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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덕혜에 대한 최초의 소설 <덕혜옹주>가 요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다. 왜일까? 개인적 생각으론 먼저 한 편의 드라마, 영화를 보는 것처럼 덕혜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쉽게 동화되어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또, 올해로 경술국치를 당한 지 100년이 됐다. 그 때의 역사를 그동안은 생각해 보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시기였다면 이제는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들 말하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양국 사이에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로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해소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안 좋은 감정들... 그 이면에는 바로 1910년 한일합방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일제강점기 36년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점령국으로 우월감이 가슴 저 밑에 잠재해 있을 것이고, 한국은 억압 받은 식민지국의 서러운 피해의식이 서려 있다. 해서, 두 나라 사이에는 묘한 경쟁의식이 있다. 스포츠 경기마저도 '다른 나라에는 져도 일본한테만은 꼭 이겨야 해'하는 그런 감정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생을 마감했던 덕혜옹주를 그린 최초의 소설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는 고종황제가 늦은 나이에 귀인 양씨를 통해 얻은 막내딸이다. 어린 딸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고종은 기울어져 가는 나라에서 어린 딸의 앞날을 생각하며 불안해한다.

고종은 일본이 옹주를 채가지 전에 딸의 약혼을 진행시키고 싶었다. 가장 믿을 만한 시종의 조카와 연을 맺어둔다면, 옹주의 일본행을 막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 전에 김장한이 어떤 아이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리 일각을 다투는 일이라 해도 가장 아끼는 옹주의 배필을 무턱대고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52쪽)

고종황제의 바람은 일본에 가로막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승하를 하게 된다. 덕혜는 아버지가 일본에 의해 독살되었다고 굳게 믿으며 일본에 대한 증오감은 더해만 간다. 그 후, 덕혜옹주는 13살(1925년)의 나이에 원치 않은 일본유학길에 오른다.

"오늘이 내가 일본으로 끌려가는 날이구나."

환송객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도 옹주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한기가 서려 있었다. 덕혜는 고개를 들어 삼각산을 보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라고 읊었던 청음 김상헌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왜 저 산이 저리도 눈물겹게 아름답고 푸근하다는 걸 평소에는 몰랐단 말인가. (130쪽)

그렇게 그리운 조선을 뒤로 하고 오른 일본 유학길은 옹주에게는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조선에서의 그것과 비교될 바가 아니었다. 힘겨운 학교생활 속에서 조선의 황녀로서 위엄을 잃지 말아야 했다. 황족이기에 더 자유롭지 못하고 언제나 감시의 시선에 둘러싸여 있어야만 했다. 딸에 대한 그리움과 딸의 결혼 문제에 대한 걱정이 병이 되었을까? 어머니인 귀인 양씨가 1929년 세상을 등지고 만다. 옹주의 슬픔은 어땠을까? 그런 옹주에게 이듬해 일본인과의 결혼이 추진된다. 옹주는 완강히 거부한다.

"일본 황족과 결혼하라는 게 어떤 뜻인지 정녕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우리 황실의 핏줄을 끊어버리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뻔히 알고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결혼을 해야 합니까? 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오라버니, 전 반드시 창덕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반드시! 이곳에 강제로 유학을 온 것만으로도 분한데 일본인과의 결혼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교사가 되어 조선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내 나라 내 백성들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러니 오라버니 제발, 제발, 혼사만은 막아주시어요. 네?" (190쪽)

덕혜는 그렇게 영친왕에게 간청한다. 허나, 영친왕은 동생 하나 보호해줄 힘이 없었다. 덕혜는 1931년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을 한다. 그녀의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을까? 조선의 황녀로서 일본인 남편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원치 않은 정략결혼은 그 두 사람을 모두 피해자로 만들어 버렸다.

덕혜옹주는 딸 정혜(마사에)를 낳았다. 딸이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조선인의 피가 흐르기에 힘든 학교생활을 견뎌야 하는 마사에는 조선을 부정하며 이렇게 외친다.

"조선은 이제 없어! 망해서 없어진 나라라고! 대일본 제국의 식민지란 말이야!"

저것이 내 굴욕의 마지막 징표다. 저것을 내 뱃속으로 낳았다. 저것이 외치는 저 소리, 내 삶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저 소리, 조선의 존귀함조차 부정하는 야멸친 저 소리. 저것을 내가 낳았다. (298쪽)

일본의 패망 후 가세가 기운 다케유키는 옹주를 병원에 입원시킨다. 더 이상은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옹주의 입장에서는 잔인한 일이었다. 오랫동안의 감금생활은 아마 정상적인 사람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케유키는 옹주와 이혼을 하며 그녀를 방치한 채 그녀를 떠나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다. 또한, 딸인 정혜는 자살을 한다. 이 부분들에 대해서 소설은 자세한 언급은 없다.

망국의 옹주로 태어나 서러운 생을 살았지만 이처럼 서러운 적은 또 없었다.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이토록 외로울 수 있으며, 세상의 어떤 여인이 이토록 서러울 수 있을까. 내 곁에는 바람소리도 머물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 곁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세월이여, 진정 따스한 손길을 보내주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마저 나를 모른다 하오. 나와 살을 섞은 남자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를 낳은 나라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소. 이토록 삶이 무겁다니. 이토록 고단하다니...(337쪽)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적인 삶 속에서 한 단계 한 단계 나은 삶을 누릴 때라고 본다면 덕혜옹주는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다. 아마도 고종의 사랑을 받던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후, 황녀로서의 그녀의 삶은 일개 평민보다도 못한 끝없는 추락의 연속이었다.

소설 <덕혜옹주>는 덕혜라는 한 여인을 통해 그 시대상을 관통한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이고, 과거와 미래는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허나,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으며, 현재의 연속선상에 미래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에 얽매어 살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과거를 잊어 버려서는 안 되지 않을까 싶다.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 귀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은 왕실 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했다. 이씨 왕가의 자손들은 해방이 되고도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를 만나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했다.
박정희가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나는 대답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입니다." -김을한의 말 (406쪽)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덕혜옹주의 말 (407쪽)


덕혜옹주 (일반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다산책방(2015)


#덕혜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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