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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새벽 종로2가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

 

30여명의 시민들이 도로 위에 나와 "명박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고작 10분도 되지 않아 경찰이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 사람들은 골목으로 인도로 정신없이 흩어졌고 경찰은 그들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한 번에 2~3명씩 호송차로 끌려갔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경찰은 잠시 물러났다가 한 번에 몰아치며 시민들을 해산시켰다. 그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와 질주 뒤에는 살이 꺾어진 우산 몇 개와 주인을 잃어버린 슬리퍼 몇 개가 도로 위에 남아있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감시단 소속 활동가는 끌려가는 사람에게 연행시 행동방법, 인권단체 및 변호인단 연락처가 적힌 카드를 전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전경은 연행자를 두 겹으로 둘러싸고 방패를 머리 위로 올려 그를 사정없이 밀어냈다.

 

지휘관은 "해산방송을 했느냐",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냐"고 항의하는, 바로 코앞에 있는 이에게 확성기를 들이대며 "했다, 아까 하지 않았냐"고 소리쳤다. 2시간 전 횡단보도 시위를 하고 있던 이들에게 했던 해산방송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고 있었다.

 

상식과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는 그날 시민들은 '악' 밖에 안 남았다. 자신들의 팔을 꺾고 옷깃을 낚아챌 그들을 향해 "매국노" "쪽바리"라고 조롱했다. "나도 잡아가라"고 가슴을 디밀었다. 100차 촛불집회에서 경찰이 연행한 시민의 수는 총 157명이었다.

 

브래지어 탈의까지 강요한 경찰... 인권 의식은 '제로'

 

'촛불시민'들에게 경찰은 '일제 순사'나 다름 아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응원하는 차량시위가 시작되자 차를 끌고 나와 경적을 울린 시위자도 모조리 잡아넣겠다고 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 '21세기 백골단' 경찰기동대 창설식에 참석해 기동대 간부들에게 일일이 '금일봉'을 쥐어줬다. 또 시위대를 연행해 마일리지를 쌓고 그를 통해 연말 특진, 표창장 등으로 보상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촛불을 든 시민들 입장에서 독립군을 '사냥'하던 순사나 자신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하는 경찰이나 똑같이 보일 수밖에 없다. 

 

경찰의 인권의식도 갈수록 낙후되고 있다. 시위대 진압을 위해 '경찰장비관리규칙 82조'를 어겨가며 사람에게 물대포를 쐈고, 방패와 진압봉으로 도망치는 시민들의 머리를 찍었다. 그래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었다.

 

경찰의 인권 의식을 보여준 결정판은 지난 16일이었다.

 

마포 경찰서는 지난 16일 촛불시위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20대 여성에게 경찰서 유치장에 입감하면서 브래지어를 벗도록 요구했다.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요구한 적 없던 속옷 탈의 요구를 경찰이 강요한 것. 그가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자살 위험 등 때문에 규정상 그렇게 돼 있다"며 계속 요구해 결국 여성으로부터 브래지어를 받아냈다. 더구나 이 여성이 변호사 접견을 받으러 나올 때는 수갑을 채워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변호사 등의 항의로 브래지어를 돌려받고 수갑이 풀리긴 했지만 경찰은 "피의자가 촛불집회 이후 최초로 체포적부심을 신청해 유치기간이 길어질 것을 감안,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 중 '유치인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 방지 목적으로 유치인 소지품을 출감 시까지 보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집시법 위반이 도주를 계획할 정도의 중범죄는 아니다. 자살까지 생각하게 할 정도의 중범죄는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집시법 위반 연행자에게 이 규정을 적용한 전례는 없었다. 경찰이 자의적으로 규정을 내세운 것 뿐이다.

 

인권단체들도 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에 따르면 브래지어는 자살위험이 있는 물품도 아니고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된 사람들은 48시간 내에 구금에서 풀려나기 때문에 자살할 이유도 없다"며 "경찰이 '규정'과 '자해위험'을 운운한 것은 법과 상식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견(犬)찰' 돼 버린 경찰... 더 이상 공권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한국진보연대 회원들은 전국 165개 경찰서 앞에서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13일부터 시작된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서명은 하루만에 10만명을 돌파했고 14일 오전 10시까지 총 11만7583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조롱도 거세지고 있다. 이미 경찰은 인터넷 상에서 '견(犬)찰'로 통용되고 있고, 다음 아고라에서는 여성 연행자의 브래지어를 압수했던 마포경찰서에 속옷을 보내주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독재정권 하의 경찰과 지금의 경찰을 비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김현 부대변인은 18일 논평을 통해 "전두환 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일로 군사독재의 망령이 되어버린 줄 알았던 작태가 이명박 정권의 권력의 주구가 된 경찰에 의해 30년이 지난 오늘, 국가경쟁력 세계 13위의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 같은 분노 앞에서 그토록 경찰이 강조했던 '공권력'은 더 이상 없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공권력'은 단순한 폭력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공권력이 그랬다. 20여년이 지난 뒤에야 그들의 폭력은 과거사위원회·사법개혁추진위원회 등을 통해 낱낱이 공개됐다. 그에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엄청났지만, 완전한 치유는 없었다.

 

16일 새벽 종로2가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생각했다. 20년 뒤 우리는 어떤 과거사위원회를 만나게 될 것인가.


태그:#어청수, #촛불시위, #강제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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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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