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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고아로 자란 인도 소년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10억 루피 상금의 퀴즈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게 가능한가? 답은 그렇다이다. 13개의 문제를 맞힐 수 있었던 이유를 13장의 사연들로 전개해 나가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만만찮은 분량에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13개의 문제를 맞힐 수 있었던 사연과 함께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건 10억 루피라는 상금을 지불할 뜻이 없는 프로그램 관계자들과 람의 대치국면이다.

 

퀴즈쇼 기획자는 프로그램이 몇 개월간 방영되면서 광고가 붙는 것으로 상금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람이 프로그램이 막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 13문제를 다 맞히는 어이없고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기획자 측에선 지불해야 할 상금이 없다. 제대로 꼬투리를 잡아 람을 범죄자로 몰지 않으면 사기죄로 몰릴 판이었다. 그들로선 다행일 텐데 우승자 람은 수틀리면 밟아서 없애버려도 무방한 천민출신이다. 그들은 부패한 경찰과 짜고 누군가 퀴즈 정답을 람에게 가르쳐 주었을 거라는 각본으로 람을 몰아붙인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궁지에 몰린 람 앞에 나타난 사람은 여자변호사인 스미타다. 스미타는 진실을 요구하고, 1루피의 앞뒷면으로 자신의 운명을 걸었던 람은 스미타를 믿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그가 어떻게 13개의 문제를 맞힐 수 있었는지 그 비밀이 밝혀진다.

 

13개의 문제와 그 해답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퀴즈의 정답이 소년이 살아온 인생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 가난하고 억울하고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인생이란 괴물의 열쇠 또한 그 인생 자체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가야 할 건 이 소설이 스토리텔링의 묘미나 메시지와는 별개로 읽는 내내 찜찜함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가 소설 전편을 통해서 취하고 있는 입장 때문이다. 우리나라라고 별 다를까마는, 표면적으로 보다 적나라하게 부자와 빈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인도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소설 전개방식에 기대어 비난이나 비판을 삼간다. 권위적이고 철면피한 퀴즈쇼 관계자들이나 자기안위나 승진에 정의를 팔아버린 경찰에 대한 판단 역시 배제된다.

 

물론 소설이 반드시 제도의 불공평함이나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반성적 모습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해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권이 무시되는 현장에 대한 분노나 정당한 비판이 내비치지 않는 인도의 모습은 주인공의 인생역정과는 별도로 인간에 대한, 인간사회에 대한 모멸감을 던져준다.

 

대신에 작가가 선택한 건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삶에 대한 가치라 할 수 있겠다. 눈앞에 닥친 세상이 어떤 것이든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감당하며 사는 존재, 터지고 깨지고 짓이겨져도 그 삶을 받아들이는 의연한 존재에 시선을 둔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을 비롯해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의연하고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존재에 바쳐지는 찬사는 마땅하고 일면 감동적이지만, 결과적으로 소설은 갑갑하고 불편하며 우울하다.

 

선입견일 수도 있으나 이 시점에서 작가 비카스 스와루프가 상류층 출신의 인도 외교관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은 데니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를 다루고 있으나 결코 인도영화라 할 수 없는 영화였다는 점도 오버랩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문학동네(2007)


태그:#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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