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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다. 가뜩이나 저질 체력을 보강할만한 에너지 섭취를 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기력과 두통은 올긴에서의 달콤한 휴식은 고사하고 그냥 숙소에 쳐박혀 잠이나 자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전날 약을 복용했음에도 차도가 없었다. 침대에 눕자 아예 어깨와 왼쪽 무릎까지 3단 콤보로 통증을 일으키는데 눈물 쏙 빠질 정도로 정말 애먹이고 있었다. 관절은 굽히기만 해도 심하게 땡기며 고통을 몰고 왔다.

 

'침대 위의 좀비가 되겠는가, 자유로운 피터팬이 되겠는가!'

 

마음과는 다르게 몸을 가눌 수도 조차없는 참담한 현실의 내 상태는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최선은 일단 눈을 감는 것이었다. 꿈나라가 아닌 꿈같은 시간을 기대하면서….

 

 

두어 시간의 오침으로 거짓말 같은 반전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회복의 기미는 보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 유명하다는 올긴의 공원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라틴 지역에서는 까떼드랄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빠르께(공원)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올긴은 특이하게도 독립된 공원이 연달아 3개(Cespedes, Calixto, Peralta)가 이어져 있다.

 

늦은 오후, 나무들로 둘러싸인 공원은 한낮 더위를 몰아내고 선선함을 가져왔다. 상인들은 서서히 장사를 접을 채비를 하고, 너른 공간으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흔하지만 편안한 장면을 보고는 아직 몸이 성치 않은 관계로 한 시간 가량의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 J와 다시 공원엘 나왔다. 늘 그렇듯이 미니 햄버거와 오렌지 맛 탄산음료로 저녁을 때웠다. 공원에는 낮과 다르게 주말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모두들 그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여유와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무리들 같았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또 대화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수백 명의 군중이 그저 밖에 나와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십대 애들은 나이에 비해 과도한 화장과 언밸런스한 옷차림의 엉성한 맵시로 멋을 냈고, 중년 커플들은 저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끼리끼리 트로바를 찾는다. 라이브가 연주되는 피자리아에는 맛과 멋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유명한 바(Bar)인 '비틀즈'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런, 반바지에 나시 차림이라 입장을 거부당했다. 바의 품위를 위해 물을 가리는 것이다.

 

올긴 공원서 주말 저녁마다 열리는 미니콘서트

 

 

공원을 돌아다니는 우리에게 웬일인지 자꾸 사람들이 붙었다. 풀린 동공과 지친 걸음을 보니 약에 절은 듯한 한 여인이 배가 고프다고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스스로 술과 마리화나에 빠져 있다고 솔직히 고백한 어느 남자 역시 처량한 표정으로 자비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여행자란 사실부터가 충분히 뭔가 있는 사람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우리는 원칙대로 돈을 주는 대신 먹을 것을 사 주었다. 혹시나 주는 돈으로 다시 약을 할지 엄한 곳에서 말초적 신경을 자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돈이란 게 사람의 정신을 한순간에 피폐시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의 작은 배려였다.

 

올긴의 공원들이 스페인 군대로부터 올긴을 독립시킨 전설적인 영웅 깔릭스토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등 명성과 함께 넓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공원의 참맛을 경험하기 전까지의 편견에 불과했다. 공원을 한 바퀴 더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산 호세(San Jose) 성당 앞에 공연무대가 설치된 것을 보았다. 낮에는 없던 것이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주말 저녁에는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미니 콘서트가 열린단다.

 

 

무대 설치 완료에 이어 밴드의 연습 세션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근에서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불과 몇 분 만에 150여석에 이르는 좌석이 다 차서 상당수는 자리 없이 둘러서서 구경해야 할 정도였다. 밴드는 개성 강한 젊은 층이었다. 언제까지나 쿠바의 대중음악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보컬리스트 콤파이 세군도가 작곡한 시대의 명곡 '찬찬'만으로 대변될 수는 없다는 작은 반란 같아 보였다.

 

'이건 쿠바 음악이 아니잖아?'

 

그랬다. 그들의 음악에는 여느 쿠바의 도시에서 손쉽게 들어왔던 아프리카의 드럼과 스페인의 키타 사이에 스며든 정열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살사도 없었고, 룸바도 없었다. 대신 현대적 감각에 맞게 디자인 된 공연 무대는 일렉 기타와 키보드, 베이스 키타와 드럼 등을 앞세워 비트 빠른 록을 연주하고 있었다. 쿠바라서 새삼 생경한 장면이었다. 놀라운 건 이런 젊은 층의 음악인데도 관람객은 오히려 30~40대가 많았다는 것이다.

