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인 김영철(가명)군에게 최근 갑작스럽게 학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건설현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추락사로 크게 다친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집안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왔던 터라 추락사고 이후 김군은 학업중단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군은 '긴급복지지원 대상'에 해당돼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분기당 32만9000원과 수업료 등을 지원받아 학업중단만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 5월 '긴급복지지원법'과 시행령이 개정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원대상 확대되고 지원기준 완화됐지만 예산은 60.8%나 삭감'긴급복지지원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월부터 시행됐다. 주소득자 사망, 화재, 질병 등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 등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발빠르게 지원함으로써 '가정해체', '생계형사고', '만성적 빈곤화' 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긴급복지지원에는 ▲생계지원(4인가구 기준 90만 원) ▲의료지원(300만 이내) ▲주거지원(임시 거주지 제공) ▲교육지원(초·중·고 학비 지원) ▲기타지원(연료비·전기세·해산·장제비 등) 등이 있다. 최저생계비 150% 이하(4인 가구 198만 원), 재산 1억3500만 원(대도시), 금융재산 300만 원 이하이면서 '일시적 위기상황'에 처한 경우 이러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난 5월 긴급복지지원법과 시행령이 개정돼 '교육지원'이 추가됐고, 긴급생계·주거지원 기간도 최장 4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다. 특히 국내 거주 외국인들도 지원 받을 수 있는 특례규정도 마련됐다.
이러한 긴급복지지원사업의 2010년 예산은 총 529억 원이 책정됐다. 세부내역별로 살펴보면, 의료지원 429억여 원, 생계지원 65억여 원, 교육지원 28억여 원, 해산·장제·전기지원 3억 8000만여 원, 주거지원 약 1억 원, 연료비 지원 5330여 만 원, 시설이용 지원 3180만여 원 등이다.
이는 2009년도 본예산(515억여 원) 대비 2.7% 증가한 금액이다. 하지만 2009년 추경예산(1533억여 원)과 비교할 경우 무려 65.5%나 줄어들었다.
정부는 지난 3월 고용보험 미가입자 실직자 가구와 휴·폐업 영세자영업자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해 총 1533억여 원의 긴급복지지원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실직자 1만 4300가구에 294억 원, 휴·폐업 영세자영업자 3만5200가구에 724억 원의 생계지원금을 편성한 것. 이는 세계적 경제위기의 충격에 따른 '신빈곤층의 대량 발생'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의 경기회복세를 근거로 내년도 경기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판단해 긴급복지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이는 '긴급복지지원법'과 시행령 개정 내용과도 배치되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 5월 긴급복지지원법과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교육지원이 신설되고, 지원지간도 6개월로 늘어났고, 연장지원 절차도 1개월로 간소화됐다. 특히 현행 한시법에서 영속법으로 바뀌었고, 지원대상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도 포함됐다.
몇 가지 한계가 지적되고 있긴 하지만, 지원대상이 확대되고 지원기준이 완화된 셈이다. 이에 따라 지원건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긴급복지지원 예산을 2009년 추경예산 대비 65.5%나 줄인 것은 '복지둔감 정부'라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내년도에 점차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긴급복지지원제도의 홍보강화로 인해 제도에 대한 국민 인지도가 높아져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2010년 긴급복지지원 사업 예산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긴급복지 지원 인원수 1년새 60% 증가... 예산안에는 반영 안돼 또한 정부의 예산안 편성에는 양극화 심화 등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보건복지가족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나타난 것처럼, 해마다 긴급복지지원 건수와 인원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예산을 편성했다는 지적이다.
2007년에는 2만4932건과 3만176명(303억 원), 2008년에는 2만7205건과 3만2998명(342억여 원)이었다. 2009년 상반기에는 3만389건과 5만3051명(284억여 원)을 기록했다. 2008년과 2009년을 비교하면 지원건수는 11.7%, 지원인원수는 60.8%나 늘어났다. 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신빈곤층이 크게 늘어났음을 방증한다.
특히 2009년 상반기 생계지원 건수와 인원수, 지원금액이 2008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3171건에서 1만152건으로, 7778명에서 3만1339명으로, 21억여 원에서 75억여 원으로 늘어난 것.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지난 3월 서민생활을 안정시키겠다며 민생안정 긴급대책을 내놓고 추경예산을 편성했다"며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행한 한시사업이었다는 이유로 2010년 예산은 편성되지 않아 결국 서민생활 안정대책은 후속대책 없는 말잔치로 끝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