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안함 침몰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올려야 할까? 사고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질문은 때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군 당국과 보수언론은 북한 소행으로 심증을 굳히면서 대북 군사 태세 및 전력 증강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향은 사고 발생과 위기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군과 정부의 문제점을 희석시키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무력 충돌의 위험을 높여 안보 딜레마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또한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한 섣부른 판단에 따라,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 등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에 손을 놓고 6자회담 재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국의 전략적이고 중장기적인 국익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북 외교를 포기하고 군사적 대응체제 구축에만 몰두할 경우 북한의 핵보유를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핵 해결'을 최고의 대북정책 목표로 내세워온 MB 정부의 대북정책과도 맞지 않는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 과잉대응은 자학적 결과 초래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북한의 '비대칭 전력'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이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은 북한이 한미연합군에 비해 정규전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남한에는 없거나 북한이 우위에 있는 군사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70여 척에 달한다는 잠수함(정), 18만명 규모의 특수부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그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수도권을 사정거리에 둔 장사정포 등이 포함된다. 군 안팎에서는 천안함 침몰을 계기로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새삼 주목하면서 강력한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응의 방점을 군비 증강과 작전계획의 공세화에 두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품게 된다. 우선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심증'은 오판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고, 오판에 기초한 대응체계 구축은 과잉대응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또한 북한이 비대칭 전력 강화에 나선 까닭은 한미연합군에 비해 총체적인 군사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한미연합군이 북한의 비대칭 전력 대응체계를 구축하면 할수록 북한은 다양한 방식으로 비대칭 전력을 늘려가게 된다는 것이 한반도 군비경쟁의 가장 큰 교훈이다.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볼 때, 비대칭 전력 구축이 대응 전력 구축보다 훨씬 저렴하고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칫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도 북한의 위협은 더욱 증대되는 자학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까닭이다.
왜 천안함은 백령도 인근까지 갔을까?기실 천안함 침몰에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가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깔려 있다. 이는 왜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까지 근접 기동을 했느냐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4월 1일 "북한의 새로운 공격형태에 대응하여 경비작전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함장 부임 후 10여 회에 걸쳐 사용"했다고 밝혔다. 민군 합동조사단 역시 4월 7일 중간 결과 발표를 통해 "특수임무수행이나 피항이 아닌 정상경비구역에서의 임무"라며 국방부의 공식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작년 11월 3차 서해교전 이후 해군 2함대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조정된 경비구역에서 작전을 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에 '조정된 경비구역' 지침이 하달된 배경이 된 "북한의 새로운 공격형태"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대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4월 2일 "북한이 세 차례의 서해해전을 통해 함정 대 함정 전투에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해상 도발뿐만 아니라 지상무기 공격 등 새로운 방법의 도발을 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북한이 방사포, 지대함미사일 등으로 공격할 경우 섬을 활용해 피할 수 있도록 백령도 뒤쪽으로 기동하는 작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천안함 침몰은 서해상의 안보 딜레마가 낳은 참사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지난 10여 년간 발생한 세 차례 서해교전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참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1999년 6월 발생한 1차 교전은 남쪽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쪽 함정을 차단 기동으로 밀어내는 와중에 발생했고, 선체가 견고하지 못한 북쪽 함정은 큰 피해를 당했다. 그리고 3년 후 북쪽 함정은 바뀐 교전규칙으로 2차 교전에 나서, 차단 기동을 위해 접근하던 남쪽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했다. 큰 피해를 본 남쪽도 교전규칙 수정에 들어갔다. '경고 방송→시위 및 차단 기동→경고 사격→위협 사격→격파 사격'으로 나뉘어 있던 규칙을 '경고 방송→경고 사격→격파 사격'으로 대폭 간소화했고, 작년 11월에 발생한 3차 교전은 철저하게 이에 따라 이뤄졌다. 승리한 남쪽은 교전규칙을 바꾸기를 잘했다고 승전가를 불렀지만, 그 후과는 안보 딜레마의 심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3차 교전에서 패퇴한 북한은 해안포와 지대함 미사일의 발사 태세를 강화하고 올해 초에는 NLL 인근 수역을 항해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해안포 훈련 사격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남측 군당국은 북한이 유사시 서해상의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을 동원할 것으로 판단하고, 초계함의 작전 구역을 백령도 등 섬 인근까지 근접 기동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유사시 섬을 엄폐물로 삼고자 했던 것이고, 천안함 침몰은 이러한 조정된 기동 훈련의 와중에서 발생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안보 딜레마의 교훈을 망각한 채, 3단계로 이뤄진 교전규칙을 '경고 방송'을 뺀 2단계, 즉 '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하면 북한의 도발 의지를 사전에 꺾을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지난 3차례의 교전과 천안함 사태의 교훈은 이와는 반대의 결과, 즉 무력 충돌과 확전의 위험을 키우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함 대 함' 전력에서 크게 밀리는 북한으로서는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 등 지상 전력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위협에 노출된 남한이 북한의 지상 전력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 확전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남북한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고,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심증을 굳히고 있는 남한 군당국은 보복 심리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서해상의 긴장이 높아지는 꽃게잡이철도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우발적 무력 충돌 및 확전의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MB 정부가 진정으로 대한민국 안보를 생각한다면 4월 29일 거행된 46명의 희생자에 대한 해군장에서 정부와 온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는 진정한 길은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는 유가족들의 고귀한 뜻이기도 하다.
정확한 원인 규명은 그 첫걸음일 것이다. 사고 원인 규명에 따라 군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정비도 필요하다. 여기에는 군에 대한 실질적인 문민통제 및 민주적 관리 체계 구축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즉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 상태를 종식시키지 않으면, 그 어떤 대책도 재발방지책으로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 일은 보수정권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천안함 침몰과 함께 6자회담과 남북관계마저 좌초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사활적인 목표에 대한 초점을 잃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상쟁과 공멸의 대북정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책무야말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진정한 길이며, 정부를 믿고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는 수많은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