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 '스타'라는 이름 위아래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길 원하고, 누구나 '스타'만을 보길 원하는 그런 세상. 그래서 <오마이뉴스>가 찾아 나섭니다. '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이름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고 있는 그런 이들을요. <오마이뉴스>는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서 작은 빛을 내뿜는 배우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
"언니, 지금 얼음이야. 그럼 내가 땡 해줄게. 땡~~~. 언니 가야 되면 가! 대신 우리 눈 오는 날 만나. 눈 오면 꼭 와!"2006년 방송됐던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은 "지나간 자장면은 돌아오지 않는다"란 명대사와 함께 우리에게 큰 선물을 또 하나 선사했다. 바로 살짝 정신을 놓아버린 '친절한 강자씨', 정수영(27)이 그 주인공이다. 강자는 마지막 회였던 16부에서 위와 같은 명대사를 남기며 극 중 안나 조(한예슬 분)는 물론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정수영은 이렇게 따뜻한 남쪽 나라 남해란 도시에서 오매불망 눈을 기다리던 4차원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환상의 커플>에서 속물적인 인간의 대명사였던 안나 조와 대비되어 순수함에 방점을 찍었던 역할이 바로 그 강자였다.
최근 그 '강자' 정수영이 다시금 브라운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MBC <내조의 여왕>(월화 밤 10시)에서 천지애(김남주 분)의 '신기' 없는 무당 친구 '지화자'로 열연 중이고, 4월말 방영예정인 SBS <시티홀>에서는 주인공 미래의 친구이자 당당한 9급 공무원 '정부미'로 분해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무당 '지화자'로 돌아온 <환상의 커플> 강자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정수영은 독특하고 통통 튀리란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브라운관 속 강한 인상이 믿기지 않는 수더분한 모습이었다. 정수영은 본인도 시트콤을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다며 시종일관 느릿느릿하게 말했고 종종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선입견이 무서운 법이다. 연기 잘 하는 배우일수록 캐릭터와 실제 모습의 차이가 도드라지는 법. 활달한 A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정씨는 독특하고 강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을 묻자 손사래를 친다. 여배우로서 가질 법한 예쁜 역할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되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되돌아온다. "여자이기 전에 배우"고 또 "여배우기 보다 배우로 남고 싶다"고. 일찌감치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연기에 대한 소신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아직껏 학생 신분인 정수영은 무대와 브라운관을 부지런히 오가며 배우는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그에게 강한 캐릭터를 시치미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노하우와 배우로서의 포부를 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똥파리가 짝짓기 하는 것만 봐도 부러운 년"이란 대사를 태연하게 내뱉는 화자 캐릭터에 대해 물었다.
-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거 같아요. <환상의 커플> 때도 그랬지만 평소 그런 얘기를 많이 듣나요?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인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촬영장에서는 주민등록증 보자고들 하고(웃음). 그리고 배우들은 진짜로 방송 나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근데 저는 무대에서 넘어왔을 때 프로필을 쓸 때 정말 솔직하게 썼거든요.(웃음) 그러면 나중에 감독님들이 '어 그래서 진짜 나이는 얼마냐'고 물어요."
"지화자 롤모델은 팀 버튼의 만화 같은 캐릭터"- <내조의 여왕> 얘기 먼저 해요. 지화자 캐릭터도 꽤나 독특하던데요. "눈을 게슴츠레 뜨는 걸로 캐릭터를 잡았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힘들어요.(웃음) 몇 십초를 계속 하면 눈이 너무 아프거든요. 그래서 촬영 중간마다 안구 운동을 엄청 해줘야 되는데, (직접 연기를 해 보이며) 이렇게 눈을 돌리니까 스태프들이 엄청 놀라더라고요."
