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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SK본사 앞에서 '통신요금인하와 무상인터넷, 통신공개념을 위한 전면전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이동통신시장의 독과점 체제 규탄과 부당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SK본사 앞에서 '통신요금인하와 무상인터넷, 통신공개념을 위한 전면전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이동통신시장의 독과점 체제 규탄과 부당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이동통신 요금 인하 논란이 거셉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통화량이 비슷한 OECD 회원 15개국 중 휴대전화 음성통화 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메릴린치 보고서(2009년)에서도 한국의 음성통화 요금은 2004년을 기점으로 매년 순위가 상승해 2008년에는 우리와 비슷한 15개국 중 최고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들은 "국제통화요금 비교는 각 조사마다 기준이 달라 국내 요금 수준을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며 "우리나라 이동전화 요금 수준은 저렴한 편"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동통신 요금을 인하할 수 없다는 것이죠.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지키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강제로 하기 보다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지요. 그렇게 시장 논리가 중요하다면, 이 대통령은 왜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했을까요?

 

 17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동통신요금 적정성 논란과 해법 그리고 국회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17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동통신요금 적정성 논란과 해법 그리고 국회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 남소연

결국 논란은 국회로까지 옮겨갔습니다. 지난 17일 국회도서관에서는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과 조영택 민주당 의원 공동주최로 '이동통신요금 적정한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여·야 합동토론회'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 동원됐고, 김형오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이 대거 출동했습니다. 그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것입니다. 당연히 이동통신 요금 관련 상임위를 이끌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의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위원장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고흥길 위원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자니,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처럼 고 위원장도 인사말을 빌어 이동통신 요금 인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요. 우선 들어보시죠.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자료사진). ⓒ 남소연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통신비 인하를 얘기했다. 통신요금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외국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지 않느냐. 사실 IT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자본형성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고흥길 위원장은 이어 "통신요금을 일률적으로 인하하는 게 아니라 통신을 많이 쓰는 사람은 누진적으로 많이 내게 하고, 조금 쓰는 서민들은 깎아주는 역진적인 정책을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습니다.

 

고 위원장은 특히 통신 이용 문화의 개선을 주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철에서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해서 통신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서는 요금을 더 비싸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부인들이 운전을 하면서도 이동통신 전화를 쓰고, 집에서도 2시간 30분씩 전화를 하고, 그것도 핸드폰으로 하고, 이런 생활 관습부터 고쳐야 한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문제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타깃이 아이들과 여성들로 옮겨가는 것을 보며 의아했습니다.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니까, 요금을 더 비싸게 물어야 한다니요.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하면 아이들의 이동통신 요금을 더 낮춰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정영기 홍익대 교수는 "청소년들의 과소비가 문제라는 것은 결국 (이동통신사업자가) 코 흘리게 돈을 받아서 지난 8년간 14조, 연평균 1조7000억 원 가량의 초과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고흥길 위원장은 정영기 교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군요.

 

무엇보다 '쓸데없이 부인들이 운전을 하면서 핸드폰을 사용하는 관습을 고쳐야 한다'는 발언은 또 무엇입니까. 여성 운전자를 향해 "밥(설거지, 빨래 등)은 해 놓고 나왔느냐" 등 욕설을 쏟아내는 일부 남성 운전자들의 패권적이고, 남성 우월주의적인 사고와 무엇이 다를까요?

 

이날 토론회를 지켜본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특수한 경우 (통신비용) 낭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끼고 아껴서 사용해도 통신비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불만이 많은 것"이라며 "문제는 현재 이동통신 요금이 적정한가인데, 통신을 많이 썼으니 더 내라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이 간부는 "이명박 정부는 게임 강국을 만들자고 하더니, 이젠 아이들이 게임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여성에 대한 편견이 깊숙이 깔려있는 고흥길 위원장부터 핸드폰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대선용으로 '통신비 20% 인하'를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손을 놓고 있는 최시중 방통위원장, 그리고 고흥길 위원장의 기막힌 시각을 보면서, 이동통신사들이 무엇을 믿고 요금 인하 여론에 대해 '배 째라'식으로 버틸 수 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 논란#고흥길 문방위원장#이명박 대통령 통신비 인하 공약#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동통신사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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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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