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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르르르르."

자그마한 교실에 경쾌한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곳에 1학년 정권우(8) 학생이 있다. 이 까무잡잡한 꼬마를 만나려고 서울에서 의성, 이 먼 곳까지 달려왔다.

지난달 30일 햇살이 따사로운 날, 길을 나섰다. 경북 의성의 '나홀로 입학생' 권우를 만나러 갔다. 권우가 다니는 학교는 경북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에 위치한 쌍호초등학교. 서울에서 약 230여㎞를 달려야 도착하는 먼 곳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길이다.

출발! 고속도로·국도를 거쳐 차는 의성으로 접어든다. 밭에는 의성의 특산물 고추가 푸르르게 익어가고 있었다.

1951년 졸업생 62명에서 2007년 졸업생 0명까지

나지막한 산과 단층 교사, 알록달록한 놀이기구가 보인다.
▲ 쌍호초등학교 전경 나지막한 산과 단층 교사, 알록달록한 놀이기구가 보인다.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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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잘 정돈돼 있었다. 나지막한 산자락 앞에 자리 잡은 쌍호초등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단층 건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골 초등학교다. 잘 색칠한 건물과 놀이기구, 깔끔하게 꾸민 화단이 인상적이었다.

쌍호초등학교는 의성군 안사면의 유일한 초등학교다. 1946년 12월 9일 4학급으로 개교하해 2008년 2월 19일 58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도 오랜 학교다. 총 배출 졸업생도 1976명으로 적지 않은 편이다.

학교를 거쳐간 풋풋한 졸업생들의 모습은 '우리학교를 졸업하신 선배님들'이란 복도 게시판에 사진으로 붙어있다. 1951년의 '흑백 졸업생'과 2008년의 '칼라 졸업생'이 공존하는 이 공간은 쌍호초등학교와 안사면의 역사다.

그러나 이 게시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졸업생이 줄어가는 걸 알 수 있다. 졸업생 수는 1951년 제1회 62명(남 54명, 여 8명)으로 출발하여 40여 년 이상 두 자릿수를 지켜오다가 1991년 15명을 끝으로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올해 6학년도 강동희 학생 1명뿐이다. 나홀로 입학생에 이어 내년 2월이면 '나홀로 졸업생'을 배출할 것 같다. 그래도 졸업생이 아예 없던 2007년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1학년 권우와 2학년 순욱이는 같은 반 친구

소파와 벽 사이에 틈을 만들어 숨는 권우. '저 안 보이죠?'
▲ 숨바꼭질 소파와 벽 사이에 틈을 만들어 숨는 권우. '저 안 보이죠?'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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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네 가족은 이 동네 토박이다. 권우의 아버지 정삼진(49)씨와 어머니 박순이(45)씨 모두 이 곳에서 자라 쌍호 초등학교를 졸업하셨고, 살림을 꾸려 권우를 낳았다. 세 가족이 모두 쌍호 초등학교 동문인 셈이다.

부모님에게 초등학교 후배 권우는 '귀한 자식'이다. 아버지가 사십줄에 들어서야 낳은 늦둥이이자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2km 거리의 비교적 짧은 통학길도 부모님이 꼭 함께 다닐만큼 신경을 쓰신다.  그 탓인지 권우는 구김이 없고 활달한 성격이다.

권우가 수업하는 곳을 찾아갔다. 1·2학년 합반(복식 수업)으로 운영 중인 교실은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 입구에 학급 소개가 눈에 띈다. 반장 권순욱(2학년), 부반장 정권우(1학년). 투표도 없는 선출이다.

사실 권우와 순욱이는 동갑이다. 2학년 순욱이의 생일이 빨라서 일찍 입학했기 때문이다. 나이도 반도 같아서 형·동생이 아니라 친구를 먹기로 했다. 함께 노는 재미에 학교 오는 것이 즐겁다. 비록 학년은 다르지만.

"이름이 뭐야? 권우, 정권우."
"그래 너는? 권순욱이요."

서울에서 힘겹게 찾아간 나는 반가운데, 아이들은 통성명만 하곤 이내 자기들끼리만 논다. 그래도 내 목적이 아이들 취재인지라, 어떻게든 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탐색전을 벌인다.

아이들의 놀이는 숨바꼭질. 책상 밑, 소파 뒤에서 종횡무진 숨고 찾고를 반복하는 놀이다. 빤히 보이는 곳에 숨어선 마치 자기가 안 보이는 듯 고개를 숙인다. 끼어들기에는 내 몸도 마음도 너무 커버렸음을 깨닫고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까르르르"
"순욱이 어딨지? 여깄다!"
"이야! 하하하하."

무엇이 그리 좋은지 아이들은 쉴새없이 웃어댔다. 지치지도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숨으면 찾아줄 반 친구 1명이 있어서. 그마저도 없었다면 권우도 순욱이도 심심한 성장기를 기억하게 될 뻔했다.

학생 2명이 받는 수업

학생 2명과 선생님. 단출하다.
▲ 1, 2학년 교실 학생 2명과 선생님. 단출하다.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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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 방해가 될까 싶어 교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혹여 친구가 적은 것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1·2학년 담임 최주경 선생님은 작년에 초임으로 쌍호 초등학교에 발령받았다.

"아무래도 협동 수업이 불가능한 점이 있죠. 2명이니까 게임을 한다거나 릴레이 경주도 못하죠. 협동 수업은 약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은 학생 수가 강점이 되기도 한다. 개인별 '맞춤형 수업'이 되어 학습효과를 높이는 데 좋다. 또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도 좋다.

김영기 교장 선생님(60)은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것을 안타깝다고 했다.

