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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심의한 것일까. '검은 옷'을, 아니면 '검은 색'을 심의한 것인가? 아니면 '검은 옷'을 입은 것을? 그것도 아니라면 '검은 옷'을 입기로 한 '집단적 결의'를? 아니면, 그 모두를 다?

 

언뜻 보면 아주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단순한 것이라곤 그들의 색맹과 같은 단순 무식함일 뿐이다. 최근 YTN '굿모닝 코리아' 등에 대해 '시청자 사과결정'을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방식과 그 결과가 그렇다.

 

방송통신심의위, YTN '블랙투쟁' 중징계는 월권

 

방송통신심의위는 26일 YTN 11월 8일자 상당수 방송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당시 앵커와 기자들이 검은 색상 옷을 입고 방송을 진행하거나 출연한 것이 방송의 공정성과 공적책임, 그리고 방송의 품위 유지 조항 등을 어겼다는 이유다. 이들 앵커와 기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방송을 한 것이 YTN 사장 선임 문제와 관련한 노조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날 YTN 앵커들과 기자들이 '검은 색' 옷을 입고 방송에 출연한 것은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고 있는 기자와 사원들을 대거 해고하고 징계한 것 등에 대한 분명한 항의 표시였다. YTN 사태에 대한 앵커와 기자들의 결연한 항의의 몸짓이기도 했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였다. 이른바 '블랙투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제대로 방송하면서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는 '제작투쟁'이기도 했다.

 

방통심의위원회는 이 '블랙투쟁'을 심의하고, 징계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월권이다. 노조활동은 방통심의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이 심의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방송내용'에 관한 것일 뿐이다. 방송에 임하는 앵커나 기자의 '마음'이나 '생각'까지 방통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방통심의위원회는 이들 앵커와 기자들이 '집단적'으로 '검은 색' 옷을 입고 방송에 나선 것이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박명진 위원장은 이를 두고 "노조의 일방적 입장을 전달하는 도구로 방송을 사용한 것"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을 위반했을 뿐더러 공공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자와 앵커들이 집단적으로 '검정 색' 옷을 입고 출연한 것이 노조의 입장에 따른 것이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하자.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노조의 '일방적 입장'을 전달하는 '도구'로 방송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검정 색' 옷에 노조의 어떤 '일방적 입장'이 담겨 있다는 이야기인가? YTN 기자와 앵커들은 이날 검정색 옷을 입고 방송에 나와 왜 자신들이 검정색 옷을 입었으며, 그 뜻은 어떤 것이라고 단 한마디라도 방송을 통해 직접 시청자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시청자들은 이들의 검정색 복장을 통해 노조의 '일방적 입장'이 무엇인지 과연 알아챌 수나 있었을까?

 

YTN 앵커와 기자들의 '블랙투쟁'이 큰 파장을 낳게 된 것은 그것이 다른 언론들을 통해 '소개'되고,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되면서부터다. YTN의 앵커와 기자들이 대량 해고 등에 항의하고, 사측의 강압적인 조치에 굴복할 수 없다는 '항의 표시'로 이런 옷차림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잔잔하면서도 큰 파장을 낳았던 것이지, 그들의 '검정 색' 옷차림 그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검은옷이 공정성 침해? 한마디로 '블랙코미디'

 

가령, 기자와 앵커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청색 옷'을 입고 출연했다고 하자. 노조의 '블랙투쟁'에 이은 '블루투쟁'이라고 하자. 혹은 '옐로투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조나 기자·앵커들이 '블루투쟁'에 대해, '옐로투쟁'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이럴 때에도 방통심의위원회는 그들의 '블루투쟁'과 '옐로투쟁'을 심의해 중징계할 것인가? 무슨 이유로? 단순히 '청색 옷'이나 '노란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단적으로 삐딱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만약 YTN 앵커와 기자들이 검정색 옷을 입고 방송한 것이 방송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침해하고, 방송의 '품위'와 '품격'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자면, 우선 그들은 '검정색'이 방송의 공공성이나 공정성, 그리고 방송의 품위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혹은 '검정색 옷'이 그런 가치 기준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앵커와 기자는 이런 경우 이외에는 '검정색 옷'을 입을 수 없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가령 하루에 전체 기자나 앵커의 '10% 미만'이 '검정색 옷'을 입는 것은 괜찮지만 '30% 이상' 집단으로 입으면 안된다가거나, 주가가 오를 때 검정색 옷을 입는 것은 괜찮지만, 주가가 떨어질 때 검정색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거나 하는 지침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파랑색과 노랑색, 빨강색 옷차림에 대해서도 물론 각각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방통심의위원회의 이번 심의 제재 결정은 마치 유신시대 장발 단속이나 미니스커트 단속을 연상케 한다. 한마디로 웃기는 '블랙코미디'다. 이에 비하자면 80년대 신군부의 '보도지침'은 오히려 세련된 편이다. 아무래도 방통심의위원회의 존재 여부와 그 위원들의 자질과 수준에 대한 심의부터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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