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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검찰이 은근히 괴롭겠다는 게 기자 생각이다. 권력과 연결된 사건이 연속해서 두 건이나 터졌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언니인 김옥희씨가 공천청탁 대가로 30억3000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받은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열 상임고문 등 한나라당 인사들이 국방부에 납품하려는 한 업체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은 사건이다.

 

특히 후자는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자칫 '권력형 비리'로 커질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그런 징후를 감지하는 '후각'이 잘 발달해서일까? 정권교체 직후부터 '정치색'을 노골화해온 검찰이 두 사건을 처리하는 데 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애초부터 공천비리 접근하려는 의지 없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 7월 중순께 한달 반이 넘도록 내사한 '김옥희 공천뇌물 수수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후 보름이 지난 7월 31일, 검찰은 김옥희씨를 전격 체포했다. 공천로비 대가로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으로부터 30억여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김옥희씨가 공천에 관여할 의사와 능력이 없고, 그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며 김씨에게 사기혐의를 적용하고 사건을 금융조세조사2부에 배당했다.

 

금융조세조사2부가 주로 조세고발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로 알려졌다. 검찰이 애초에 이 사건을 공천비리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이 사건은 특수부에 배당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내부에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서에 사건을 배당한 것이다. 이는 검찰이 청와대의 내사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이후 안필준 대한노인회 회장과 이아무개 서울시의원, 인테리어업자 김태환씨 등의 증언을 통해 김옥희씨가 매우 집요하게 '공천로비'를 벌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그러자 검찰 내부에조차 김옥희씨 등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한 젊은 검사는 "현재 김옥희 사건 수사는 정도를 벗어났다"며 "사기죄를 적용하는 것은 '덮는 수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김옥희씨를 구속한 지 10일 지나서야 핵심인물인 김종원 이사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이 사건 초기 '사기사건 피해자'로 규정했던 김 이사장을 '공직선거법상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것이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교통업계의 MB맨'을 풀어놓고 있다가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 결국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는 등 수사방향을 튼 셈이다. 

 

청와대 수사의뢰 받고 바로 체포... "공범 3명 중 2명이 사기죄로 수배중" 저의는?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는 '김옥희사건'에서 그치지 않을 듯하다. 김종원 이사장을 소환조사하기 전날(8일), 검찰은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긴급체포했다. 국방부 납품 청탁을 대가로 한 통신업체 대표로부터 2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국방부 납품비리 의혹' 수사가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의 수사의뢰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검찰이 맹 수석의 수사의뢰가 있던 바로 그날 유한열 고문을 긴급체포하는 등 아주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관계자는 11일 "지난 금요일(8일)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수사의뢰가 들어와 그날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며 이렇게 해명했다.

 

"이미 진정서, 진술서, 계좌 등이 있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범의 소재가 불분명해 신속한 신병확보가 필요해 유한열 고문을 긴급체포한 것이다."

 

몇시간 만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뒤 특수부에 사건을 배당하고 유한열 고문을 체포했다는 얘기다. '김옥희 공천뇌물 수수사건'을 처리할 때와 크게 대비된다.  

 

게다가 검찰이 이번 사건을 은근히 '사기사건'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징후가 엿보인다. 검찰은 11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유한열 고문 외에 국방부 납품비리에 연루된 나머지 3명의 '전력'을 기자들에게 슬쩍 흘렸다.

 

"공범 3명 중 2명은 (이 사건과) 별건으로 사기죄로 지명수배된 상태다. (그들은) 사기 전과가 수 회 있는 것으로 안다."

 

기자들이 물어보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검찰이 '김옥희씨와 청와대의 통화 내역' 등 다른 중요한 질문에는 "수사중이라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없다" "보고받은 바 없다" "모르겠다" 등 소극적으로 응대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검찰이 이렇게 피의자의 전력을 은근슬쩍 흘리는 것은 '국방부 납품비리 의혹' 사건을 '권력형 비리' 차원이 아닌 '사기전과가 있는 자들이 저지른 사건'으로 치부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예전에 "검찰은 전체 사건 중 권력과 관련된 1%의 사건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썼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런데 정권교체 이후 검찰은 그의 '충고'를 잊고 '정치검찰'을 자임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찰이 스스로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는 사건 앞에서 발톱조차 세우지 않는 '종이호랑이'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태그:#국방부 납품비리, #유한열, #김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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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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