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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하면 ‘백담’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담담이, 골골이 흐르는 물은 그야말로 백담사계곡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웬만하면 ‘백담’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담담이, 골골이 흐르는 물은 그야말로 백담사계곡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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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도 없이 ‘툭, 탁, 쏙’ 하며 떨어지는 도토리의 난타연주는 또 어떻고. 도토리 연주 중에는 그래도 물속으로 떨어지며 연주하는 ‘쏙’ 하는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
 예고도 없이 ‘툭, 탁, 쏙’ 하며 떨어지는 도토리의 난타연주는 또 어떻고. 도토리 연주 중에는 그래도 물속으로 떨어지며 연주하는 ‘쏙’ 하는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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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계곡물 재잘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담담이, 골골이 흐르는 물은 그야말로 백담사 계곡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들이다. 지난 4일 우리 가족이 찾아간 계곡은 풍치로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계곡일 것이다.

외설악만 찾는 이들에게는 아직도 낯선 곳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심심유곡을 끼고 앉아있는 백담사를 아직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가 본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가 거기 있을 때는 매스컴도 자주 백담사를 비춰줬었다.

계곡으로 옥구슬들이 구른다

백담사 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한참 전에서 길을 막고 버스표를 판다. 용대리 만해마을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표를 끊어야 백담사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길이 자그마치 걸어서 두어 시간 걸린다. 하긴 우리 식구의 발걸음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매표하는 직원은 한 시간 반이면 백담사까지 간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안위가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운동 삼아 걷기로 했다. 실은 운동이 목적이라기보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경치 때문인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몇 해 전 왔을 때는 버스 타고 오르내렸는데 멋진 풍경을 구경은 했지만 즐기지는 못했었다. 그때 각오했었다. '다음에 오면 걸어서 오르리라'고. 세 식구의 의견이 일치했고 우리는 걷기로 했다. 걸으면서 계곡이 주는 아름다운 풍치로 인하여 걷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돌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 돌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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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다 못해 푸른 물 위로 벌써 가을여행을 떠나는 낙엽들이 흐른다.
 맑다 못해 푸른 물 위로 벌써 가을여행을 떠나는 낙엽들이 흐른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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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계곡 사이로 불어나오는 싸늘한 바람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가끔씩 튀어나와 가던 길손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다람쥐가 얼마나 앙증맞던지. 예고도 없이 '툭, 탁, 쏙' 하며 떨어지는 도토리의 난타연주는 또 어떻고. 도토리 연주 중에는 그래도 물 속으로 떨어지며 연주하는 '쏙' 하는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

굳이 어느 것이 하늘빛이고, 어느 것이 물빛이며, 또 어느 것이 나뭇잎인지 구분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자연이고, 모두가 음악이며, 모두가 풍경이다. 빠르게 내달리던 물줄기가 멈추는 담소에는 벌써 이른 가을 여행을 떠나는 낙엽들이 한가로운 망중한을 즐긴다. 계곡에는 섬섬옥수 옥구슬들이 흐른다. 그냥 떠서 마시면 폐부까지 시원할 것 같다.

백담사가 입장료를 안 받는 이유?

그렇게 경치에 취해 둬 시간을 걸으니 너른 마당 갖춘 백담사가 우릴 반긴다. 벌써부터 내려가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이 장관이다. 울긋불긋한 옷차림 때문일까. 단풍은 산에 든 게 아니라 길에 길게 늘어져 들었다.

그 곁을 지나는데 단체로 왔는지 또래가 비슷한 아주머니들이 너스레를 떨고 있다. 들으려고 해서가 아니고 그냥 들리는 그들의 주제는 백담사가 왜 입장료를 안 받느냐는 거다. 근데 그들의 말 속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오르내린다.

"에이 것두 몰러? 이렇게 부잔데 입장료를 또 받으면 안 돼지?"
"맞구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여기 살면서 시줄 많이 한 모양이여."
"이 아줌마 봐 몰라도 한참 모르네. 그 양반 29만원 밖에 없다고 했어?"
"하하하, 호호호."

