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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시인들(18)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누가 말했던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의 붉은악마 응원단들은 1966년 북한이 이룩했던 8강 신화를 재현하길 빌었다. 1966년도 당시 북한은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상대 또한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였다.

응원단은 "again 1966"이라는 카드섹션으로 세계에 우리가 하나임을 과시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던 그때 우리들에게는 민족의 위대한 역사들이 그 성과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대단한 시기였다.
도문시 일광산에서 뒤에 안개낀 산은 두만강 건너 북녘땅, 좌로 부터 도문시 세무국에 근무하는 중국동포 김경희 시인, 가운데 필자 오른편에 대전의 김동준 시인-시향만리 출판기념회에 갔을 당시(시향만리-남북한, 해외동포 등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들의 작품을 총망라한 시인총서)
▲ 도문시 일광산에서 뒤에 안개낀 산은 두만강 건너 북녘땅, 좌로 부터 도문시 세무국에 근무하는 중국동포 김경희 시인, 가운데 필자 오른편에 대전의 김동준 시인-시향만리 출판기념회에 갔을 당시(시향만리-남북한, 해외동포 등 한글로 시를 쓰는 시인들의 작품을 총망라한 시인총서)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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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 북녘의 시인을 소개하며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남과 북의 같은 이름을 가진 시인들의 시집을 엮어보는 것은 어떤가? 아직 필자와 같은 이름의 시인은 찾지 못했지만, 더러 같은 이름의 시인들이 있다. 여기 문병란 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시인 문병란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북한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며 작품을 써온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네 민족전통 서정이 물씬 스며들어가 있는 작품임을 작품 감상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그림처럼 그려지는 풍경에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성이 눈에 선하게 비치고 있다.

  아즈머니
북녘의 시인/문병란

아즈머니
열 네 살에 서방을 얻어
색씨 맥씨
풋달래 머리 해얹고
백리 낯선 길을
울며 오신 아즈머니

고초 당초
맵고 카-한
시집살이 종사리 삼십년에
벌써 뒤 귀밑에
달래꽃 서리발이
하-야케 피었구려

내일은
이 나라 오천년의
시부모 동생
우람한 남정의
소굴레 말굴레
활활 다 벗겨준
기쁜 명절
돌마지 날이라도

아즈머니
그러케 웃지만 말고
어서 광문을 여세요
우리 함께
이 한밤 송구떡 빚어
귀분이 옥녀
온 조선 따님네들의
복된 날을 즐깁세다요


그런데 이름이 같은 남한의 문병란 시인이 또 있다. 1962년《현대문학》에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통하여 문단에 모습을 나타낸 시인은 1970~80년대의 남한 사회 민주화 과정에도 적극 참여했던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다.

위의 시는 북한의 문병란 시인의 <아즈머니>, 아래의 시는 남한의 시인 문병란의 <직녀에게>이다. 북녘 시인의 시를 해석해보면 크게 역사적인 의미의 민족을 언급한 바는 없지만, 시 전반에 오천년 역사의 흐름 속에 담기는 우리네 전통 서정이 흐르고 있다.

시의 구절구절 문법이 달리 쓰인 것 말고 남녘의 시인이 쓴 시인지, 북녘의 시인이 쓴 시인지 알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남북이 다른 것을 보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이만큼 닮아 있다."라고 보려는 시각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직녀에게
남녘의 시인/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쳐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시 <직녀에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노래방에서도 많이 불리는 노래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언젠가 북한 식당에서 <반갑습니다>의 답가로 필자는 <직녀에게>를 부르다 함께 어우러져 북한 식당의 여종업원들과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필자는 어떤 후배 문학지망생이 <직녀에게>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 후로 필자도 "이별이 너무 길다(분단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이산이 너무 길다)", 그리고 다른 후렴구에서 "분단은 끝나야 한다, 통일이 되어야 한다."로 개사해서 부르곤 한다. 오늘 다시 남북의 시인이 같은 이름으로 쓴 민족의 서정을 공유하며, 통일의 그날을 위한 한 마음, 한 마음들을 보태기를 기원해 본다.


#북한의 서정시인 문병란, 남한의 시인 문병란#통일의 노래#시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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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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