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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6일 대전 대한통운 앞에서 열린 고 박종태씨의 추모제에서 숨진 고인의 동료 노동자가 오열하고 있다.
 6일 대전 대한통운 앞에서 열린 고 박종태씨의 추모제에서 숨진 고인의 동료 노동자가 오열하고 있다.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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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이 뜨고 있다. 김구라, 왕비호, DJ DOC, 신해철 등 연예인들이 거침없는 '막말'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비결은? 이들의 막말 속에는 룰을 깨고 권력이나 비호감 인물을 향해 거침없이 퍼붓는 독설과 해학이 곁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막말과 독설의 경계에 서서 대중에게 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TV 드라마는 막장방송이 대세다. '갈 데까지 갔다'는 의미의 '막장 방송'은 패륜과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주류다. 그나마 TV 드라마의 막장방송은 '권선징악'이라는 마지막 쪽대본으로 연명하고 있다. 

막말, 정치권에서만 하는 줄 알았더니...

막말과 막장의 대명사는 뭐니 뭐니 해도 정치권이다. 지난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성질 뻗쳐서 XX"이라는 막말로 인기를 독차지(?)했다. 지난 2월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강연 도중 "국회가 깽판, 선거는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말로 이름을 날렸다.

올해 정치권 막말의 최고봉은 아직까지는 천정배 의원을 향해 "미친x"이라고 말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다. 누가 뭐래도 이들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막말계의 진정한 '장관'급이다. 이러고도 여전히 장관직을 지탱하고 있는 비법은 권력을 향한 독설이나 권선징악이 있는 쪽대본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민주주의가 아닌 '윗분'으로 부터 나온다는 믿음이다.  이 나라의 장관들이 선거도, 국회도, 국회의원도 거침없이 부정할 수 있는 용기의 진원지는 '윗분'에 대한 충성심이다.

지난 3일 숨진 채 발견된 화물연대 고 박종태씨의 시신. 그는 '대한통운은 탄압을 중단하라'는 유서 성격의 현수막을 남겼다. 오른쪽에 보이는 끈은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한 것이다.
 지난 3일 숨진 채 발견된 화물연대 고 박종태씨의 시신. 그는 '대한통운은 탄압을 중단하라'는 유서 성격의 현수막을 남겼다. 오른쪽에 보이는 끈은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사용한 것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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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보는 국제적 막말의 최고봉은 여전히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이다. 요 근래에는 일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엔고를 이용해 제주도를 사버리자'는 막말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래도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함부로 해대는 말 뒤에는 '막말'대신 '망언'(妄言)이라는 문자 섞인 꼬리표를 붙어주니 동방예의지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 개인을 파멸로 내몬 '저질 막말'도 있다. 얼마 전 모 지역에서 사채업을 하는 후배에게 연 120%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500만 원을 빌려 쓴 한 사람이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는 '죽어도 사채업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찰에 따르면 사채업자는 채무자에게 "돈이 없으면 죽어라. 그러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약 먹고 죽으라고 해서 실제로 죽은 사람도 있다", "딸자식 밤길 조심하라고 해라"는 등의 막말을 퍼부었다. '저질 막말'의 힘은 '돈'으로부터 나왔다.

안억진 대덕경찰서장의 막말, 부끄럽다

그렇다고 '저질 막말'이 꼭 '돈'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며칠 전 '양반의 도시'라는 대전에서 인간으로서 기본 품성을 의심하게 하는 막말이 터져 나왔다. 안억진 대전 대덕경찰서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한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며 오열하고 있는 동료노동자와 유가족들에게 해산을 요구하는 방송을 하면서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민주시민으로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이 소속된 민주노총의 '민주'는 거짓이다", "'민주'의 탈을 쓰고서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개만도 못한 일이다", "즉시 도로를 점거한 차량을 이동하라… 이동하지 않으면 밥줄 끊겨요" 등의 협박과 조롱이 섞인 말을 쏟아냈다. 이날 동료 직원들이 추모제를 연 장소는 고인이 목숨을 끊은 곳이었다. 

지난달 말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에 등장한 안내판.  일자리를 잃은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지난 달 말 항의 집회를 개최하며 현수막을 내걸자 갑자기 안내판이 세워졌다.
 지난달 말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앞에 등장한 안내판. 일자리를 잃은 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이 지난 달 말 항의 집회를 개최하며 현수막을 내걸자 갑자기 안내판이 세워졌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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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 정문 앞에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된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의 자결이유는 '절망'이었다. 그는 유서에 "힘없는 노동자로 내몰린 지 43일이 지났는데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서 이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그가 남긴 또 다른 글에는 "(대한통운이) 일거에 문자로 무더기 해고한 지 40여 일이 됐고 (사측의) 고소고발과 손배, (경찰의) 체포영장과 무분별한 소환장 발부 등 공권력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저들의 탄압강도를 보면 시기를 앞당겨야 될 것 같다"는 구절도 있다.

집회도 하고 1인 시위도 해봤지만 경찰이 철저히 봉쇄하자 일자리를 잃은 동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부로 알릴 수 있는 모든 통로가 차단됐다고 판단하고 자신이 죽어야만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즉 박씨를 죽음으로 내몬 배경에는 일자리를 잃은 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의 집회를 가로막은 경찰의 대응방식도 일 요인이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동료 노동자들은 이날 대덕경찰서장을 가리키며 "고인이 이곳에서 집회를 할 때, 천막도 못 치게 하고, 1인 시위만 하면 '잡아 가두라'고 소리치던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관 앞에서 막말... 새 속담 만든 경찰서장

지난 6일 추모제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이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했다며 강제진압하고 있다.
 지난 6일 추모제에서 경찰이 참가자들이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했다며 강제진압하고 있다.
ⓒ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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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억진 대덕경찰서장은 '동료 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을 어떻게 개로 표현하며 자극할 수 있느냐'는 항의에 "'애만도 못한 일'이라고 했는데 이를 '개만도 못한 일'이라고 말로 잘못 들은 것 같다"고 해명했단다. '개'가 '애'로 바뀌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막말은 예의범절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데서 기인한 듯하다.  

상을 당한 사람들은 극진히 위로하는 것이 상례다. 어떤 이는 그 어떤 말도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다며 묵언으로 조의를 표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도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말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경우에라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대덕경찰서장이 새로 국어사전에 추가한 새 속담 하나를 소개한다.

[속담] '관 앞에서 막말 한다'

<뜻 풀이> 상갓집에서 관을 앞에 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막소리를 한다는 뜻으로, 예의가 없는 버릇없는 짓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래> 2009년 5월 6일 대전 읍내동 대한통운 물류센터 앞에서 열린 고(故)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 1지회장의 추모제에서 대덕경찰서장이 오열하는 동료 근로자들을 향해 '(도로를 점거해 추모제를 하는 것은) 개(또는 애)만도 못한 일' '차량을 이동하지 않으면 밥줄 끊겨요' 등으로 협박과 조롱이 섞인 말을 쏟아낸 데서 유래됐다.


태그:#막말, #대덕경찰서장, #박종태, #화물연대, #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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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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