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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힘차게 밝았건만, '재밌게 살자'는 목표는 작심삼일. 겨우 1월의 끝에서 우울한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새해를 맞아 유쾌하고, 가뿐했던 기분은 취업 걱정, 인생 걱정 게다가 연애 걱정까지 겹쳐 급 우울해졌다. 참 힘없는 젊음이었다.

'악, 우울해. 뭐 재밌는 일 없나.'

브런치 모임,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제론 모여서 수다나 떨자는 만남이었다
 브런치 모임,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제론 모여서 수다나 떨자는 만남이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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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없게 살 순 없다며 고민을 거듭하던 나, 하루는 4차원 세계관(?)을 가진 옥진이란 친구와 뭔가 그럴듯한 약속을 잡았다. 그 이름하여 거창한 '브런치 모임'이었다.

아침 식사와 함께 인생 상담을 하자는 꽤 '교훈적인' 취지였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그녀는 역시 4차원 답게 "OK"를 외치며 긍정적이었다. 도원결의처럼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기세였다. 

"야! 근데 우리 모이면 뭐할까?"
"음음, 글쎄, 그냥 수다 떨기?"

하지만 모임 이름만 거창했을 뿐, 실제론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실상은 그저 빵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면서, 속상한 일 털어놓고 수다나 떨자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은근 기대가 됐다. 생각해보니 취업 준비며, 알바다 뭐다해서 '올빼미족'이 돼버린 친구끼리 모여 아침 식사하는 것도 희귀한 일. 가족들끼리도 아침 먹기도 힘든 세상에서 친구랑 아침 먹는 것은 특별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기대된다. 이야기나 엄청 하자."
"그래 완전 기대된다."

그래서일까? 약속의 그날, 나와 친구는 아침식사에 홀린 사람처럼 빵이며 샌드위치를 사들고, 신촌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식사를 시작했다. 커피를 곁들이며 아침식사 하는 여유로움. 행복함이 물밑 듯 밀려왔다.

행복을 방해하는 젊은날의 우울한 고민들

"그런데, 미래 준비는 잘하고 있어?"

하지만 그런 행복함을 와장창 깨는 우울한 말들. 식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취업, 연애 이야기에 행복한 기분은 낮게 가라 앉아 버렸다. 난이도 높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 마냥, 우리의 대화는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 이러다 꿈 못 이루고 백수 되는 거 아니야? 돈 벌어 좋아하는 사람 챙겨야 하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성공도 하고 글도 써야하는데 막막하네. 얼른 시집이나 가버릴까?"

행복했던 기분은 '취업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우중충해졌다. 이럴땐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행복했던 기분은 '취업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우중충해졌다. 이럴땐 뭔가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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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연애에 대한 걱정. '백수와 시집'을 생각하는 젊은날의 우울함에 샌드위치가 코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도 몰랐다. 이럴땐 우중충한 기분을 타개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잘하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실패에 주눅든 우리에게 뭐 잘하는 일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 기분 우울하다. 넌 뭐 잘하는 거 있니?"
"나? 음..... 아. 노래 잘해. 어서 못한다는 소리 안 들어! 너는?"
"흥, 나도 랩은 좀 해."

역시 4차원인 옥진이는 한치의 겸손함 없이 노래를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난 괜한 경쟁심이 발동해 노래 시합하러 노래방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녀도 자신있다는 표정으로 좋다고 한다. 그래, 이쯤되면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다. 생각해보니, 과거 나도 한 '랩'을 했다. 취업 준비 같은 바쁨 때문에 그동안 노래를 많이 안 불렀지만, 오늘은 노래나 신나게 불어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싶었다.

힙합남 VS 발라드녀! 노래방 습격사건

스트레스 풀러 아침식사 후 찾아간 노래방, 힙합남 VS 발라드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다
 스트레스 풀러 아침식사 후 찾아간 노래방, 힙합남 VS 발라드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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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와 옥진이는 주변을 물색해 노래방을 찾아 갔다. 정오에 노래방이라니, 속으론 웃음이 나왔다. 아침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것은 생전 처음인 것 같았다.

"너 아침 식사하고 노래방 가본적 있어?"
"없어, 넌?"
"나도. 하하하."

