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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현포-추산-천부-도동-독도전망대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햇살에 눈을 뜨고 창문을 여니, 비릿한 바다내음과 파도소리 그리고 갈매기 우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아침 일찍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식사 전에 태하등대와 대풍감에 먼저 갔다 오기로 하고 7시경 동백장을 나섰다.

태하는 옛 우산국의 도읍지였고, 1907년 행정을 총괄하는 치소(治所)가 도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울릉도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울릉도 독도에 대한 수토(搜討)정책을 유지하여 울릉도 주민을 모두 육지로 이동시키고 수토관으로 하여금 주기적으로 순찰하도록 하였는데, 수토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온 수토관은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증거물로 제출해야 했다고 한다. 황토구미라는 옛 지명은 몽돌해변 바위절벽 아래 큰 황토굴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황토구미
 황토구미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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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장에서 나와 바위절벽 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이른 아침인데도 케이블카 공사가 한창이다. 태하등대로 연결되는 케이블카 공사인데, 완성되면 지금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는 산길을 순식간에 올라가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대풍감의 절경을 손쉽게 볼 수 있어 관광객 유치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단체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잠깐 북적이다가 가는 상업화된 곳으로 바뀔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산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산책 겸 걷다보니 어느새 태하등대가 나왔다. 등대관리 하시는 분이 알려주는 대로 조금 더 걸어가니,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하며 억새밭이 나타났다. 이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드넓은 바다와 현포, 추산으로 이어지는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북면의 해안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 햇살의 역광 속에 은은히 안개는 피어오르고, 깎은 듯한 바위절벽과 겹겹이 이어지는 부드러운 해안선이 숨이 멎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왼쪽 면을 바라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짙은 에메랄드 빛의 투명한 바다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대풍감에서 바라본 북면 해안
 대풍감에서 바라본 북면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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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등대에서 바라본 풍경
 태하등대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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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등대
 태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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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등대로 다시 내려오면서 관리하시는 분에게 우리가 왔던 길 말고, 철제계단이 있는 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보니, 지난 매미 태풍 때 철제다리가 망가져 위험하다고 하셨다. 그 쪽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다리의 망가진 부분을 조심하면 그 다음은 괜찮을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기로 하고 등대에서 조금 내려오다 철제계단 있는 길로 가는 소롯길로 접어들었다.

소롯길은 적당하게 숲이 우거지고 바닥에는 솔잎 등 낙엽이 쌓여있어 폭신폭신했다. 조금 내려가다보니 다시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났다. 아까 대풍감에서 보았던 왼쪽 면의 바다가 좀더 가까이에 있고 멀리 배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내리막으로 바다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바위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길을 지나니 철제계단이 나타났다. 무너진 철제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절벽 옆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드는 순간, 너무 무서워 약간의 후회하는 마음이 스쳐갔다. 하지만 누군가가 대풍감으로 가는데 어느 길로 가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주저않고 이쪽 길을 추천할 것이다.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철제계단 쪽 길은 바닷물빛 아름다운 울릉도에서도 최고의 풍경을 보여준다.

태하등대에서 내려 오면서 본 바다 빛
 태하등대에서 내려 오면서 본 바다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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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계단을 내려오니 바로 황토굴이 나타났다. 황토흙을 살짝 긁어내어 만져보니 부드럽다. 시간을 보니 9시 30분이 넘었다. 진미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오징어 3축과 명이절임을 조금 샀다. 택배로 집에 보내주시기로 했다. 참 편리하다.

동백장에 들려 완전 무장을 하고 힘차게 출발을 하였다. 어느새 배낭의 무게는 훨씬 가볍고 헐렁해졌다. 애틋하고도 슬픈 동남동녀의 전설이 얽힌 성하신당을 지나 현포가는 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현포로 가는 길은 마치 대관령 고갯길처럼 굽이굽이 끝없이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마침 빈 울릉관광버스가 가기에 세웠더니 멈춰선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얼른 올라탔다. 마음이 가벼우니 길가의 풍경도 더 경쾌해보인다. 미가목나무를 길가 가로수로 심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현포전망대에서 기사 아저씨에게 다시 감사드리며 내렸다.

현포 돌무지 근처에 있는  집
 현포 돌무지 근처에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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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신록의 계절 날씨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하늘은 날아갈 듯 맑고, 미풍이 귓가를 간질이며  마냥 걸어도 좋은 그런 날씨. 현포전망대에서는 평화로운 현포 항구와 마을 그리고 아름답게 펼쳐진 북면의 해안, 멀리 코끼리 바위와 송곳산이 내려다보인다.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출발을 하였다.

현포로 가는 내리막길은 최고의 트레킹코스다. 하늘색과 코발트색이 어우러진 잔잔한 현포바다, 검은 염소가 풀을 뜯는 초록 풀밭, 바다를 향해 지어진 이름모를 외딴집의 풍경….