- 그런 콘셉트는 본인이 직접 잡은 건가요? "오디션을 봤는데 역할이 무당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께 평범한 무당은 싫다고 했더니 시원스럽게 오케이를 해줬어요. 드라마 전개도 빠르고 통통 튈 것 같아서 평범하면 드라마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이제까지 없던 캐릭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팀 버튼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와 <크리스마스의 악몽>, 영화 <비틀 쥬스>가 떠오르는 거예요. 딱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를 잡아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인형도 따로 만들었고요."
- 부담은 안 되나요? 목소리 톤도 굉장히 낮춘 것 같던데. "강자는 제 목소리보다 올렸다면 화자는 내린 거죠. 화자는 (직접 목소리 톤을 내리며) 도, 시, 라 솔! 솔! 아아아! 이렇게 잡아요. 하하하. 사실 게슴츠레보다 목소리가 더 힘들어요. 제가 잡아 놓은 톤을 잃어버리면 힘들 거든요. 신경을 안 쓰고 놓치면 자꾸 원래 저로 돌아오고 그러면 캐릭터 유지가 안 되니까요."
- 망가지는 역할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그런 질문 많이 받는데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랬다면 캐릭터를 그렇게 잡을 수도 없겠죠. 망가졌다기보다 저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든 거니까요. 화자는 신기가 없는데도 스스로는 신기가 있다고 믿는 무당이에요. 처음 콘셉트는 그냥 무당이라고 했지만 외형이나 소품이나 의상은 다 제가 만들었어요."
- 정말 강한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이 없나 봐요. "원체 그런 건 고민을 안 해요. 캐릭터가 세면 어떡하나 그런 것보다는 '내가 이 드라마의 균형감에 해가 되지 않을까' 혹은 '적재적소에 맞는 캐릭터일까'하는 앙상블은 고민하죠. 처음에 교복 입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도 재미있었어요,(웃음) 뒤에서 혼자 '분신사바'를 하고 있었더니 감독님이 재미있다고 가슴 높이 숏을 따로 잡아주더라고요."
- 김남주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지 않나요? 선배들하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꽤 많이 나는데 정확한 나이차는 몰라요. 혜영 언니는 <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6개월 동안 연기를 같이 해서 편해요. 두 분 다 열정적인 분들이고, 특히나 남주 언니는요. 그 열정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나도 꼭 저렇게 되어야지' 생각해요."
- 그래도 벌써부터 김남주씨 친구 역할을 하는 건 조금 서운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도 안 해 본 것 같은데(웃음). 진짜로 그런 것 때문에 서운하거나 걱정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왜 안 하죠 전? 미쳤나?(웃음)"
"첫 겹치기 출연작 <시티홀>은 욕쟁이 공무원" 바쁜 배우 정수영은 일찌감치 차기작을 점찍었다. 한예슬, 박진희, 김남주에 이어 이번엔 김선아의 친구 역할이다. 젊은 여자 연기자들이 거처야 할 필수코스인 주인공 친구 캐릭터다. <시티홀>은 '삼순이' 김선아와 코믹배우 차승원이 캐스팅 돼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10급 공무원 신미래가 최연소 시장이 되기까지의 좌충우돌을 코믹하면서도 의미 있게 그릴 예정이다.
역할 소개를 부탁하자 정수영은 작품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난해 <온에어>를 통해 시청률 제조기로서의 능력을 다시금 입증한 신우철 PD, 김은숙 작가 콤비의 작품이다. 정수영은 지극히 현실적인 9급 공무원 '정부미' 역을 맡았다. 일반미가 아닌 정부미라니, 또 다시 재미있고 드센 캐릭터가 예상된다.
- 겹치기는 처음 아닌가요? "<시티홀>이 촬영을 일찍 시작했어요. 선아 언니 친구로 나오는데요, 선아 언니도 제 또래로 보여서…. 제가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건지, 선아 언니가 '영'해 보이는 건지.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생각해요(웃음). 욕쟁이에다가 생활력 강하고 애도 셋 있고."
