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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삼가분교의 유일한 새내기 입학생 양현석. 현석이의 엄마는 저 멀리 필리핀에서 왔다.
삼가분교의 유일한 새내기 입학생 양현석. 현석이의 엄마는 저 멀리 필리핀에서 왔다. ⓒ 최상진


보은에서 삼가를 오가는 시내버스 안, 사람으로 가득찬 버스 안에 20대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기사님은 오랜만에 젊은 사람이 탔다며 반가워했습니다. 그는 "십년 전만 하더라도 젊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들이 있었는데, 여기도 시골은 시골인지 하나둘 빠져나가다 보니 어느새 남은 사람들은 노인이나 환자밖에 없다"며 "이 마을에 젊은 사람은 없어"라고 했습니다. 삼가로 오는 내내 저는 어르신들이 산 소금이며 농기구 등 무거운 짐들을 내려주기 바빴습니다.

버스에 같이 탄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홀로 남겨진 지 십여 분.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에 다다라서야 기사님은 "옆에 보이는 빨간 지붕이 삼가분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 삼가 저수지와 구병산 자락이 어우러진 모습은 왜 이곳을 굳이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철망을 세워놓는 도시학교와는 달리 삼가분교 주위에는 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습니다. 1946년에 개교해 벌써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삼가분교는 한때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녔고 운동장과 건물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습니다.

낡은 책상과 반질반질한 마루로 된 복도를 예상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삼가분교는 '산골학교'에 대한 제 선입견을 무너뜨렸습니다. 교실과 복도는 깔끔하게 리모델링되어 있었고, 컴퓨터와 교육 기자재 또한 도시 학교 못지 않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무시무시' 교무실이 바로 나의 놀이터

제가 오늘 만날 주인공은 바로 이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먹고 자고 생활합니다. 삼가분교 1학년 새내기 현석이의 아버지 양재붕(51)씨가 바로 학교 기사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석이를 처음 본 곳도 학교 교무실이었습니다. 들어가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던 교무실, 용감하게도 현석이는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었습니다.

짙은 쌍꺼풀, 동그란 얼굴, 반 곱슬머리의 현석이는 누가 봐도 잘 생긴 아이였습니다. 이 잘생긴 얼굴의 반은 필리핀인인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현석이가 좀 내성적이라고 했는데, 역시나 제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제가 현석이를 꼬신 건 바로 '축구공'이었습니다. 교무실에서 같이 놀던 아이들이 모두 여자들이어서 축구를 하자며 운동장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축구 좋아해?" "넷!"

저는 어린 현석이 앞에서 '주름 잡으며' 공을 세게 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공을 뺏어보라고 이리저리 도망다녔습니다. 현석이는 몇 번이고 공을 다시 차고 땀까지 뻘뻘 흘리며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현석이는 원래 내성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 형아와 새내기 초등학생 둘이서 텅 빈 운동에서 축구며 그네타기·정글짐·시소·철봉, 그리고 달리기를 하며 한 시간 넘게 놀았습니다.

여덟 살 현석이는 혼자 노는 게 제일 좋다

 학교가 놀이터인 아이들. 현석이(가운데)와 동생 강석이(왼쪽 첫번째).
학교가 놀이터인 아이들. 현석이(가운데)와 동생 강석이(왼쪽 첫번째). ⓒ 최상진

"학교 가는 거 좋아해?"
"예전부터 계속 학교가 집이었어(현석이네 집은 학교 바로 뒤에 위치해 있는 직원 숙소입니다).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좋아."

"현석이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야?"
"친구가 없어. 다들 형 누나야. 친한 형(사촌)이 하나 있는데 만나려면 버스 타고 가야 돼."

"여기에 살면서 가장 좋은 일은 뭐야?"
"엄마랑 아빠랑 강석이(동생)랑 버스 타고 장에 나가는 거."
"현석이는 가족이랑 같이 있는 게 좋구나. 장에 나가서는 뭐 하는 게 좋아?"
"자장면 먹는 거 좋아해."

"그런데 넌 학교에서 누구랑 놀아?"
"혼자 놀아. 혼자 있는 게 좋아."

여덟살 현석이는 혼자 노는 게 좋다고 합니다. 나이에 비해 성격이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친구'나 '동무'보다는 형, 누나라는 말이  더 익숙합니다. 집과 학교가 붙어 있으니 별 다른 구분이 없지만 그래도 집보다는 학교가 더 좋습니다. 

이런 현석이가 아버지는 한편은 걱정스럽고 한 편으로는 미안합니다. 당신 건강이 좋지 않아 이 곳 삼가분교에는 일 때문이기보다는 요양차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나홀로 입학생이 된 현석이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또 다문화 가정이라는 환경 때문에 사춘기가 되면 혹독한 홍역을 치를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최대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하겠다"고 하셨지만 그게 꼭 아버지만의 몫은 아닙니다.

현석이가 학교를 집보다 좋아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집에 돌아가면 할 일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개방하는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학기 중에는 저녁 시간에, 방학 중에는 아침부터 오후 내내 학교를 개방하고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도 십여명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컴퓨터와 책읽기, 블럭 쌓기 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인 엄마, 좋은 영어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요?

 카메라 앞에 선 현석이네 가족.
카메라 앞에 선 현석이네 가족. ⓒ 최상진


오후 4시가 지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현석이도 동생 강석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물론 학교 바로 뒤니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직원 숙소로 현석이와 함께 갔더니 어머니 가나레스 달리사이(41)씨가 활짝 웃으며 맞이했습니다.

현석이와 강석이 모두 어머니 앞에서는 정신이 없습니다. 학교와는 달리 활발한 모습입니다. 자동차와 로보트를 가져다 놀기도 하고. 제가 사다준 공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문제는 저와 어머니 달리사이씨였습니다.

보은에서 얼마 동안 한글을 배웠다는 달리사이씨는 이름을 묻자 한글과 영어로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적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에 능숙하지 못해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달리사이씨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현석이와 저는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첫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님께 감사하고 자랑스러워 하기, 둘째는 학교에 입학한 뒤에 형, 누나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기, 세번째는 선물해준 공책에 빽빽하게 공부해서 봄에 다시 찾아가면 보여주기.

저는 그 약속을 지키면 멋진 어린이가 될 수 있다며, 현석이 부모님 앞에서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현석이의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현석이가 입학한 지도 일주일이 다되갑니다. 학교를 집 삼아, 형 누나를 친구 삼아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현석이네로 전화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현석아 오늘 학교는 재밌었어?"라는 물음에 "응, 정말 재밌었어"라는 대답이 들려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홀로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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