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부산으로 이사하던 2002년 봄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던 아내가 "취향에 맞을 것 같은데, 한 번 읽어보세요!"라며 책을 한 권 내놓았다. 군산 시청 공무원이자 시인인 최영(1945년생)의 수상록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제2권이었다.
최영은 군산에서의 삶과 애환을 13년 4개월 동안(414회) 모 지방신문에 연재하고 여섯 권의 책으로 묶었는데, 2002년에 나온 제2권은 아내의 권유로 읽었고, 1995년에 출판된 제1권은 진즉에 절판되어 작년 가을에야 읽을 수 있었다.
처음 2권을 손에 쥐었을 때는 아내에게 "70년대 중반부터 군산에 살기 시작했다는 사람이 은파와 째보선창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제목으로 했냐!"며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며 애잔하게 다가왔다.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는 1973년 7월 1일부터 2006년 11월 18일까지 총 33년 4개월 동안 저자가 항구도시 군산에서 겪은 경험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근대사 기록서이기도 하다. 삶의 앨범처럼 느껴져 한동안은 외출할 때마다 가방에 챙겨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전북 순창 출신인 저자는 제1권 서문에서 군산 시청을 30만 시민의 호적과 애환, 그리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보관된 곳이라며 종갓집 사랑방에 비유했다. 진급을 위한 동료와의 경쟁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시장바닥보다 치열했던 공간을 사랑방에 비유하다니, 푸근한 인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말단 공무원 발령장을 받고 공원으로 해망동으로 며칠을 방황하다 정착하여 아내를 만났고, 아들 둘에 며느리와 손자를 보았고, 시인이 되어 글을 쓰는 저자는 제2의 고향인 군산의 하늘과 땅, 그리고 산천을 사랑한다며 거리와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토박이들이 질투를 느낄 정도의 애향심에 놀라울 따름이다.
삶의 씨알을 뿌리다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제1권 이야기는 1973년 7월 1일 저자가 공무원 발령장을 받고, 며칠 후 군산시 소룡동 임시 동사무소 숙직실에 자신의 조그마한 삶의 씨알을 뿌리면서 시작되는데, 괴롭거나 외로울 때는 여성 보헤미안 '초라'(草羅)에게 호소하며 구원을 얻으려 한다.
저자는 몇 번의 대학시험 낙방, 월남에서의 쓰라린 마음의 상처, 브루나이 공화국에서 입은 부상, 깨어져 버린 첫사랑, 문학에 대한 불신과 좌절 등을 가슴에 안고, 피난민 수용소 마을 소룡동에서 밤에는 모기와 무더위, 외로움과 싸우며 삶의 씨알을 뿌린 밭을 힘겹게 일궈나간다.
논두렁에 콩을 적게 심었다고 마을 면장 목이 날아가던 살벌했던 시절, 새마을 지도자들과 풀베기, 길 넓히는 일,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는 일, 퇴비 만드는 일 등이 주요 일과였다. 날마다 바닷가 공중변소를 들락거리고, 아침이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했던 73년 여름을 저자는 그리운 여인 '초라'에게 짙푸름 속에 매미 소리가 들리는 고요하고 아늑한 추억으로 전한다.
새마을교육과 공무원 숙정 제1권을 집필할 때 공무원이었던 저자는 자존심 상하는 일화까지 담담하게 써내려가며, 국민의 기본 인권을 박탈했던 유신정권의 불합리와 1976년 늦여름에 받았던 새마을교육을 에둘러 비판하고 잘못을 지적한다.
"우리는 기민한 단체행동에 신속히 순치되었습니다. 곤한 새벽잠이 나팔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깹니다. 깨어난 사람들은 5분 뒤 운동장 집합을 위하여 가장 빠른 방법으로 침구를 개키고 옷을 입습니다. (중략) 운동장에 모인 피교육생들은 인원보고를 마치고 정숙한 국기 게양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교육원 정문을 시작해서 아침 구보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대열 속에 끼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들 속에 나도 많은 날을 서 있었습니다." (1권 156쪽)
학과 시작 전 30분간의 명상은 대통령 어록을 듣는 시간이었는데 교육생들은 '유신의 쇠뇌' 시간이라고 불평했으나, 반복된 명상은 나라를 구하는 전사자라는 착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또 분담된 청소와 식당 줄서기 경쟁을 할 때는 전쟁을 치른 군대 생활보다 훨씬 고되었다며 힘들었던 당시 상황을 마음속 여인 '초라'에게 전한다.