- 네? 애가 셋이면 쌍둥이인가요? "애가 셋 있어요.(웃음) <김치 치즈 스마일> 때도 애 엄마로 나왔는데요, 뭘. 갓난아이도 있는 엄마 캐릭터예요. 전 9급 공무원이고 선아 언니는 10급 공무원. 제 캐릭터가 선아 언니한테 어떤 도움을 주는 건 아니에요. 만날 욕하면서 현실을 일깨워 준 달까. 정신 좀 차리라고요.(웃음)"
- 촬영이 많이 진행됐나요. 미니시리즈가 원래 스케줄이 빠듯하잖아요. "네. 촬영은 벌써 많이 했어요. 미리미리 준비된 드라마랄까요? 굉장히 빨리 찍지만 또 꼼꼼해요. 또 감독님이나 작가님 두 분 다 굉장히 프로페셔널 해요."
- 드라마 자랑을 한다면요. "대본이 너무 좋아서 제가 따로 할 게 없어요. 대본에서 원하는 대로만 연기하면 될 것 같아요. 물론 <내조의 여왕>도 너무너무 재미있지만요. <내조의 여왕>은 엄마 같고, <시티홀>은 아빠라고 하는데 둘 다 잘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시티홀>은 진짜 작가님의 '필력'이라는 게 느껴지더군요. 재미도 있으면서 진중한 그 무엇도 느껴지고. 제 역할은 딱히 크지는 않지만요. 이름은 정부미예요. 일반미 아닌 정부미요.(웃음)"
"연영과 실기시험 때 '여긴 정말 별세계다' 싶었죠"
정수영은 TV 카메라보다 아직 드넓은 무대가 더 익숙하다. 19살 때부터 오른 연극과 뮤지컬 무대는 그의 정신적인 고향이다. <렌트> <갬블러> <그리스> 등의 작품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타고난 노래 실력과 발성을 바탕으로 이문세의 독창회에도 함께 설 정도였다.
또 그에게는 전형적인 예술가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시인이고, 아버지는 도예가이자 대학 교수, 그리고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했다. 그 덕분에 예술에 대한 흥취를 머금은 채 성장했고, 일찌감치 예술에 대한 감식안에 눈을 떴다.
- 예술가 집안이면 어떤 자의식이 있나요. 나도 부모님처럼 돼야지 하는. "영향을 받은 건 확실해요. 그래도 꼭 예술을 해야지 하진 않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꿈이 외교관이었는데 제가 수학 과목을 엄청 못해서 포기했죠. 그런데 노래는 꾸준히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성악과 출신 담임선생님이 미션스쿨 예배를 주관하게 해줬거든요. 그때부터 노래는 굉장히 즐겁게 했어요. 또 가톨릭 신자라 성가대도 꾸준히 해 왔고요."
- 그야말로 '노래는 나의 인생'이네요. "그때는 우울할 때면 노래가 스트레스 해소나 어떤 돌파구가 되어줬죠. 근데 전공을 하게 되니까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요. 전공하기 전에는 영화도 굉장히 좋아했는데 이제는 연기 분석하고 플롯 보고 카메라워크 보고 편집 보고 그래요."
- 할아버님이 시인이라 지난해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무대에도 선 거죠? "네. 맞아요. 그런 기질들이 조금 있나 봐요. 동생들은 저보다 훨씬 창의적인 일들을 해요. 둘째는 체육을 했고, 셋째는 수영복 디자인을 해서 전 비키니를 공짜로 입어요(웃음). 엄마가 신기하데요. 다섯을 나았는데 다 기질이 다르다고요."
- 연극영화과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원래라면 성악과에 갔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연히 가게 됐죠. 연기도 대부분 과외나 레슨을 받잖아요. 근데 전 정말 하나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시험을 봤어요. 왠지 될 것 같아서.(웃음)"
- 역시나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웃음) "선생님이 나중에 왜 뽑았는지 얘기해줬는데 다른 얘들은 다 배워온 기교와 스타일이 있었데요. 근데 전 아무것도 몰랐지만 다행히 노래는 해서 기본 발성은 좋았던 거죠. 차라리 저처럼 백지인 것이 낫겠다 싶어서 뽑아줬데요. 전 정말 아무 준비 안하고 두근두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도포 입고 발레 복 입고 자유연기 준비한 아이들은 구석에서 울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긴 정말 별세계다 싶었죠."
