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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질쿰 사막 사막의 모래가 도로를 뒤덮었다.
키질쿰 사막사막의 모래가 도로를 뒤덮었다. ⓒ 김준희

간밤에 잠을 설쳤다. 마당 한가운데 크게 틀어놓은 음악소리와 연신 들락거리는 트럭들 때문에 자다깨다를 반복한 것이다. 시간은 오전 7시. 지금도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나는 배낭을 꾸리고 양고기국으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오늘은 좀 조용한 곳에서 잘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로 사막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7일 동안 나는 샤워를 못했다. 상수도 시설이 변변치 않은 곳이라서 샤워는 엄두도 못낸다. 걷다보면 땀이 흐르고 때로는 모래먼지를 뒤집어 쓰기도 하는데, 제대로 씻지를 못하니 몸에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다.

한참 걷다보니까 모래가 잔뜩 침범한 도로가 나온다. 무엇이 이 모래들을 도로로 뛰쳐나오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강력한 돌개바람이라도 불어오지 않는 이상 이렇게 많은 모래가 도로를 점령하지는 못했을텐데. 사막이 스스로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사막을 뚫고 만든 포장도로를 다시 원래의 모래벌판으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다.

모래가 침범한 도로를 걸으며

이 사막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7일 동안 사막을 바라보고 있자니 멍청이가 된 기분이다. <태양이 머무는 곳, 아치스>의 작가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는 사막을 가리켜서 '영원을 향해서 열려있는 거대한 창문'이라고 표현했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은 '무덤 속과 같은 고요함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래벌판뿐인 사막. 이 사막에서 세상의 일신교가 탄생했다. 고향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아브라함은 사막을 방황한 끝에 가나안에 도착했고, 예수는 유다사막에서 40일 동안 도를 닦았다. 사막의 도시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는 다시 메카를 정복하면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왜 하필이면 사막으로 들어갔을까. 무슨 이유로 별다른 생명체도 없이 적막하기만 한 사막을 택했는지 의문이다.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서 신의 모습을 보았을까. 어쩌면 이들은 사막 깊숙히 들어감으로써 태초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창조주를 접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산이나 바다가 아니라 아마 사막일 것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면, 그 빛의 열기가 만들어낸 최고 걸작이 바로 사막일테니까.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마지막 영역이 사막일테니까. 그 안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흔히 히말라야를 '신들이 사는 곳'이라 표현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얼어붙은 산맥보다는 이 사막이 신에게는 더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신이라면 더위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눈송이보다는 광막한 지평선과 고요함이 있는 이 사막이 더 어울릴 것만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사막에서 신의 흔적을 발견하기는커녕 점점 지쳐만 간다. 이곳에서 신을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오, 신이시여! 도대체 어쩌자고 사막을 만들었나이까?"

쉬면서 따뜻해진 물을 마시다

키질쿰 사막 멀리 식당 건물이 보인다.
키질쿰 사막멀리 식당 건물이 보인다. ⓒ 김준희

아무리 찾아도 그늘이 없다. 왜 도로 한쪽에 앉을 만한 공간 하나 만들어 두지 않았을까. 힘드니까 별걸 다 원망하게 된다. 걷다가 지친 나는 도로 한쪽에 앉아서 삶은 계란을 먹고 따뜻해진 물을 마셨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겨울에도 차가운 얼음물을 마셔야 직성이 풀렸는데, 여기서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 힘들어서 입맛도 없지만 꾸역꾸역 빵도 먹었다. 먹기 싫어도 쓰러지지 않으려면 먹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진다. 그것도 뜨거운 국물이 있는 돼지고기, 그러니까 순대국이 생각난다. 누가 나한테 펄펄 끓는 순대국 한 그릇을 가져다 준다면, 나는 이 햇볕 아래에서도 게눈 감추듯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4시가 넘어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아주머니 한명과 할아버지 한명이 있다. 이들은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인 듯하다. 그렇다면 곧 아주머니의 남편도 돌아올 것이다. 하룻밤 재워달라니까 마당의 평상을 가리키면서 거기서 자라고 한다. 이 식당은 아주 작아서 드나드는 사람도 없다. 오늘은 정말 조용하게 밤을 보낼 수 있을 듯하다.

평상에 앉아서 짐을 풀고 쉬고 있으려니까 티코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이 식당 주인이 차를 몰고 돌아온 것이다. 사나쿨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티코의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에는 발이 묶인 채로 염소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염소는 몸을 뒤틀다가 트렁크에서 떨어졌다. 울면서 몇 번 일어서려 버둥거리지만 발이 묶였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이내 조용해진다. 바닥에 쓰러져서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염소. 사나쿨은 염소를 가리키면서 먹는 시늉을 한다. 오호, 오늘 저녁에는 염소고기를 맛볼 수 있겠군.

