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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우리 가족에게 참 다사다난했던 해였습니다. 세진이는 수능을 보고 몇 개 대학에 지원해놓은 상태고, 저도 학교생활과 야간학교 교사, 시민기자 활동, 학군단(ROTC)를 하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회사 내에서 과를 옮기셨습니다.

 

 

지난 15년, 아버지의 케이크가 너무 받고 싶었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아버지 생각이 온 가슴에 가득합니다. 제가 유치원도 다니기 전인 4살 무렵부터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아버지께서는 제 머리맡에 케이크 하나를 놓아두셨습니다. 아직 산타가 없는지조차 모르던 꼬마 아이는 매년 케이크만 놓고 가는 산타를 원망했었지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못된 일을 많이 하는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주고, 쪼금만 착한 일을 한 아이는 과자 선물세트를 주고, 그냥 착한 아이는 로봇이나 책을 주는거야. 그리고 가장 착한 아이에게는 온 가족이 같이 먹으라고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거야."

 

그 말에 저는 몇 년이나 케이크를 받으면서도 '나는 가장 착한 아이'라는 우쭐함에 매 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6살 무렵 아버지께서 편찮으시기 시작할 무렵, 크리스마스 저녁에 속셈학원 원장님과 나타난 산타 아저씨는 제게 이순신 전기 한 권을 주고 가버렸습니다. 내가 그동안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 아버지도 아프고 선물도 케이크를 안주나보다 해서 한참을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울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의 크리스마스에도 케이크도, 책도, 심지어 과자 선물세트마저도 제 머리맡에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산타는 선물을 같이 나눠줄 사람이 부족했는지 아버지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난 흐른 뒤에야 저는 새벽에 나타나 케이크를 선물해주던 이가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시간이 흐르며 어머니께서 크리스마스에 세진이 머리맡에 장난감이나 책을 놓고 잠드시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하지만 은근히 세진이는 산타가 선물로 아버지를 만나보게 해주길 바랬나 봅니다.

 

"형 착한 일 하면 산타가 원하는 선물 다 주는 거야?"
"응. 너 가지고 싶은거 있으면 형한테 말해 봐."
"아빠 만나는 거."
"아빠는 산타할아버지랑 선물 나눠줘서 바빠. 다른 거 빌어."
"없어 그럼."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동생에게 그런 말을 듣고 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동생이 너무 안타까워 어머니가 출근하시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써 놓으신 편지와 가족들이 함께 찍은 앨범을 몇 번이나 되돌려봤는지 모릅니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산타가 되어 주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홀연히 제 곁을 떠나버린 지도 어느새 15년이 흘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코흘리개 어린이는 어느새 벌써 대학교 졸업반과 육군 장교 임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4살배기였던 둘째도 내년이면 대학생이 됩니다.

 

지난 15년 아버지 몫까지 산다고 생각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 노력했고, 더 잘하기 위해 뒤에서 눈물 흘렸습니다. 지금 아버지가 제 앞에 계신다면 케이크 두 개, 세 개를 받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올 한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지식을 조금이라도 함께 한다는 생각에 야간학교 교사를 시작해 교장이 되었습니다. 또 심리학 전공을 하며 많은 정신과 환자를 만나 상담했고, 또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주변에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앞장서 달려갔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이틀 전 야간학교에서 같이 교사를 하고 계신 분이 운영하는 어린이 공부방에 다녀왔습니다. 저소득층, 결손가정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곳인데 빈손으로 가기 그래서 귤 한 박스를 사서 짊어지고 갔습니다.

 

공부방에 들어가 귤 박스를 내려놓기 무섭게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 때 저와 동네 친구들이 떠올라 갑자기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애써 눈물을 참고 밖으로 나가 담배 한 개비를 물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정작 아버지의 케이크가 필요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아이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케이크 하나 값이 그다지 부담되지 않을 만큼 자란 아들에게는 물질적인 케이크보다 꿈에서 만나는 아버지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일은 아버지께서 제게 그랬던 것처럼 공부방에 아이들 몰래 케이크 하나를 사다 놓을까 합니다. 물론 아버지께서 제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적고 그 밑에 '너희들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들이구나 -산타-'라고 적을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몰래산타’들과 많은 회사의 직원들, 자원봉사자들이 선물과 함께 아이들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경기가 많이들 어렵다고 하지만 활짝 웃으며 아이들을 만나는 그들을 보며 함께 동참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오히려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버지, 이렇게 올해 크리스마스 새벽도 흘러갑니다. 오늘은 어떤 아이들이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까요. 부디 세상 누구 하나 빠트리지 말고 모든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의 축복을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꿈에서라도 아버지의 케이크를 받을 수 있을까요? 가슴 시리도록 뵙고 싶습니다. 아버지.


태그:#크리스마스, #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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