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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 사막의 포장도로
▲ 키질쿰 사막 사막의 포장도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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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이른 아침은 쌀쌀하다.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생수 2.5리터와 쟁반만한 빵 한개, 사과 두개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 시간은 아침 7시 30분. 키질쿰 사막의 한가운데로 포장도로가 뻥 뚫려있고 그 너머로 지평선이 보인다.

오늘부터는 좀 다른 방식의 걷기가 될 것이다. 어제까지는 특정도시나 마을을 목표로 걸었지만, 오늘부터는 그게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해질녘이 될때까지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해질때가 가까워지면 그러니까 저녁 5시가 넘으면 그때부터는 잠잘 곳을 찾아야 한다. 호텔은 당연히 없을테고 작은 식당이나 현지인 집을 발견하면 천만다행이다. 그냥 빈 건물도 나쁘지 않다. 최소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을 수는 있을테니까.

최악의 상황에서는 사막에서 노숙을 해야한다. '사막에서의 야영이 두렵냐?'라고 물으면 '두렵다'라고 대답하겠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두려운걸까. 사막에 어떤 괴생명체가 있을지 모르고, 밤에 기온이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고, 모래바람이 얼마나 강할지도 알 수없다.

그런 돌발사태에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른다는 것도 두렵다. 그리고 이런 여러가지 조건들 속에서 '난 혼자다'라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는 것'을 극단화시킨 것이 사막에서의 혼자 야영이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글자그대로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수천만 개의 별을 바라보며 혼자 밤을 맞이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타쉬켄트에서 도보여행을 준비할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전문가 장준희 박사를 만난 적이 있다. 장 박사는 나한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비는 안오지만 밤에는 돌개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사막에는 뱀과 전갈이 살고 거북이도 있다. 그리고 그 거북이가 사람을 물기도 한단다. 거북이가 원래 사람을 무는 짐승이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누비던 상인들도 아마 이 사막을 통과해서 사마르칸드와 중국의 장안으로 향했을 것이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걸어서 통과하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사막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일텐데, 난 뭘 믿고 물을 2.5리터만 챙겨서 길을 나섰을까.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사막의 컨테이너 여기서 사람들이 먹고 잔다
▲ 사막의 컨테이너 여기서 사람들이 먹고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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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일꾼들 구롬바이(오른쪽)와 바하디르
▲ 사막의 일꾼들 구롬바이(오른쪽)와 바하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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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보니까 사막 안쪽에 컨테이너가 하나 놓여있다. 시간은 오전 11시. 저 컨테이너의 정체는 무얼까. 그쪽으로 한두걸음 들어가보니까 안쪽에서 사람이 한명 나온다. 내가 들어가도 되냐고 시늉을 하자 어서 들어오란다. 그래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 컨테이너는 사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다. 구롬바이와 바하디르, 이 두명의 남자가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사막 안쪽에서 일을 한단다.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끝내 알수가 없었다. 컨테이너 안쪽에는 침대 두개와 냉장고, TV가 있다. 한쪽 벽에는 무슨 메모지를 잔뜩 붙여놓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모자를 벗고 땀을 닦았다.

태양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11시에 이곳에 들어왔으니 정말 운이 좋은 하루다. 요즘 사막에서는 오아시스 대신에 이렇게 컨테이너가 놓여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나에게 차와 빵을 대접하고 볶음밥을 만드는 중이니까 그것도 먹고 가란다.

컨테이너 밖에는 넓은 평상이 있고 티코 승용차에는 모래바람 때문에 커버를 씌워두었다. 구롬바이는 쌀을 씻어서 볶음밥을 만들고 바하디르는 당근과 양파, 토마토를 썬다. 부인과 자식들은 모두 우르겐치에 있단다. 가끔 가족들을 보러가고, 필요한 물과 음식재료들은 주기적으로 트럭이 와서 공급해준다.

이런 곳에서 일하며 살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편으로는 심심하고 불편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한번 겪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서 조용한 사막에 푹 파묻혀 있는 생활, 은둔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최고인 생활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요한 만큼만 음식을 만들고 최소한의 물만 사용한다. 대신에 사막의 지평선과 수많은 별을 보면서 생각만큼은 많이 할 수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철학자가 되지 않을까.

볶음밥이 완성되자 바하디르는 보드카를 꺼내왔다. 식사후에 난 또 걸어야하는데 저걸 마셔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도 잠시, 난 권하는대로 보드카를 받아 마셨다. 부디 이 보드카가 나에게 기운을 줄 수있기를 바라면서. 식사를 다 하고 일어서자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다.

