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당당 의연한 품위와 권위를 지닌다. ‘정직성’과 ‘희생정신’은 군 간부라면 누구나 갖추어야할 기초적 필수 덕목이다. 이들을 다스릴 국군의 최고지도자는 정직성의 모범이 되어야하고 자기희생을 주저치 않는 이타정신이 그의 삶 속에 배어나야 한다.
특히 국민개병주의 하에서는 “병역의무를 기피한 것 같은데?” 라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면 통수권자로서의 기본자질에 문제가 있음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사적 이익 추구에만 몰두해온 사람들에게는 나라 위해 목숨까지 바쳐 대의를 지켜야하는 국방 분야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어떻든, 대선 후보들이 과연 확고한 국방철학을 바탕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국방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고농축 우라늄’ 문제 등 아직 넘어야할 여러 난관이 있긴 하지만, 북미관계의 긍정적인 변화 조짐은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첫 단계의 과제는 군사적인 적대 관계를 해소 긴장을 완화하는 일이다. 이에 상호신뢰와 화해를 구현하는 국방정책 설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선 후보들의 공약 내용을 보면, 이에 관한 구체적 정책이 미흡하다. 과거부터 늘 해오던 대로, 통일을 위해서는 “튼튼한 국방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전방부대를 방문, 군복을 입고 TV에 얼굴 내미는 정도가 고작인 듯하다.
적패되어온 냉전의식을 불식, 대북 적대의식을 해소하는 군대문화 개혁 의지가 희박하다. 평화정착을 말하면서도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군비증강 위주의 국방개혁 2020계획에 대해서 별 말이 없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의 전략변화에 따라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할 한미동맹 그리고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성역처럼 조심스러워 한다.
국방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거의가 독재시대 군 고위직을 역임하여 국방사상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분들이다. “천황을 위해서”만을 외치느라 민족의식을 잃어버린 일본군 출신들이 독차지해버린 군대가 자주적인 국방사상에 관심 가질 리 만무했다. 오로지 미국에게만 잘 보여 독재권력 유지에 급급해온 숭미 사대주의자들에게 무슨 국방철학이 필요했겠는가?
이들에게 “국방정책 수립에 있어 최우선 고려해야할 기준요소는 무엇인가?”라 물어보면 거의가 ‘국가이익’이라 답한다. 미군 교리를 그대로 베껴 교육하고 있는 국방대학원과 각 군 대학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이는 침략적 국방사상에 기초한 미국식의 사고다. 우리민족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의 정통성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고유의 국방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한번도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 침략한 적이 없다. 그러나 침공을 받게 되면 온 백성이 한 덩이 되어 끝까지 싸워 반드시 이겨왔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국방사상은 ‘평화 수호의 방어적 총력전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국방정책과 군사전략, 군 구조 그리고 군사력건설의 중점은 무한 군비경쟁을 유발하는 제국주의적 패권주의 국가를 흉내 냄을 지양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총력전 사상’에 기초하여 설정돼야 한다. 이와 함께 장병들의 가슴속에 위대한 평화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막대한 국가 예산을 쏟아 붓고 있으며 남북 긴장 완화의 핵심 역할을 하는 국방정책이 우리민족 고유의 국방사상을 기초로 하여 통일 시대를 준비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확고한 평화지킴의 철학에 입각하여 수립 실현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표명열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한겨레>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