무대를 못 버리는 이유, '중독성' 때문- 무대는 일찍 서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먼저 붙은 성악과가 너무 멀어 어머니가 가까운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가라고 했죠.(웃음) 고등학교 때 연극반 지도 선생님이 제가 연극영화과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선생님 연출작인 <진달래 꽃피고 새가 울면>이란 공연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 줬어요. 그래서 학교 들어간 그 해 여름에 무대에 섰죠. 그 다음에 바로 <셰익스피어의 연인들>이란 대학로 뮤지컬 오디션을 봤고요. 그땐 뮤지컬이 붐도 아니고 시장도 크지 않아서 배우가 많지 않았어요. 공연 끝나고 언니들이 우르르 오디션 장에 몰려가니까 저도 쫄래쫄래 따라가서 오디션을 봤죠. 그 이후 정신을 차려보고 나니 학교와는 '바이바이'를 하게 됐어요. 무대는 중독성이 있어요. 한 번 서면 계속 서고 싶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무대에서 활동한 것 같아요."
- 그럼 어떤 계기로 방송으로는 넘어온 건가요? "대학로에서 <리틀 숏 오브 호러스>란 공연을 하고 있었어요. <공포의 꽃가게>란 B급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건데, 전 극 중 화자 역할을 하는 세 마녀 중 한명이었어요. 금발에 굉장히 악독하고 특이한 역할이었는데 그걸 본 그룹에이트 송병준 대표님이 연락을 한 거죠. 감독님이 '미친년' 강자 역할로 신인급이면서 연기를 좀 하는 친구를 찾고 있었는데, 뮤지컬을 본 대표님이 독특한 애를 본 적이 있다고 추천한 거죠. 전 정말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 아무래도 TV 연기와 무대는 다르잖아요. 뭐가 제일 달랐나요? "연기요? 사실 제 생활 패턴은 변한 게 없어요. 원래부터 학교, 집, 일이었거든요. 달라진 게 있다면 무대 배우는 카메라 연기를 꼭 해봐야 되고, 카메라 배우도 무대 연기를 꼭 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게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무대에 다시 서 보니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집중력도 그렇고요."
- 학교는 지금껏 다니고 있다고 들었어요. "네. 학교를 다니며 일까지 병행이 잘 안 되더라고요.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는데 공연을 하느라 졸업을 못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도 늦게 들어갔는데 거기도 졸업을 못하고 있어요.(웃음) 뜻은 굉장히 많은데 나이가 나이니만큼 일도 포기할 수 없어서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교수님들이 제발 F학점은 안 줘야 할 텐데요.(웃음)"
- 꼭 졸업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저에게는 학교가 활력소인 것 같아요. 일을 계속 하다보면 초심을 잃을 수도 있고 순수함이나 열정이 줄어들 수 있지만 학교가 그런 것들을 계속 환기시켜 줘요. 8월엔 부조리의 시조라고 하는 이오네스코의 작품을 무대에 올릴 생각이에요. 형식을 파괴하는 실험극이에요. 그래서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등 각 원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 8명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어요. 자기 전공 말고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려고요. 저는 액팅 코치를 할 거고요. 꼭 보러 오세요."
