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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손수건과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운구행렬이 서울역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운구차를 향해 추모의 뜻으로 노란 손수건과 종이비행기를 던지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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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親盧)는 무엇을 해야 하나?

친노(親盧)! 오늘 하루만 이 지긋지긋한 표현을 쓰는 것을 용서해 주길 빈다. 친노라는 말은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는 언론이 만들어낸 친노-반노 프레임에서 나온 친노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을 소수파로 몰고, 당 내부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정치세력에게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언론이 만들어 낸 용어다. 과거에 주류와 비주류로 분류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지도자의 성(姓)에 붙여서 정치세력을 규정짓는 방식은 노무현 시대에 처음 이루어졌다. 친노라는 딱지는 그동안 친노정치세력(?)을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이고 모욕적 느낌을 갖게 만드는 엄청난 마술을 부렸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개혁, 정당개혁의 산물로서 친노다. '3김시대'에는 동교동계, 상도동계라고 불렸고, 이것을 계파(系派)라 했다. 사전에 찾아보면, "정당이나 조직 내부에서 출신(出身)이나 연고(緣故), 이권 등에 의해 결합된 배타적(排他的)인 모임"이라고 되어 있다. 왜 언론은 '친노'를 무슨 계라고 하지 않고 친노라고 했을까? 친노라는 말속에 답이 있다. 친노는 계파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노는 긍정적 유산이다. 여당, 야당을 불문하고 제왕적 총재제도를 가지고 있던 당을 노무현의 새로운 정치라는 아젠다에 의해 개혁했기 때문에 과거 개념규정으로 정리할 수 없었다.

비록 지도자의 성에 이름을 붙여 정치세력을 규정하긴 했지만, 가치중심의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측면에서 친노라는 용어는 역사적 개념이다. 아무튼 친노니, 반노니 하던 언론에서 만든 이 프레임이 이제는 집권당에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아이러니다. 무척 안타깝게도(?) 한나라당 내부의 정치행위를 친이-친박의 구도(프레임)로 해석되고 설명되는 순간, 한나라당의 비극은 잉태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그 친노가 부활할 기회가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노는 사라져가는 정치세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친노를 땅에 묻어버리고, 흔적은 지워 버릴까하는 경쟁이 야당 내부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표현대로 친노는 폐족(廢族)이었다. 친노는 모여 있는 체로 폐족이 된 것이 아니라, 공중에 분해된 형태로 산산이 흩어져 있었다.

안희정 최고위원, 이광재 의원, 낙선의원 등 여전히 민주당에 잔류하고 있는 세력도 있고, 민주당의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한 민주당 탈당파도 있고, 유시민 전 장관과 개혁당 출신들처럼 민주당에서 밀려난 탈당파도 있다. 지역정당으로 기울어진 민주당과 함께하지 못하는 김두관 전 장관을 비롯한 영남민주화세력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불행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친노세력은 부활의 기회를 제공받았다.

안희정의 표현에 빗대어 정리하자면, 폐족에서 면천(免賤)을 받았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1주일 동안 500만 명의 조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노선이 진정으로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소에 신념으로 생각했던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힘으로 친노는 드디어 '정치적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친노가 비록 면천이 되었다고 해서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것이 아니고, 복권이 되었다고 공직에 당선이 된 것도 아니다. 하물며 사분오열된 친노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즉 단일한 당을 이루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단독으로 상속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부터 친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친노세력은 갈 길이 아주 멀다. 친노세력은 지금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훈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추모의 열기를 아전인수로 해석하지 말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과 몸으로 보여준 자세를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린 것처럼 친노는 자신을 죽여야 한다. 친노의 프레임으로 정치를 하면 안 된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친노가 떠오르고 주목받을지 몰라도, 절대로 친노만으로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친노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것이 아니라, 한국 정치를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것이다. 이 점을 친노세력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함께하는, 그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호시우행의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 할 일은 명명백백해졌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를 바로 세우자!