그런데 외딴 집 옆 잡풀이 자란 밭에 군데군데 돌이 한 무더기씩 쌓여있다. 유심히 보니 이곳이 바로 현포고분군이고, 돌을 쌓아놓은 그것이 돌무지무덤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서 총 38기의 무덤이 있단다.

새삼 울릉도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땅의 한부분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안내판이나 표지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웠다. 나중에 향토사료관에 갔을 때 근무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개인 소유의 밭이라 안내판을 세우거나, 탐방길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현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추산
 현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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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옛집
 바다가 보이는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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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 돌무지 무덤
 현포 돌무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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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마을로 내려와 보성식당이라는 곳에서 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데 바람이 불면 유리문이 덜컹덜컹 흔들린다. 오전만 해도 그렇게 화창했는데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이 점점 세진다. 새삼 울릉도의 날씨가 변화가 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하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다. 식당에서 나오니 큰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노인봉이다.

현포마을
 현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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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 등대를 지나 조금 걸어가니 현포테마박물관이라는 곳이 나타난다. 각종 화석, 보석원석, 조개 등을 전시해놓았다. 또 한참 걸어가다보니 분재식물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들어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시계를 보니 4시가 다 되어간다. 천부까지 가서 5시 버스를 타려면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그냥 지나치기로 하고 부지런히 걷는데 드디어 송곳산이 나타난다.

북면 해안에서는 어디서나 송곳산을 볼 수 있었는데 드디어 바로 가까이에서 송곳산을 보게 된 것이다. 과연 높고 뾰족한데, 중턱에 빈 구멍이 보였다. 그 구멍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진으로 보았던 추산일가를 지나 추산 수력발전소에 도착했다. 발전소 근무하는 아저씨 말씀으로는 이 발전소에서 꽤 많은 전기를 생산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본래는 용출소까지 갔다올 예정이었는데 이 역시 시간관계로 생략하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천부에 도착하니 4시 50분경.

첫날 천부에서 나리분지로 들어갔었는데, 드디어 울릉도 일주를 마치고 다시 천부로 온 것이다. 울릉도 일주가 끝나는 지점인 천부에 다시 올 때는 꼭 군내버스를 타고 편하게 섬을 한바퀴 도는 호사를 누리리라 생각했었다.

천부 선창
 천부 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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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버스를 타니 문득 4일간의 도보여행이 꿈처럼 느껴졌다. 두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아픈 다리를 쉬며, 이제는 여유있게 울릉도 해안 경치를 감상했다. 우리가 걸어서 지나왔던 그 길을 거꾸로 다시 거슬러간다. 추산, 현포, 태하, 학포의 만물상…. 이곳은 우리가 못 가본 곳이다. 다시 수층터널, 구암, 남양, 통구미, 사동을 지나 도동에 도착했다.

다시 향우촌에서 곱창전골과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독도전망대에 가서 야경 사진을 찍고, 숙소인 바다거북모텔로 돌아왔다. 전망은 좋은데 금요일이라 단체손님이 투숙해서 상당히 시끄럽다. 오늘 밤 제대로 잘 수 있을까? 

독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동시내 야경
 독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동시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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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 해안산책로 야경
 도동항 해안산책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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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구미-도동-묵호

밤새 시끄럽고 쿵쿵 울려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새벽 5시쯤 더 이상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 창문을 여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까지 분다. 일단은 도동으로 나가서 울릉도 해상일주를 하든지, 박물관으로 가든지 하기로 결정하고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아무래도 바람이 불고 날씨가 안 좋아 오후 배가 못 뜰 것 같으니 무조건 도동으로 나가서 배편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아침식사를 취소하고 아저씨가 태워주는 봉고차로 여객터미널까지 나왔다. 대아여객 사무실로 가서 배편 관계를 물어보니 우리가 예약한 1시 한겨레호는 예정대로 출항한단다.

통구미 향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49호
 통구미 향나무 군락 천연기념물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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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독도의용수비대에 의해 세워졌던 지명 표석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에 의해 세워졌던 지명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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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하고 터미널 앞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독도박물관으로 갔다.

향토사료관에서는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울릉도 출토유물 귀향전을 하고 있었다. 현포, 천부, 남양, 남서리 고분 등에서 출토한 유물들로 각종 토기, 철기, 장신구, 금동제품 등이었다. 그 외에서 울릉도의 역사와 관련된 비문이나, 서적, 그리고 생활모습을 재현해놓은 모형 등이 있었다. 울릉도에도 오랫동안 사람이 살고 있었고, 소중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독도박물관의 외관은 독도를 형상화하여 지어졌는데, 특히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반박하는 지도를 비롯한 문헌자료가 많았고,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울릉도 호박엿과 젤리를 사고나니 이제 떠난다는 것이 실감났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발디딜 틈 없이 혼잡하다. 드디어 한겨레호와 씨프린스호가 도착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배가 출항하였다.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울릉도를 보며, 문득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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