"이 쪽으로 와보세요."

설명만으론 부족한 듯 기자를 학교 곳곳으로 직접 안내한다. 따라가 보니 복도 천정은 물이 새서 임시방편으로 막아 놓은 상태. 상수도가 연결이 안 돼서 생활용수는 지하수를 퍼서, 식수는 생수를 구입해서 각각 사용하고 있었다.

김 교장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도 학생들은 의성군 어느 학교보다 상을 많이 받아온다고 자랑을 한다.

"인원 비율로 보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상은 가장 많이 받아요. 전교생이 8명인데, 4월에 청소년과학탐구대회 군 예선대회에서도 7개를 받아서(금상 2, 은상 2, 동상 3) 거의 1인 1수상을 하는 꼴이 되니까요."

아이들 한명 한명을 선생님이 꼼꼼히 봐줄 수 있는 환경이 도움이 됐을 거란 분석이다.

인기만점! 방과 후 학교

사물놀이 교육을 받고 있는 권우
 사물놀이 교육을 받고 있는 권우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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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깽깽깽."

학교에 꽹과리 소리가 퍼진다. 소리 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농촌에서는 학원 가기가 힘들다. 도시엔 넘쳐나는 학원이 농촌에선 귀하기 때문이다. 쌍호초등학교가 위치한 안사면도 마찬가지다. 학원을 가려면 10여㎞가 떨어진 안계면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과후학교가 큰 보탬이 된다. 미술·수학·사물놀이·음악 등의 과목을 들을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프로그램이 단조롭다. 도시에선 외부강사도 초청해 영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지만, 여긴 교통이 불편해 외부강사가 잘 오지 않는다. 올해는 학교 선생님들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그램은 미술·수학·논술·사물놀이.

이날 과목은 사물놀이다. 교무부장 문석주(38)선생님이 담당하는 사물놀이는 재학생이 없는 3학년을 제외한 전학년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오마이뉴스> 기자도 오셨는데, 우리 솜씨 좀 보여줄까?"

문 교사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진지할 줄 모를 것 같은 아이들이 열심이다. 박자에 맞춰 자신의 몫을 해낸다. 막내 권우도 북을 잡았다.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시작한 건 올 4월부터다. 문 교사가 부임하면서 사물놀이 과목이 생겼다. 횟수로는 여덟 번째, 짧은 기간 배웠지만 제법 연주를 한다.

집에 있는 것 보다 학교 가는 것 좋아하는 권우

권우의 꿈은 '소방관'이다
 권우의 꿈은 '소방관'이다
ⓒ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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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르.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경주하듯 뛰쳐나간다. 곧장 향한 곳은 운동장 한 편의 링운동 기구. 삼삼오오 링운동을 즐긴다. 줄을 꼬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며 능숙한 솜씨를 선보인다.

이어서 권우는 물총놀이까지 한참을 더 논 후에야 걸음을 옮긴다. 물론 도시 아이들이 향하는 영어, 수학 학원이 아닌 집을 향해서다. 집으로 향하는 권우를 데리러 어머니께서 오셨다. 어머니께 권우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물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누나, 형들 있는 학교 가는 걸 더 좋아하죠. 그래도 폐교되지 않고 학교가 있는게 우리한테 복이에요.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선생님들도 열심히 하시니까요. 학생도 많은 큰 학교에서 더 잘 배우면 좋겠지만, 배우는 건 다 지 할 탓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나홀로 입학생으로 입학한 권우가 6학년 동희처럼 나홀로 졸업을 하게 되더라도 동희와 어머니의 말처럼 '형·동생이 있어서' 걱정은 없다.

혼자인 지금도 잘 크고 있으니까. 그저 권우가 맑은 웃음을 간직하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지금처럼 '즐거운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의 소원은 '화장실 보수'
학부모님들은 다양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얘들아, 소원이 뭐야?'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페인 중에는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이 공동 기획한  '나홀로 입학생을 위한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마을 주민들의 '소원'을 취재해 이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프라 지원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쌍호초등학교에서도 '소원우체통'에 편지를 받아 왔다. 도시 학교에 비해 손색없는 컴퓨터실이며 도서실이 있지만,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고학년인 6학년 강동희 학생이 할 말이 가장 많아 보였다.

"학교에서는 화장실이 구려서 싫어요. 앉(아) 싸가 아니라 쪼(그려) 싸여서 싫어요."

변기 모양에 대한 초등학생다운 표현이다. 1·2학년 담임인 최주경 선생님도 남녀가 같이 쓰는 지금의 화장실이 불편하다고 의견을 내놓으신다.

김영기 교장은 다른 소원이 있다. 제대로 도시 문화 체험을  한번 시켜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대구에서 도시문화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예산이 70만원 정도인데, 차량 대절에만 50만 원씩 나가거든요. 그러니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것 정도 체험해보고 돌아오죠. 개인적으론 아이들이 야구경기도 보고 하루 자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의 의견은 역시나 교육환경 문제다. 학교 앞을 지나시던 최씨 아주머니(48)는 학원이 멀어서 다채로운 교육을 못 시키는 것이 불만이다.

"교통이 불편해서 학원에 보내지 못해요. 애들 교육시키려고 사는 건데, 자꾸 농촌 죽으라 죽으라 하는 거라.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이라도 외부강사도 오고 해서 다양하게 꾸미면 좋겠습니다. " 

3학년 혜정이 아버지(44)도 옆에서 거든다.

"아무래도 영어라도 좀 배워야지. 학원에 보내면 한 자라도 더 듣고 오지 않겠습니까?"





태그:#쌍호초교, #정권우, #나홀로입학생,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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