월남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브루나이 공화국 공사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다리가 정상이 아니어서 구보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러나 저자는 농부가 밭을 탓하지 않듯 비정상인 자신의 신체구조를 책 어디에서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피로에 지쳐서 일석점호를 준비합니다. 교육생들은 관물을 정돈하고 청소를 한 후 열을 지어서 마룻바닥에 앉고, 실장은 문앞에서 사열 대기를 합니다. 일직 사령이 복도 앞에 당도하면 학생장이 '단결!' 하고 거수경례를 한 후 사령이 답례하면 '1976년 10월23일 11시 새마을 반 일석점호 인원보고! 총원 150명, 사고 무, 현재 150명 이상 일석점호 준비 끝!' 합니다." (1권 158쪽)
저자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로 시작하는 노래 경음악에 맞춰 기계처럼 움직여야 했던 새마을 교육을 획일적인 집체교육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구호를 앞세운 조국근대화가 지상목표였던 시절의 공무원이었으니 잠자는 국민의 정신을 개조한다는 새마을 교육을 어떤 수로도 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암울했던 시절 유신 제2기 출범을 그들 스스로가 자축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리 축복받지 못한 또 다른 출발이었습니다. 취임식장 단상 반대편 태극기 대가 무너져 내린 사건은 암울한 뒷날을 예견케 하는 불길한 징조였는지도 모릅니다." (1권 294쪽)
문 닫은 대학교는 얼어붙어 있었고, 유신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이 감시망을 피해 다니거나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이며 부마사태를 예고하던 시절, 유신 2기를 알리는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야누스의 눈빛들은 모두에게 말 없음을 강요했다.
저자는 그리운 여인 '초라'에게 인사권자나 피해자가 함께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황도 담담하게 전한다.
"1980년 초여름 어느 날 우리는 비를 맞으며 십여 명의 동료직원들 사표를 받으러 몰려다녔습니다. 공무원 사회 숙정작업의 일환으로 배정되어 온 인원을 정해진 날짜와 시간 내에 사표를 받아 보고하는 곤혹스럽고도 슬픈 상황이었습니다." (1권 26쪽)
숙정된 직원들은 10여 년 후 복권되었는데, 몇 명은 죽고 몇 명은 정년이 넘었더라며, 그들 가족의 한과 고통이 어떠했겠느냐고 묻는다. 사표를 내되 도서관의 고용원으로라도 근무케 해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던 P 사무관은 복직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쓰라림으로 남는다며, 못나고 비굴한 군상들이 아니라 착하고 선량한 이웃으로 봐달라고 호소한다.
저자 최 영은 가장 우리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임을 강조하며, 흘러가고 다가올 삶들을 토속적인 감각으로 관조하고 노래하고 기록했다며 유신시대와 5·6공의 격랑을 헤쳐 온 군산의 애달픔을 진솔하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감추어 주고 유보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아 괴로워했다며 안타까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 제1권은 그리운 여인 '초라'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을 맺는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제8회 방콕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에서 남북이 120분간의 경기 끝에 득점 없이 비겨 공동우승을 했으나, 주장들이 시상대에서 좋은 위치를 확보하려고 몸싸움을 벌이다 밑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미어지는 가슴으로 시청했다는 소식과 박정희 체육관 대통령 당선, 김대중 석방과 가택연금 소식 등을 전한다.
진솔하게 써내려간 글은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마음을 감동시킨다. 통곡과 분노, 환희와 애절함이 가슴에서 강을 이루고, 저자와 독자의 영혼이 혼재하여 애잔하게 흐른다. 이것이 70년대 이후 군산의 범람한 강일 수 있다. 우리는 그 강가에서 <은파에서 째보선창까지>를 통해 미완의 근대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제2권에서 6권까지는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예술 문화행사까지 날짜별로 기록하고, 직간접적으로 평가도 곁들이면서, 10·26 사건,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항쟁, 삼당 합당, 외환위기와 50년 만의 정권교체,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2월드컵 축구 4강, 노무현 대통령 당선 소식 등을 전한다. 특히 50년 만의 정권교체 이전을 "지긋지긋한 세월"로 표현한 대목은 6월의 은행잎이 되어버린 민주인사들의 혼령이 떠올라 옷깃을 여미게 한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년, 내 인생의 책' 응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