사나쿨은 집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칼 두개를 들고 나온다. 저 염소를 잡으려는 것 같다. 사나쿨과 부인이 염소를 들고 뒷마당으로 향하자 염소는 소리를 지르며 온갖 발버둥을 친다. 따라가서 구경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염소를 보다가는 먹을 맛도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예전에 카자흐스탄을 여행할 당시에 양을 잡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양을 죽일 때는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는단다. 날카로운 칼로 가슴 부위를 살짝 가르고,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순식간에 숨통을 끊는다. 그러면 양은 소리조차 지르지 않은 채, 한 번 움찔하고는 숨이 멎는 것이다.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양처럼 순하다'라는 표현이 거기서 유래한 것일 거라고 말했다. 그건 아마도 몽골 유목민의 전통일 것이다. 유목의 전사들은 포로로 잡아온 적장을 죽일 때도 예를 갖춰서 최대한 피가 흐르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하물며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잡을 때는 오죽할까.

다시 만난 일홈과 염소고기를 먹다

식당에서 염소 한마리가 실려왔다
식당에서염소 한마리가 실려왔다 ⓒ 김준희

일홈을 다시 만나다 일홈(제일 왼쪽)과 그의 동료들
일홈을 다시 만나다일홈(제일 왼쪽)과 그의 동료들 ⓒ 김준희

잠시 후에는 사막의 운전사 일홈이 동료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다. 이건 또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일홈을 다섯 번째 마주치는 것이다. 일홈은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자신의 운전석을 손가락질한다. 거기에는 내가 선물로 준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우리는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지도를 펼치자 일홈은 여기서 40km를 가면 가즐리라는 작은 도시가 나오고, 거기서 100km를 더 가면 역사도시 부하라가 있단다. 가즐리에도 물이 펑펑 나오는 현대식 호텔은 없다. 그런 호텔은 수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부하라에 가야 있을 것이다. 부하라까지 나흘이면 충분하다. 나흘 후면 사막을 벗어날 수있는 것이다.

일홈의 말에 의하면 가즐리에서 부하라 사이의 도로에는 식당이 많단다. 이들의 이야기는 또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오면서 만난 트럭 운전사 몇몇은 가즐리-부하라 구간에 식당이 없다고 말했었다. 식당이 1-2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거나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극과 극은 어기서도 통하는 원칙인가.

이렇게 떠들고 있자니 사나쿨의 부인이 염소고기를 접시에 담아왔다. 내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염소고기를 먹은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없는 것 같다.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는 물론이고 여행하면서 양고기도 많이 먹었지만 염소고기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 염소고기도 조금은 느끼할 것 같다. 나는 맥주를 한 병 주문했다. 일홈과 그 동료들은 운전을 해야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단다. 염소고기를 입 안에 넣고 씹자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퍼져간다. 대신에 쫄깃하게 씹는 맛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염소고기를 먹었다. 아까 걸어올 때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더니, 지금은 마냥 즐거운 기분이다. 우리는 양파, 토마토와 함께 염소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사막의 운전사 일홈과 작별하다

식당에서 염소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식당에서염소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 김준희

"이거 얼마에요?"

내가 사나쿨에게 묻자 일홈은 손을 저으면서 돈 내지 말란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돈을 걷어서 사나쿨에게 건네준다. 나도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일홈은 자기들이 내겠다고 우긴다. 그리고 사나쿨에게는 나한테 돈 받지 말라고 말한다.

음식을 모두 치우고 다시 둘러앉아서 녹차를 마셨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녹차를 좋아한다. 어딜 가든 이들은 나한테 녹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권한다. 여기와서 그동안 얼마나 녹차를 마셨는지 셀 수조차 없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국에서 마신 녹차보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마신 녹차의 양이 더 많을 것이다.

일홈은 내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한다. 이 식당에서 조금 동쪽으로 내려간 곳의 공사장에서 모래를 트럭에 담는다. 그리고 그 모래를 내가 걸어온 방향의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일홈을 만날 가능성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일홈도 그 사실을 안다. 말도 잘 안 통하지만 어쨋거나 만나면 서로 즐거웠는데.

일홈과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홈은 나를 덥석 끌어안더니 여행 잘하라고 말한다. 나는 식당 앞까지 일홈을 배웅했다. 일홈은 운전석에 앉아서 태극기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그리고 나하고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 모두에게 '살롬(평화)'이라고 말한다.

참 고마운 아저씨다. 이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멀어져가는 트럭을 향해서 나는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태양도 어느덧 기울어져가고 있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초저녁의 선선한 공기로 바뀌어가는 마법의 시간이다.

키질쿰 사막 식당 건물 앞의 평상에서 하룻밤을 잔다
키질쿰 사막식당 건물 앞의 평상에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키질쿰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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