그렇게 엉겹결에 찾아간 노래방. 그런데 정오의 노래방이 그렇게 텅텅 비어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일찍 손님이 와서 당황해(?)하는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뒤로 방을 얻어 노래 대결을 시작했다.

마이크 잡는 자세가 장난이 아닌 옥진, 난 노래벙에 박봄님이 출타하신 줄 알았다
 마이크 잡는 자세가 장난이 아닌 옥진, 난 노래벙에 박봄님이 출타하신 줄 알았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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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칭, 발라드녀와 힙합남의 노래 대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난 자신만만했다. 성악 전공한 어머니와 피아노 전공한 누나 밑에서 귀동냥(?)으로 음악을 접했기에 듣는 수준은 고급. 그렇기에 웬만큼 잘 부르지 않으면 '고정도 실력으로 잘한다고 한 거야?'라고 코웃음을 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자신있게 박봄의 'You And I'를 부르는 게 아닌가. 순간 난, 인기 그룹 2NE1 박봄님이 노래방에 출타하신 줄 알았다.

'악. 노래 진짜 잘하네. 고음을 가지고 노네.'

알고보니 그녀의 잘난 척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렇게 노래 잘하는 애가 왜 가수 안하고 글을 쓰는지 의아할 정도. 환상적으로 노래를 끝마친 그녀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노래 목록이 적힌 책을 건네준다. '어디, 너도 어서 불러봐'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나는 속으로 조금은 긴장하며 노래방 목록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상대의 엄청난 노래 실력에 주눅이 들어서인지 부를 노래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사이 옥진이는 음악 삼매경에 빠졌다. 내가 목록을 살피는 사이, 우리 노래방에는 윤하, 박혜경, 태연님등 여러 가수님(?)님들이 들렀다 가셨다. 그런 착각마저 든다.

결국 도저히 한 곡 안뽑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어렵게 마이크를 손에 쥐고 '프리스타일'랩을 시작했다. 마치 오디션 시험 받는 것마냥, 긴장된 표정으로 랩을 흥얼거렸다. 오랜만에 불러서인지 생각만큼 잘 부르지 못한 느낌이었다.

'앗 너무 못 불러서 웃기겠다.'

이윽고 노래가 끝났지만 옥진이는 굳은 표정이다. '무슨 악평을 쏟아낼라나'하는 긴장하며 "이상해?"라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다행히 긍정적 반응.

"오, 랩 좀 하는데? 생각보다 잘하네."
"진짜진짜? 너도 발라드 진짜 잘한다."

이렇게 정오부터 노래방 가서 서로가 서로의 노래실력을 챙겨주는 훈훈함(?) 속에, 좀 전의 우울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갔다.

남자친구에게 들려준다며 좋은 노래를 적어가는 옥진의 엽기행각, 하지만 이에 뒤질세랴 나도 부랴부랴 펜과 수첩을 꺼내 좋은 노래를 적었다. 그녀애게 들려주기 위해서,
 남자친구에게 들려준다며 좋은 노래를 적어가는 옥진의 엽기행각, 하지만 이에 뒤질세랴 나도 부랴부랴 펜과 수첩을 꺼내 좋은 노래를 적었다. 그녀애게 들려주기 위해서,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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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 취업이든, 연애든 뭐든 다 어설펐는데 다행히 노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엇인가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젊음의 위안이다. 잠시 후, 음악 대결은 커녕, 네 귀를 찢어주마 식의 스트레스 풀기 노래가 이어졌다. 덕분에 해결책이 없을 것같던 젊은날의 우울도 뻥 뚫려가는 느낌이다. 힙합남과 발라드녀의 노래방 습격사건은 이렇게 환상적인 결과를 내며 끝이 나고 있었다.

노래방에서 벗어나 집에 오는길. 기분이 잔뜩 좋아진 내가 시집이나 갈까?라고 우울해하던 옥진이에게 한마디 거든다.

"야. 시집은 가는게 아니라 내는거야! 올해 열심히해서 좋은 글 써. 응원할게."

멋진 노래 실력으로 자신감이 상승한 그녀도 내게 한마디 거든다.

"응 진성아. 너도 취업도 연애도 지금처럼 하면 잘할거야 모두 파이팅."

젊은날의 고민을 함께 이겨가는 그 이름, 노래방을 함께 습격한 그 이름, 천상 친구였다.


태그:#힙합남, #발라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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