"전 '여배우'도 아니고 그냥 배우이고 싶어요" 이제는 경험이나 내공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전공인 뮤지컬도 1년에 한 편은 꼭 출연할 예정이라고,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나 달려갈 거라고 의욕을 내보인다. 그래서 물었다. TV 연기와 뮤지컬 연기에 차이에 대해.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고 의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나 전공 분야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뮤지컬은 처음부터 다 계산되고 연습으로 다져진 연기라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굉장히 '업'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기본기는 연습으로 다져놓고 에너지를 쏟는 거예요. 이건 도저히 글로 못 옮기실 거예요. (직접 서로 다른 두 가지 눈빛 연기를 해 보인 뒤) 무대에서는 이렇게 연기해야 돼요. 시트콤과는 다르죠. 토할 때까지, 쓰러 질 때까지 밑바닥에 있는 걸 다 가져다 쓰는 거죠. 만약 제가 예술의전당 대극장에 선다면 저 혼자 극장을 채울 수 있는 에너지를 뿜어야죠. 예전 이문세 독창회에 섰을 때도 그랬어요. 문세 오빠 팬들 천명이 각기 다른 2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분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제가 2천개의 눈과 싸워야 돼요. 노래로 내 편을 만들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공연 끝날 때까지 힘들어요. 어떤 에너지를 쓰고, 어떤 짓을 하든지요." - 그 순간의 희열은 어떤 연기와 비교해도 소중할 것 같아요. "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솔직히 무대에서 순간의 느낌이 희열은 더 크죠. 그래서 하는 거고요. 공연은 기본 한 달이 만날 똑같고 몸 성한 데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래도 무대에 올라가면 배우의 몫이 크니까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요? 진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얘기와 똑같아요. 작품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죠."
- 예전에 인터뷰를 보니 연예계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던데요. "저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연예인이라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금도 평소랑 똑같고 생활이 달라진 건 없어요. 옛날처럼 이젠 낯설지 않고요. 이제는 다른 연기자분들하고도 친해져서 연예인도 똑같은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거든요. 처음엔 촬영하면서 '다들 진짜 예쁘다,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 있지' 그랬거든요."
- 지금도 그래요?(웃음)"지금도 선아 언니 보면서 '와, 예쁘다' 그래요(웃음). 광고 카피 중 그런 게 있어요. '나는 배우이기 전에 여자다', 그걸 보며 전 분개했어요. 저는 여자이기 전에 배우라고. 또 '여배우이기 전에 여자이고 싶다'라는 것도 있었는데 전 '여배우'도 아니고 그냥 배우고 싶어요."
칸 레드카펫을 예약한 '그냥' 배우 정수영-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 딱 떠오르는. "방송 활동하면서 생긴 욕심이 하나 있어요. 칸 레드카펫을 밟고 싶어요.(웃음) 이젠 영화도 하고 싶고요. 깊이가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남자들처럼 내공 있는, 알 파치노나 말론 블란도 같은 내공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사비 말고 초청받아서 칸에 가고 싶어요.(웃음) 사비를 들이면 모양새가 빠지잖아요. 한복을 입고 갈 거예요. 제가 평소에 한복은 좀 어울리거든요. 전 내추럴한 외모의 소유자니까요.(웃음) 제 입으로 제 칭찬을 하려고 하니 너무 쑥스러운데요(웃음)."
지극히 소심한 A형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정수영은 그러나 연기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아무리 코믹하고 과장된 연기라도 '진짜'가 아니면 만족을 하지 못한다.
"연기하는 그 순간 진짜 목소리와 표정을 내지 않고 꾸민다면 제 자신이 빵점을 줘요. 진짜 순수하게 그 대사를 했느냐, 주어진 상황과 캐릭터로서 진짜 내 말로 연기했느냐가 중요하죠. 화자도 캐릭터는 그렇게 잡았지만 연기나 감정 자체는 진실하게 하거든요."정수영이 방송에 데뷔한 지 이제 햇수로 4년. 그러나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을 때까지 그가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행복하냐고. 안나조를 울렸던 그 편안함이 대답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해 낼 줄 아는 정수영은 참으로 현명한 연기자가 될 것만 같다.
"네, 그럼요. 몇 년 전에도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행복은요, 자기가 찾아서 발견해 내는 거래요. 또 '지혜롭기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 좌우명이고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훈련이 되어 있어요. 저만의 행복을 찾으려는 훈련. 저도 인간인지라 그게 잘 안 될 때도 있지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