노무현의 정치에 대해 새로운 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퇴임 1년을 전후하여 노무현시대에 대한 평가 작업이 일부에서 진행하였다.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에서 출판한 '노무현시대의 좌절'에 대해 우리 '사회디자인연구소'가 4차례의 토론을 진행하였고, '한사연'과 비공식적으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모든 연구역량과 정치활동가가 참여하는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노무현시대에 대한 올바른 평가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특히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노무현시대를 재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참여정부의 5년은 진보개혁세력에서 제일 큰 '보물창고'다. 우리 국민들이 인정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자, 많은 분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성과를 상기시켜주었지만, 우리사회의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추모기간에 발표하는 추모의 글속에도 '노무현 정치는 실패했다'는 전제를 깔고 추도의 글을 올리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이들과 불필요한 논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무책임한 냉소적 시각은 바로 잡아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친노는 노무현시대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반성하고 성찰하자!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일시 석방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이광재 의원이 27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오열하고 있다.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일시 석방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이광재 의원이 27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오열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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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 '유연한 진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정부를 이끌어가는 통치자로서 경험에 입각하여, 세계사적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민국호(號)의 미래를 제시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에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진보개혁세력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분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진보개혁세력의 분화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결의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의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각각의 아젠다에 이견이 발생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진보개혁세력 내부에서 분명한 가치적, 이념적, 철학적, 정책적 차이성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러한 분화의 과정이 단일한 진영내부의 건강한 경쟁관계였다면, 대선과 총선에서도 그토록 처절한 패배는 없었을 것이다.

진보개혁세력은 언론이 짜놓은 친노-비노-반노의 프레임에 빠져서 적대적 투쟁관계로 발전해 갔다. 정치적 주도권과 정치적 유불리의 문제로 모든 사안을 끌고 가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지난 1년은 정당개혁과 기간당원제도 사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던 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용감하게 우리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 하자! 찌푸렸던 이마의 주름살을 직시하고 이악스럽게 내뱉었던 독설들을 주워 담자!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보자! 그 유서로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자! 그래야 친노를 안아주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우리가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셋째, 진보의 가치, 이념, 정책을 재구성하자!

친노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연한 진보'의 내용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참여정부 평가는 새로운 진보를 재구성하는데 꼭 필요한 보물창고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실현하려고 했던 각종 정책과 로드맵은 새로운 진보를 구성하는데 적어도 50%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50%는 우리가 새롭게 채워야 한다. 유럽의 사민주의적 진보주의와 미국의 자유주의적 진보주의를 한국적 진보주의로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새로운 진보의 가치는 국민의 참여와 주권의식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민민주주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진보적 자유주의, 대화와 타협, 상생과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는 공화주의 국정운영, 공평주의, 소비자중심주의 등 우리사회에서 진보를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와 주장을 흡수하여 통합 발전시켜야 한다. 새로운 진보의 깃발이 없이는 새로운 정치세력, 새로운 당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반드시 이념이 앞서고 세력이 뒤서는 것처럼 선후(先後)의 문제는 아니지만, 지향하는 가치를 정립하지 않으면, 구체적은 정책을 바로 세울 수가 없고, 집권하더라도 성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운 흐름,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시작하자!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정치의 깃발이 앞서면 시민들이 동참할 수가 없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당은 시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 새로운 시민생활운동이 필요하다. 일자리, 교육, 주택, 보건의료, 복지, 문화의 영역에서 새로운 모범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준비해야 한다. 유일하게 '영혼을 가진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듯이 그 영혼을 가진 정치인을 광장에서 만나야 한다. 국민의 가슴마다 감동의 전율을 전파할 수 있는 지도자라면 진보개혁의 정치세력을 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통합의 과정은 새로운 가치와 비전으로 가능할 수 있고, 새로운 지도자로 가능할 수도 있고, 새로운 당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광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전통적 진보 지지층이라는 계급적 대상을 중시하는 사고를 벗어버리고 진보의 가치를 존중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겸손하게 시작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몸으로 겸손하라고 보여주셨다. 미처 준비가 된 사람이 우리 눈에 안 보인다고 혼자서 앞장서가면 안 된다.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를 도와주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역사는 우리 편이다. 국민들을 믿는 혁명적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오늘부터 친노라는 단어는 없어야 한다. 친노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사고도, 관점도, 활동도 바꾸어야 한다. 와신상담의 자세로 분골쇄신해야 한다. 그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친노가 우리의 머리에서부터, 언론의 한 줄 기사에서 사라지는 날, 새로운 진보가 시대정신이 되고, 진보개혁세력의 당이 집권을 하고, 국민이 승리하는 날이 될 것이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살신성인의 유지(遺志)가 실현되는 날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태그:#노무현, #대통령, #친노, #참여정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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