?"

결국은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어놓고 한 마디 더 했다.

"6권짜리 한 질로 묶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참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조차 정독을 하지 않네요. 3년간 군대생활 하듯 국정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일한 게 '역사로 남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지요. 지금도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고, 국가와 사회가 그들의 억울함을 바로잡을 책임이 여전히 있잖아요.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정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과거에는 진실을 몰랐다고 치더라도, 이제 알게 됐으니 후속절차를 밟아야죠."

"재심특별법 없는 화해?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니다"

한홍구 교수는 '재심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좀더 쉽고 빠르게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사건이 있었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홍구 교수는 '재심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좀더 쉽고 빠르게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사건이 있었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 장윤선

관련사진보기

한홍구 교수는 '재심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좀더 쉽고 빠르게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사건이 있었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미 법률적으로 혹독한 사건을 겪었지만 여전히 간첩의 멍에를 쓰고 살고 계십니다. 명예회복의 완결을 위해서는 재심이 필요해요. 잘 아시는 것처럼 사법부에서 재심은 엄격하고 까다롭습니다. 물론 사법부에서 많이 노력하겠지만 훨씬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해요."

법 위에 정보기관이 존재해왔던 시절,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적 양상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한홍구 교수의 생각이다.

특히 안기부의 입김에 따라 판결해왔던 사법부는 이제라도 '법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된 '재심' 판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본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섣불리 '화해'를 언급하는 게 과연 '인간에 대한 예의'겠냐고 반문했다.

"송씨 일가 간첩사건을 예로 들게요. 송기복씨 입장에서 보자면 친가와 외가가 이 사건으로 쑥대밭이 됐죠. 특히 이 사건이 '아무개는 부는데 너는 왜 안 불어?'식 수사였기 때문에 친척간에 맺힌 게 많아요. '너 때문에 내가 안기부로 끌려갔다'는 생각 때문이죠.

이번에 저희가 조사하면서 만난 분들 가운데 25년 전 공판장에서 헤어지고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어요. 형제끼리도 간첩얘기는 안 하고 평생 살아온 거예요. 피해자 간에도 '화해'가 이렇게 어려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가 쉽게 될까요?"

때린 사람이 맞은 사람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하면 화해지만, 때렸다고 고백도 안하는데 화해할 수 있겠냐는 판단이다.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 그리고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져오는 정보기관이 '기관 차원'의 사죄와 반성, 고백을 한 것은 맞지만, 직접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가해자의 양심고백이 없었다는 점은 이번 과거청산에서 매우 아쉬운 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기관이 고백한 것은 장한 일이니 앞으로 기관이 잘 하면 된다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시민사회가 방안을 내 분명하게 명예회복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한홍구 교수의 견해다.

"그저 몇 가지 진실만 규명했을 뿐... '과거 청산' 아니다"

"아직도 이런 시각이 존재하죠. '고문은 했지만 간첩은 맞다'.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 꽤 될 걸요? 국정원 내부에도 당연히 있겠지요. 국정원이 민주인사 마인드를 가져라! 이렇게는 말 못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다시는 이런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명을 갖는 건 가능한 일이죠. 현대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치부라고 판단되는 과거사를 털고 가는 건 역사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일 같아요. 이 활동은 그 출발에 불과하지요."

한 교수는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를 위해 50일간 밤샘작업을 했고,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으며, 모두 2000매의 원고를 쏟아냈다. 한 시사주간지에 연재했던 '역사이야기'를 매일 한편씩 쓴 셈이다.

"요즘 누가 어찌 지내냐고 인사하면 장난삼아 (손을 머리에 붙이며) '공익!' 이래요. 3년이잖아요. 군대 두 번 갔다가 소집해제되었다는 뜻이에요. 밀린 일들이 많아요. 학자들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과거청산하자고 악악대긴 했지만 기관 안에 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할 생각은 못 했어요. 이건 '노무현 아이디어'야.

노 대통령이 진보진영과 척을 졌고 배신도 많이 했지만. 이라크파병·양극화·비정규직·한미FTA 평가는 달리 해야 하지만. 그리고 과거청산 작업이 여러 면에서 미진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과거청산은 노무현정부가 평가받을만한 일이에요.

이제 국정원 진실위를 비롯해 국방부와 경찰의 과거사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청산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지요. 전에는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들의 주장에 근거해 과거청산을 요구한 것이라면, 이제는 국가폭력 가해자의 한 축인 국가기관이 고백을 한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논의해 가야합니다."

말을 쏟아내던 그가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붙였다.

"정말 꼭 했어야 하는데, 다루지 못한 사건 피해자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태그:#사형놀이, #직파간첩, #국정원 진실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빨갱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