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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는 중전의 침전이다. 사진은 창경궁 통명전.
▲ 통명전. 구중궁궐 깊은 곳에 있는 중전의 침전이다. 사진은 창경궁 통명전.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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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심양 공기와는 달리 창경궁은 평온했다. 득달같이 다그치던 식량 독촉도 느긋해졌다. 흉년으로 어려움에 처한 조선을 청나라가 많이 봐준다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어렵게 징발하여 보낸 수군이 돌아온다니 조정은 환영했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소현세자가 병문안을 다녀가고 봉림대군이 다녀갔다. 대질로 심양에 가있던 원손도 돌아왔다. 헤어져 있던 아들들을 보아서 일까? 인조의 병환도 많이 호전되었다. 체력이 회복된 낌새를 맨 먼저 알아 챈 사람은 소원 조씨였다. 한동안 비어있던 중궁전을 장열왕후가 지키고 있었지만 소원 조씨가 놓아주지 않았다. 임금이 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후궁이 임금을 꿰차고 놓아주지 않은 형국이었다.

"전하! 전하의 병환이 쾌차하시니 소첩이 즐겁습니다."

운우의 정을 나눈 소원 조씨가 인조의 품을 파고들며 속삭였다.

"소원이 즐겁다니 내 마음이 기쁘오."

품속에 안긴 소원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밝은 웃음이었다.

"아이, 그렇게 쳐다보시면 부끄럽사옵니다."

스물여섯 농익은  몸으로 인조의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며 교태를 부렸다.

"중궁전도 가끔 찾아 주셔야 소첩이 민망하지 않습니다."

품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소원이 인조를 바라보았다. 초승달 같은 눈을 치뜨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원의 마음이 하해 같으니 내 마음이 편안하오. 중전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군대 보내지 않는 것이 애국이고 세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

"이번에 군사들이 돌아오는 것은 전하의 은혜라고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합니다."

"잘못된 뜬소문이오. 우리 군대를 청나라가 필요 없게 되어서 돌려보내는 것이오."

"그것보세요. 소첩이 말씀 드린대로 군대와 식량을 보내지 않았으면 이렇게 오가는 번거로움이 없었을 것 아니에요. 소첩의 생각이 옳았지요?"

"지나놓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소."

"돌아올 군대와 식량을 자꾸만 보내달라고 하는 세자는 도대체 어느 나라 세자인지 모르겠어요. 오랑캐가 후하게 대접해주니까 청나라 사람이 다 된 것 같사옵니다. 세자는 우리나라 세자가 아니라 청나라 세자인 것 같아요."

품속을 빠져 나온 소원이 새침한 모습으로 인조와 마주 앉았다.

"심양에서 어려움에 처한 세자의 마음을 나는 이해하오. 동궁을 너무 탓하지 마오."

"아닙니다. 천오백 군사도 돌아올 수 있었는데 세자가 임장군에게 명하여 해주위로 가게 했다 합니다."

인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군통수권은 오로지 임금에게 있다. 세자가 그것을 행사했다면 발칙한 도발이다. 용납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역린(逆鱗)이다. 도발이 사실이라면 국법으로 다스릴 중죄다.

"그 소리를 어디서 들었소?"
"관직을 내려준 전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며 김대장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전하께 감사는 무슨 감사. 교활한 허언이다. 김자점이 찾아온 것은 인조의 성은에 감사하다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베게머리 송사로 자신을 복권 시켜준 소원에게 백배사례하기 위하여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조는 소원의 말을 믿었다. 김자점이라면 믿을만한 소식통이다. 혁명동지이며 반정공신이지 않은가. 한동안 소원했지만 그것은 주위의 이목을 의식해서 그랬을 뿐, 인간이 미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해야 한다는 간관들의 성화가 있었으나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이 보은하는 것만 같았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면 목숨 바쳐 충성 한다

병자호란 당시 서북 도원수로 청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유배당했던 김자점은 소원 조씨의 도움으로 유배가 풀렸다. 강화유수로 제수된 지 한 달 만에 호위대장으로 끌어올린 소원은 판윤으로 밀어 올렸다. 소원은 김자점을 수하처럼 부렸고 김자점은 소원이라는 끈을 이용하여 사지에서 풀려나 출세가도를 달렸다. 소원은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원해주었을 때 그 사람이 목숨 바쳐 충성한다는 사실을 터득한 여인이었다. 

