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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켄트에서 누쿠스로 가는 국내선 항공기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타쉬켄트에서 누쿠스로 가는 국내선 항공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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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사막이야"

타쉬켄트에서 누쿠스로 가는 우즈베키스탄 국내선 항공기. 옆자리에 앉은 말레이시아 친구가 창밖을 보면서 말한다. 이 친구 말대로 비행기 아래로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사막이 펼쳐지고 있다. 저 사막 속에서 혼자 걷는 내 모습을 떠올리자 기대감과 동시에 생겨나는 두려움.

사막의 열기 못지않게 이 항공기 내부도 덥다. 더위가 한풀 꺽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태양이 뜨거운 8월 말. 항공기의 에어컨은 이륙할때까지 작동하지 않았고, 그 시간 동안 승객들은 모두 땀을 흘리며 앉아있어야 했다.

"사우나"

말레이시아 친구는 아까부터 몇 차례 이 말을 반복한다. 정말 사우나 못지않게 더운 항공기다. 누쿠스 북쪽의 원유 개발 현장에 일하러 간단다. 내가 누쿠스에서 타쉬켄트까지 걸어서 간다니까 이 친구는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한다. 잠은 어디서 자려고 하냐? 밥은 어떻게 먹냐? 며칠 정도 걸릴 것 같냐?

"사막에서는 작은 전갈을 조심해. 큰 전갈은 상관없는데, 작은 전갈은 독이 있거든. 혹시 사막에서 잠을 자거든 아침에는 꼭 신발을 점검해봐. 작은 전갈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말레이시아에 오거든 꼭 사라왁(Sarawak)을 방문해보라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이 온통 곧 시작하게 될 도보횡단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타쉬켄트에 도착하고나서 누쿠스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며칠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걸으면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길까

그동안 타쉬켄트에서 항공권 연장과 거주등록 등의 필요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매일 시내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하루에 10km 이상 걷기를 빼놓지 않았다. 걷기운동은 사실 4월부터 한국에서 거의 매일 해오던 것이다. 한강 둔치에서 하루에 8∼10km 정도 걸었다.

여기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도보여행을 앞두고 체력을 키우는 것, 다른 하나는 장기간 걷기를 하면 몸에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 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습이었던 셈이다. 처음으로 나타난 이상은 발에 생겨난 물집이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옆에 작은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고, 또 그 옆에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고 아물고... 이런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특이한 것은 왼발은 멀쩡한데 오른발에만 물집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내가 오른손잡이인데 이와 연관있는 것일까. 또 다른 이상은 허벅지 안쪽에 쓸림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안쪽 살갗이 벗겨지고 걸을 때마다 그 부위에 마찰이 일어나면서 통증이 생겨난다. 의외로 걸음을 걷는데 방해가 된다.

그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다리에 근육통이 생기고 허리가 뻐근해진다는 점 정도. 물론 도보횡단을 시작하면 하루에 걷는 양이 연습때와 비교해서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매일 걷는다면 몸에 생기는 부작용도 더욱 심각한 양상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내가 걸어야 할 거리는 약 1200km. 나의 보폭이 80cm라면 총 150만보를 걸어야 하는 거리다. 하루에 40km씩 걷는 다면 30일에 주파가 가능하다. 하지만 난 로보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는 걷지 못한다. 걸으면서 주위환경에도 신경써야 한다. 날씨는 어떤지, 얼마나 걸어가면 쉬어갈 만한 집이 나올지, 물과 식량은 충분한지 등. 그리고 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올 현지인들도 요령껏 상대해야한다.

이런 것들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하루에 과연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들더라도 하루에 20km씩 걷는다면 총 60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목표는 60일로 잡았다. 그날그날 상태에 따라서 더 걸을 수 있는 날이 많겠지만.

도보 여행을 위해 간략하게 짐 꾸리기

어떻게 짐을 꾸릴까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어떻게 짐을 꾸릴까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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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꾸리기 완성!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배낭 꾸리기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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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획을 세우자 마음이 편해졌다. 먼 길을 떠나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고 하던가? 40리터짜리 배낭에 최소한의 물건만 챙겼다. 1인용 텐트·침낭·속옷 한 벌·반바지 2개·반소매 셔츠 1개·얇은 점퍼 1개·수건과 세면도구·비상약품·1회용 면도기 몇 개·지도 여러 장 등. 보조가방에는 카메라·여권·돈·필기도구만 넣으면 된다.

이렇게 하자 짐의 무게는 약 8kg가량이 되었다. 여기에 그날 필요한 물과 식량을 합치면 10kg을 약간 초과하는 정도가 될 것이다. 나의 몸이 이걸 짊어지고 두달 동안 견딜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타쉬켄트 시내를 전부 뒤져서 작은 핸드카를 하나 샀다.

핸드카에 배낭을 얹어서 묶고 밀면서 걷는다면, 짐에서 해방된 내 몸은 훨씬 가볍게 걷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실크로드 상인들은 말과 낙타를 몰고 갔을텐데, 나는 이제와서 그 대신에 핸드카를 이용한다. 네발 달린 짐승에서 두바퀴 달린 도구로의 변화. 이거야말로 진화의 성공적인 사례다.

"근데 왜 걸어서 여행하는 거야?"

말레이시아 친구가 또 나에게 묻는다. 많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뭐라고 집어서 말하기가 곤란하다. 한국에 있을 때 개인 블로그에 우즈베키스탄 도보여행 관련 글을 몇 차례 올렸다. 그때 어떤 방문객이 "도보여행을 왜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어쩌고저쩌고"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도보여행을 왜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라고 댓글을 남겼다.

지금 생각해도 참 성의없는 댓글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유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극기'와 연관된 것이다. 그동안의 나태했던 여행이 왠지 후회되서 이번에는 좀더 힘든 여행 속으로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다.

장거리 도보여행을 통해서 육체를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고, 말이 안 통하는 낯선 장소, 언제 물과 식량을 구할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나의 정신을 긴장하게 만들고 싶었다. 끝이 안 보이는 사막에서 다가갈수록 멀어져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지금은 누쿠스행 비행기에 편하게 앉아있다. 누쿠스에 도착하면 타쉬켄트까지는 1200km가 남는다. 올때는 최첨단 교통을 이용하면서, 돌아갈 때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동한다. 별다른 이변이 없는 이상 이 비행기는 무사히 누쿠스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의 여행도 시작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도보횡단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쿠스의 바자르(시장)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누쿠스의 바자르(시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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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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