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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벌교하면 주먹만 떠올린다. 최근에는 꼬막과 소설 태백산맥이 더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벌교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기만하다. 어떤 이는 벌교가 바닷가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 살짝 "벌교가 갈대밭이 아름답고 갯벌이 좋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람사르협약에 의한 습지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뒤로 자빠진다.

 

역사는 사라져도 자연은 남아있어 갯벌은 가히 일품

 

벌교에는 포구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벌교읍내 입구 철다리 밑과 좀 더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선소마을인데 일제강점기 때까지는 철다리 밑도 제법 볼품이 있는 포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배라고 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며 물이 빠지면 배가 육지에 걸터앉아 낮잠 자는 모양새로 포구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색함이 있다.

 

이에 반해 선소(수)라 불리는 진석마을은 역사성으로나 위치상으로 포구를 넘어선 항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으로 예로부터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관문이며 이순신 장군을 도와 해전에서 큰 공로를 세운 낙안군 수군이 주둔하던 곳이며 일제강점기때 부터는 물산의 집합소로 유명했다.

 

마을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진석마을에는 낙안군 수군의 무기창(고)이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부터는 전라도 동부지역의 농산물과 부산 등에서 들어오는 공산품의 맞교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큰 배들이 먼발치에 정박하면 작은 배들이 육지의 농산물을 큰 배에 싣고 큰 배에 실려 있던 공산품을 항구에 내려놓는 작업을 쉼 없이 반복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1920년대부터 철도가 개설되고 육상 교통망이 발달해 해상교통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진석마을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급하게 사라져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연만은 살아있어 천혜의 학습장인 갯벌체험장 조성이 한창이다.

 

진석 주민들은 "벌교를 포함한 여자만 갯벌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갯벌에 황토가 섞이지 않고 모래 또한 섞여있지 않은 순수한 갯벌"이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갯벌의 깊이도 수십 미터씩 이어져 갯벌 생물들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인데 진석 갯벌체험장도 그 일부분으로 곧 개장하게 될 갯벌체험장을 주목해달라고 주문한다.

 

천연 갯벌 위로 흉물처럼 교각 세워져 묘한 대비

 

하지만 이런 의견은 현재 한참 공사중인 벌교대교로 인해 소수 의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는 2010년을 목표로 건설중인 목포-광양간 고속도로가 벌교지역을 통과하면서 진석마을앞 수로를 교각들이 점령하고 그 풍경만큼이나 묘한 대비가 일어나고 있다.

 

벌교에서 꼬막사업을 하는 K씨는 "시각적으로 대비가 돼 해안가 풍경을 망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근 양식장들에 피해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는 삶의 질에 대한 문제와 어민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를 동시에 꼬집은 것이다.

 

고속도로와 벌교대교 교각은 해안가 포구마을이던 진석마을옆을 상공에서 누르면서 스치듯 지나간다. 갯벌체험장은 그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벌교 쪽에서 보면 훤하게 뚫려있던 바다가 장대 같은 대교로 막히게 되는 형태가 된다.

 

K씨는 '만약 벌교대교가 없다면 진석마을은 여자만으로 확 트인 조용한 포구마을로 천혜의 갯벌체험장이 있는 서정적 마을로 남게 될 것인데 아쉽다"고 말하면서 "민감한 바다와 바다생물들이 공사로 인한 수질오염이나 해류의 변동 등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지도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의 관심사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의견 분출

 

진석마을은 한때 해상교통의 요지였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로는 그저 40여 가구가 사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수로가 아름답고 천연 갯벌이 잘 발달된 곳으로 행정과 주민은 자연친화적 마을을 꿈꾸며 진석갯벌체험장을 기획해 수년째 조성해 오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고속도로가 놓이고 마을위로, 수로위로, 갯벌위로 벌교대교가 통과하면서 상황은 전혀 달라져 처음에는 자연훼손과 경관을 헤친다는 것을 비롯해서 보상금 문제로 시끄럽다가 최근에는 자연친화적인 것이 아닌 도심지향적인 마을로 가꾸자는 의견들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다리에 분수를 설치하고 조명을 설치해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게 하자는 의견에서, 쇼핑타운을 건설하거나 대대적인 항구 개발까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자연친화적인 마을로 가꾸자는 생각들이 전혀 엉뚱하게 현대 도시화된 마을을 상상하는 기현상으로 더 많은 의견들이 모이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어느 것이 더 나은 미래이며 진석마을의 100년지 대계인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벌교의 관문이며 낙안군의 역사가 살아있던 진석마을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없게 될 것이란 점만은 분명하다"고 아쉬워했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42]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남도TV


태그:#낙안군, #남도TV, #벌교, #진석마을, #갯벌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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