호란 당시 평안도와 황해도의 군권을 쥔 김자점과 의주부윤이었던 임경업은 위계상 상하관계였다. 개전초기.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김자점에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존경하는 선배 장군이었다. 임경업. 그는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은 강직한 성품의 군인이다. 반청이 애국이고 애국이 곧 반청이라는 반골정신이 강한 무장이었다. 이러한 애국심에 부채질을 한 사람이 김자점이다.

"전하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소첩에게 비책이 있습니다."
"무슨 비책이냐?"

인조는 귀가 솔깃했다.

"지금은 말씀 드릴 수 없고 소첩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슨 소원이냐 어서 말해 보거라."

인조가 마른침을 삼켰다.

"소첩이 왕자를 생산한 지가 언제인데 소원이 무엇입니까? 나인들 보기가 부끄럽사옵니다."

소원이 눈을 흘겼다. 숭선군 이징이 벌써 돌이 지났다. 왕자를 생산했으니 정4품 소원이 불만이고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았다. 내가 깜빡했구나. 내명부에 특별히 지시하여 품계를 조정하라 하겠다."
"늦었으니 몇 계단 뛰어 올리실 거죠?"

소원이 인조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앙증맞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이튿날. 인조는 교지를 내렸다.

"소원 조씨를 소용으로 한다."

숙용을 건너 뛴 파격적인 조치였다. 정소용은 불만이었으나 후궁전은 경사였다. 수많은 하례객이 찾아왔고 그 중에서 판윤 김자점이 선착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하례품이 쇄도했다. 후궁전이 시끌벅적하니 대궐이 활기를 되찾았다. 을씨년스럽던 창경궁에 종종걸음 궁녀들의 발길이 바빠졌고 노복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 때였다. 돈화문 앞에 10여필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착했다.

하마비.  대궐과 종묘에 세운 하마비. 사진은 종묘에 남아있는 하마비다.
▲ 하마비. 대궐과 종묘에 세운 하마비. 사진은 종묘에 남아있는 하마비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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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문을 열어라."

궁궐을 숙위하던 군사들이 깜짝 놀랐다. 대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을 타고 다닐 수 없다. 1품 이하는 궐문으로부터 10보, 3품 이하는 20보, 7품 이하는 30보 거리에서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도 보지 않았단 말인가.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닐까? 숙위군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엄하구나. 여기는 궁궐이다. 말에서 내려라."

"잘 알고 있다. 나는 심양에서 온 빈객이고 여기 계신 분들은 청나라 장수들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신다."

이행원은 말을 타고 궁궐에 들어가겠다는 자신의 말이 법도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청나라 장수들의 위협에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숙위군들이 꿈쩍하지 않았다.

"이놈들을 그냥…."

지켜보던 청나라 장수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창을 쥔 숙위군들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자 청장이 칼을 빼들고 대궐문으로 향했다. 놀란 숙위군들이 혼비백산 도망쳤다. 문을 열어젖힌 청나라 군사들은 금천교를 지나 양화당으로 직행했다.

"영의정, 이조판서, 도승지 그리고 박황은 사흘 안에 모두 이곳으로 오라. 만일 기한 내에 오지 않으면 반드시 큰 우환이 있을 것이다."

빈객 이행원이 인조에게 용골대의 명을 전했다. 구련성에 도착한 용골대가 중강에 머물며 조선 대신들을 호출한 것이다.


#소현세자#인조#양화당#용골대#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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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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