아무래도 당장 떠나는 것은 무리다. 나는 밖의 평상에서 좀 자겠다고 말하고 그 평상에 큰 대자로 누웠다. 사막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늘 속에서 낮잠을 청하는 즐거움.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한국에서 걸어왔냐고 묻는 사람들

키질쿰 사막 계속 사막이 펼쳐진다
▲ 키질쿰 사막 계속 사막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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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자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다. 이곳에서 3시간 가량을 보낸 것이다. 나는 구롬바이와 바하디르에게 인사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배는 아직도 부르고 술은 다 깬 상태다. 조금 걷자 경찰검문소의 경찰들이 나에게 또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걸어가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걸어서 여행한다니까 '한국에서 걸어왔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그동안 여럿 있었다. 처음에 이 질문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무척 황당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한국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리 도보여행의 달인이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말할것도 없이 북한 때문이다.

하기야 나도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정세를 잘 모르는데, 이들이 남북한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을 걸어서 여행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정말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극동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도보횡단에도 도전해볼수 있을 것이다. 언제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계속 걷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육지의 바다'인 사막만이 막막하게 펼쳐져 있을 뿐.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 이제는 잠잘 곳을 찾아야 한다. 어디에서 잘까. 지평선 멀리 무슨 작은 건물하나가 보인다.

물론 저것이 호텔은 아닐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저기까지 가보자. 사람사는 건물이면 재워달라고 하고 빈건물이면 그냥 들어가서 자면 된다. 잠겨있는 건물이면 그 옆에서 야영을 하면 된다. 다행히도 물과 식량은 충분하다. 바하디르와 구롬바이 덕분에 배낭 속의 빵과 사과에는 손도 대지않은 상태다.

이렇게 결정하고 걷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내가 다가가는 만큼 저 건물도 뒤로 물러나는 듯하다. 이렇게 탁 트인 사막에서는 거리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해는 조금씩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고 내 걸음도 점점 빨라진다.

나는 어두워지기 전에 저 건물에 도착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허리와 다리의 통증도 무시하고 열심히 걸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코피가 쏟아진다. 오른쪽 콧구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정말 여러가지 한다. 나는 휴지를 꺼내서 코를 틀어막았지만 내 양손에는 이미 피가 묻어있다. 바지에도 두세군데 피가 떨어져 있다. 이런 몰골로 저집 문을 두드릴수는 없다. 나는 화장지에 생수를 묻혀서 대충 닦아내고 다시 열심히 걸었다.

사막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다

사막의 집 여기서 하룻밤을 잤다
▲ 사막의 집 여기서 하룻밤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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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착한 건물. 앞의 대문에는 굳게 자물쇠가 잠겨져 있다. 폐쇄된 건물일까. 그런데 지붕의 굴뚝에서는 알수 없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의미일텐데. 나는 뒤로 돌아가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 또 다른 입구가 있다. 그 문을 두드리니까 한 여성이 나타났다.

"여기서 오늘 하루 잘 수 있어요?"

그녀는 내가 혼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안으로 들어오란다. 사각형의 넓은 내부에는 여러개의 방이 있다. 원래 여기는 식당인데 지금은 영업을 잠시 중지한 상태란다. 나에게 방하나를 내주면서 이곳에서 자라고 한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털썩 주저 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몸의 곳곳에서는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아무튼 이렇게 잘곳을 찾았으니 천만다행이다. 사막을 통과하는 동안 매일 이렇게 숙소를 찾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도보여행중에 적어도 하루는 혼자 야영을 해야한다.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일을 아예 포기한채 여행을 마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 야영은 사막이 끝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 시도해볼까? 내일? 모레?

오늘 같은 날씨가 계속 된다면 걷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다. 낮에 햇살은 강하지만 한낮의 무더위만 피할수 있다면 괜찮다. 오늘은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30km는 넘게 걸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피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몸이 걷기에 적응했을까 아니면 아직 남아있는 보드카의 기운일까.

밤이 되자 식당주인인 무자파르가 나에게 맥주와 커다란 메론을 대접해주었다. 무자파르는 여기서 45km를 가면 식당이 있다고 말한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내일 기를 쓰고 45km를 걸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걷다 지치면 쉬어가고 어두워지면 혼자 야영하면 된다. 그런데 왜 자꾸 야영은 피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 하는 걸까.

사막의 집 나를 재워준 무자파르 부부
▲ 사막의 집 나를 재워준 무자파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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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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