 아내와 아들이 널찍한 바위 위에서 포즈를 잡았다.
 아내와 아들이 널찍한 바위 위에서 포즈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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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담사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
 백담사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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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입장료는 이제는 없다. 하지만 사찰들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그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문화재관람료가 국립공원입장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이 아주머니들의 주제도 공원입장료가 아니라 문화재관람료에 대한 이야기일 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다른 유명산에 있는 대부분의 사찰들과는 달리 백담사는 문화재관람료를 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럼 백담사에는 문화재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백담사에는 '목조아미타불좌상부복장유물'과 '한계사지북삼층석탑' 등의 보물이 있고, 백담사에 딸린 봉정암에는 문화재인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그럼, 다른 데보다 문화재가 적어서 그런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돈을 내고 설악산 국립공원에 입장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문화재관람료든 공원입장료든 간에 안 내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백담사계곡도 백담사도 풍경이 너무 좋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

꽤 넓게 자리를 잡은 백담사는 여느 사찰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1879년~1944년)이 입산수도를 한 곳이어서 그런지 만해를 회상할 만한 장소들이 있다. 특히 만해축전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현수막은 백담사계곡에 들어서기 전 만해마을에서도 나풀거렸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님의 침묵>의 소절들이 머리에 스친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이하 구절은 생각이 안 난다.

 경내를 벗어나 계곡으로 나오자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다. 자신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한 돌 한 돌 쌓아올렸을 그네들, 참 정성이 지극하다.
 경내를 벗어나 계곡으로 나오자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다. 자신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한 돌 한 돌 쌓아올렸을 그네들, 참 정성이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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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모양을 한 절구가 동전을 잔뜩 담은 채 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신 동전을 그 절구 안으로 던진다.
 연꽃모양을 한 절구가 동전을 잔뜩 담은 채 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신 동전을 그 절구 안으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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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데까지만 외워도 백담사계곡과 그 곁으로 났을 오솔길(지금은 널찍이 포장되어 버스가 쉴 사이 없이 드나드는 그 길)의 그림이 그려진다. 얼마나 힘든 발걸음이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님', 시 속의 그 '님'이 되어 백담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조화와 단아함, 풍치와의 어울림 속에 너무 잘 어울리는데 딱 한 군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마음을 상하게 한다. 법당 바로 앞에 자리한 화엄실의 한 칸 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안내문이 없었더라면 누가 그의 거처를 알기나 할까.

사찰 측은 친절하게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사용하던 단칸방에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던 곳입니다'라고 친절하게 글씨까지 써 문 위에 붙여놓았다. 그 당시 찍은 사진들도 마루에 놓여있다. 그러고는 다시 마루 밑에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해도 떠오르기 전에 군불로 땔 장작을 패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을 보며, 그렇게 초라하고 측은해 보일 수가 없다. 백담사는 아직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은 상한 맘으로 법당 처마 끝에 달린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법당 뒤쪽으로는 약수를 먹는 데가 있고 그 뒤로 연꽃모양을 한 절구가 동전을 잔뜩 담은 채 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연신 동전을 그 절구 안으로 던진다. 들어가는 동전보다 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더 많다. 어린이 두 명이 샘물 옆에 놓인 동전을 슬쩍해 절구로 집어던진다. 뭐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꾹 참았다.

경내를 벗어나 계곡으로 나오자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다. 자신의 희망과 소원을 담아 한 돌 한 돌 쌓아올렸을 그네들, 참 정성이 지극하다. 돌탑의 의미를 모르는 내게는 산과 계곡과 사찰과 어우러지는 또 다른 풍경으로의 조화가 아름다울 뿐이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백담사계곡의 물소리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백담사에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여전히 떠나지 않는다. 만해 한용운보다 전두환 전 대통령 머물던 곳으로 통하는 백담사, 이젠 그 이름 지울 때가 되지 않았는지….

 법당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아름답다.
 법당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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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한 군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마음을 상하게 한다. 법당 바로 앞에 자리한 화엄실의 한 칸 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딱 한 군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마음을 상하게 한다. 법당 바로 앞에 자리한 화엄실의 한 칸 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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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전두환#한용운#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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