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검찰'로 세상이 뜨거운 요즘, 난 손에 <삼성을 생각한다>를 들고 있다. 단순히 삼성을 비판하는 책으로 알고 있던 나는,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할 당시와 다를 바 없는 한국의 현실을 보며,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법조계-기업-정치계의 결탁의 악순환
한국사회의 문제에 나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을 보면서 그런 나조차 얼마나 순진했는지 깨달았다. 일 년에 수십 번씩 터지는 비리 사건은 그냥 개별 사건이 아니었다. 비슷한 형태의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한번쯤은 의심해봐야 했었다.
뿌리깊은 결탁. 그냥 깊은 결탁이 아니라, 인맥, 지연, 학연, 혈연까지 총동원되어 얽혀 있는 결탁. 그래서 사회의 또 다른 구조, 변모로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렇게 외치는 '비리척결'이 공염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깊숙이 그곳에 발을 담갔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없었더라면, 난 또 연일 터지는 비리 사건을 보며 개인만을 비난하고, 막연한 우리 사회에 대한 혐오를 가졌을 것이다.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봐야
문제의 본질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문제의 해법과 연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책, 실제로 상상을 초월하는 삼성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져 있지만, 내가 그것보다 '비리'라는 것, 우리나라가 '비리 공화국'이라는 사실에 착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가지는 지위는 정말 대단하지만, 이 문제는 비단 삼성이라는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삼성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특권을 누렸던 삼성을 비난 받아서 마땅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삼성 개혁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비리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막연한 사회적 혐오를 가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또한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자에게는 솜방망이 처벌되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면, 비리를 저지른 사람이 처벌받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막연한 사회적 혐오도 마찬가지이다.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해명하지 못한 것이기에, 명확한 해법과도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비리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 막연한 사회적 혐오로 두면 안되는 것이다.
비리 공화국이라는 오명... 그것을 벗는 길은 정치를 바꾸는 것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행행한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권력자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주 초보적인 해결책이며, 비리 척결의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비리 공화국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 결국 비리를 끊으려면, 법조계-기업-정치계로 순환되는 결탁의 구조를 끊어야 한다. 이것이 가진 자, 힘있는 자로 통칭되는 우리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의 끈끈한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주는 풍토를 바꿔야 한다. 법과 상식대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이제는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칼날을 꺼내어 들었던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유착관계가 너무 뿌리 깊은 탓도 있었을 것이고,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드러나듯, 어느 정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해답을 검찰 개혁을 넘어, 정치에서 찾는다. 서민들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법과 상식대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정치권력이 나올 때, 이러한 사회적 풍토에서 자유로운 정치권력이 나올 때, 비로소 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정치가 바뀌면 사회도 달라질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책에서 인맥 중심의 사회, 학연, 혈연, 지연, 혈연까지 총 동원하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비리 공화국을 만드는 한 부분으로 보았으며, 사회에 의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이 생존전략을 스스로 마련하도록 만드는 사회이다. 사회가 공적인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은 비리를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인 인맥 중심의 사회를 바꾸어가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내는 촉매제가 필요하다. 난, 그 역시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변화 속에서 사회의 문화와 풍토 또한 달라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스폰서 검찰을 두고,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검찰도 당황했는지, 검사 시효 상관없이 조사하겠다고 한다. 제발 조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역시,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 고백을 했었을 때처럼, 한계있는 조사로 끝날 확률이 많다.
그래서 난, 이 스폰서 검찰을 둘러싼 정치 공방보다, 다가올 지방선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건, 우리가 점차 정치권력에 다가서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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