 

라틴의 화끈한 피를 가져서인가. 리드 싱어의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에 매료된 관객들의 반응도 호조를 보였다. 노래가 몇 곡 진행되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여행자들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오히려 현지인들이 더 난리였다. 분명 노래는 록인데 춤은 몸을 가볍게 흔드는 것을 넘어서 일부는 급기야 살사까지 선보였다. 상식을 깨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시끄러운 록보다는 잔잔한 발라드를 선호하는 편이기에 몇 곡의 노래가 끝나고 군중에서 이탈하려 들때 쯤 마지막 노래에 대한 멘트가 나왔다. 딱 한 시간의 공연 시간을 준수하는 것이다. 마지막이란 말에 끝까지 남아 보기로 했다. 엔딩엔 뭔가 특별한 것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고막을 열어젖히고, 심장을 거칠게 울리는 드럼 소리가 혈맥을 뛰놀게 만드는 순간 어디선가 많이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관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쿠바에서 '라밤바'를 만나다니...

 

 

"빠라 바이라를 라 밤바! 빠라 바이라를 라 밤바~(Para bailar la bamba Para bailar la bamba)."

 

아, 이것은 분명 20여년 전 숱한 화제를 뿌렸던 그 유명한 영화 <라밤바>(La Bamba)의 록큰롤 곡 라밤바가 아니던가! 멕시코 출신인 10대 청춘의 노래에 대한 꿈과 사랑에 대한 좌절과 환희, 그리고 순식간에 얻은 명성만큼이나 허무한 죽음. 서정적이고 풋풋한 멜로 라인을 그리면서도 록큰롤의 열정이 가미된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 더할수록 값진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주인공 리치는 당시 도나로 감정이입이 되었을 숱한 10대 소녀들의 가슴에 불덩이를 던졌을 것이다. 노래로, 또 영화로….

 

생각해 보면 '리얼리티'(Reality)와 소피 마르소를 남긴 <라 붐>(La Boum), '라밤바'와 '도나'를 남긴 <라밤바>는 1980년 후반의 가장 뜨거운 청춘시대를 알린 10대들을 잠 못 들게 한 영화가 아닐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곡을 공중전화로 직접 들려주는 장면과 파티에서 함께 시선을 맞추며 떨리는 가슴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두 영화의 애틋하고도 달콤한 명장면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라밤바를 들으면서 그 때 그 반가운 감정들이 선연히 되살아남을 느꼈다. 

 

 

음악이 시작되고 나도 모르게 동공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가락 때문에 더욱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관객들이 춤을 추며 한바탕 '난리 부르스'의 향연에 빠지자 나 역시 그들의 음악과 춤과 열정에 함께 동화되면서 마음속으로는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비록 영화의 가슴 먹먹한 장면은 사라지고 노래가 가져다 주는 흥겨움만 남아있었지만 쿠바에서 이런 황홀한 노래를 만나게 된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지금 쿠바의 도시 젊은이들은 누가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팝뮤직을 다운받아 듣고,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한다. 이미 미국문화가 그들의 의식에 별다른 저항없이 들어와 있는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라밤바가 클래시컬한 혁명도시 올긴 한 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것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라밤바의 환상적인 연주는 공연이 끝나고서도 계속 잔상이 남아 있었다. 공연의 생리를 몰라서 혼자만 앵콜을 던진 나는 머쓱해졌다. 관객들은 라스트 곡이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그 와중에서도 행사 관계자에게 혹시나 다음 무대가 있는지 물어보니 그걸로 끝이란다. 그 멋진 무대에 앵콜 한 번 없는 매정함이라니! 그렇다 해도 그 한 곡만으로도 오늘 올긴에서 쉬는 동안 본전은 완전히 뽑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가 '도나'였다면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도 어느 새 두통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바탕 격정적인 무대를 관람하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나았다. 우울함을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린지는 이미 오래. 가슴은 아직도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쿠바는 매번 음악으로 사람을 달뜨게 만든다. 그만큼 매력이 있다. 떨림과 끌림이 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의 음악적 본능을 세차게 자극하는 것일까? 역사 속 오랜 압제와 무참한 억압으로부터의 솜털 같은 가냘픈 희망을 음악에서 찾아낸 것일까?

 

쿠바와 라밤바. 좀처럼 연관되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면이 만나는 지점에 난 운 좋게 발을 내딛고 있었다. 멋진 여행지 쿠바에서 감동적인 라밤바를 들을만큼 모든 게 완벽했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지금 내 옆에 J가 아닌 도나였다면 하는 되도 않을 욕심….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자전거여행, #라이딩인아메리카, #라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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