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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한 학부모가 '늙은 마녀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교육청 홈페이지에 장문의 호소문을 올려 지역에 큰 파문이 일었다.

당시 자모회에 참여하고 있는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초등학교 입학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고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 1학년 아이의 사소한 잘못에 뺨까지 때리며 가혹한 체벌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그 일은 교육청과 학교 측의 사과와 설득으로 게시글을 삭제하는 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가한 체벌치고는 너무 가혹한 훈육방법이 분명했다. 물론 해당 교사에 대한 징계나 사과 한마디 없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새학년 우리 아이가 순한(?) 담임 만나는 것이 소원이라고?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아이들이 전해주는 체벌의 공포와 학부모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문을 듣노라면 가혹한 체벌을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두려울 뿐이다. 혹시 당신도 학년이 바뀌면 오로지 (순하기로 소문난) 좋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담임이 되는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는 아닌가?

"자기네 아이 이번 담임은 어때?"
"호호호~! 운이 좋았어, 다른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인데 다행히 소문 들어보니 애들한테 잘해준다는데…."
"그래? 그런데, 우리 아이 담임은 소문 들어보니 아이들 많이 때리고 무섭다는데 걱정이야. 미리 인사라도 해야 할까 봐~"

당시 우리 아이가 1학년 때 한말이 문득 생각난다.

"내가 잘못해서 앞으로 불려나갔는데, 막 겁이 났어. 그런데, 선생님이 막 뭐라 하시면서 손으로 뺨때리고 머리를 때렸어…."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잘못한 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는 순간부터 이미 겁을 먹기 시작한다. 그런 겁에 질린 아이를 회초리도 아닌 손과 주먹으로 아이들을 때리며 교육하는 학교가 과연 누구를 위한 학교인지 의심스럽다.

얼마 전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진 과도한 체벌사례만 해도,

- "나랑 맞짱 뜰래?" 교사가 싸움 말리다 되레 폭행 (7/22)
- '혈우병 학생 폭행' 이어 "여교사가 책상 던져 제자 부상" (7/16)
- "초등생에 밥 늦게 먹는다고 체벌"…학부모단체 상담사례 (7/5)
- 도 넘은 체벌… 중학생 중환자실 입원 (5/31)

일부에서 주장하는 체벌타당론을 말하기 전에 이것은 분명히 일반적인 체벌의 범주를 벗어난 엄연한 폭력행위이다. 이런 체벌로는 학생을 절대 선도할 수 없다.

교사의 비상식적인 체벌도 학교폭력의 일부다. 교사 스스로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체벌이 행해진다면 분명 '체벌'이 아닌 '폭력'이다. 비슷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관련자 문책과 재발 방지를 외치지만, 과도한 체벌과 그로 인해 공포에 떠는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밀걸레 자루는 기본... 정체불명의 몽둥이에 슬리퍼까지

기성세대중 체벌의 범주를 벗어난 폭력의 공포를 겪지 않은 이가 과연 있을까? 어쩌면 우리 학창시절에 늘 보아왔던 일상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O대가리' '조폭OO' '이무기' '난쟁이 꼰대' '이소룡' '날으는 학주(학생주임)' '물안개' '게슈타포' '죠스' '피바다'....

조직폭력배의 조직명이 아니다. 무자비한 체벌을 가했던 공포대상의 교사 별명 중의 일부이다. 평소 아이들을 대하는 행동에 걸맞은 별명답게 그들은 정말 무자비했다. 이미 교육자이기를 포기한 행동들이었다.

 20~30년전에야 밀걸레 자루도 부족해 슬리퍼까지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곤 했지만, 지금도 그런 선생님이 있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약자인 아이들을 향한 어떤 폭력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20~30년전에야 밀걸레 자루도 부족해 슬리퍼까지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곤 했지만, 지금도 그런 선생님이 있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약자인 아이들을 향한 어떤 폭력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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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로 뺨을 실컷 맞아 며칠 동안 신발자국이 얼굴에 선명했고, 정체불명의 몽둥이로 허벅지를 맞아 피가 배겨 바지가 살점에 붙어버리는 일은 예사였다. 여학생에게까지 엉덩이를 밀걸레 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때렸고, 종아리를 얼마나 때렸는지 멍자국이 가시질 않아 치마를 입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체벌 공포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폭력에 대한 주된 기억은 군대가 아니라 학교였음을 확신하고도 남는다. 나이 40이 넘은 지금, 직접 피해자가 아닌 그 장면을 보기만 했지만 엄청난 후유증으로 남아 있다. 무시무시했던 교실안의 기억을 떠 올리는 것조차 몸서리쳐진다.

최근에 불거진 서울의 한 초등학교의 과도한 체벌로 문제가 된 교사는 학생들을 때리면 바람에 쓰러지듯 한다고 해서 '오장풍'이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그때도 마찬가지였다.수업 시작과 동시에 씩씩거리며 "너 나와"라는 호령과 동시에 큼지막한 두 손으로 얼굴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강타했던 중학교 시절의 '난쟁이 꼰대'를 잊을 수 없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선생님에게 성의 없이 인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중학교 1학년짜리를 불러내어 입에 담지 못할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당구채로 엉덩이를 수십 대 갈겨대던 '이무기. 누가 보더라도 교육적 목적의 '사랑의 매'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무차별 폭력이었다. 같이 지나갔던 은행 지점장 아들은 불러 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사랑 없이 '매'만 드는 훈육현실... 대책은 '체벌금지'

온몸이 얼얼하게 아픈 것은 그나마 참을 수 있었다. 대신 어린 나이에 뭔가 심한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은 결코 지울 수 없다. 또, 그 폭력을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공포는 얼마나 컸던가? 무자비한 폭력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었던 그 아이들이 벌써 기성세대가 되었다. 기성세대의 삐뚤어진 잠재적 폭력의식은 어쩌면 키 작은 꼰대와 이무기의 역할이 한몫 하지는 않았을까?

교사라는 명분과 명목으로 가장 크게 하는 잘못이 바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다. 사실 한 교실에 3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데 어찌 그 아이들이 다 똑같을 수 있는가. 정말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산란한 아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하지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체벌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도 엄격한 징계 시스템으로 훈육할 수 있는 방법은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얼마든지 있다. 말로만 전인교육을 외치며 '요즘 애들은 때리지 않으면 말을 안 들어!'라는 생각으로 교단에 설 생각이라면 과감하게 교사직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한다.

일각에서는 체벌 전면 금지보다는 제한적 체벌은 허용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사랑의 매'의 기준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어디까지가 체벌이고 어디까지가 폭력이란 말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 9월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생활규정 가운데 체벌금지를 권고한지 벌써 8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체벌에 관한 찬반논의만 있는 사이, 체벌과 관련된 진정과 상담만 줄을 잇고 있다. 정말 체벌금지 대안은 찾고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약자인 아이들을 향한 어떤 폭력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폭력을 눈앞에 보며 공포에 떠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부정적 언사와 체벌로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 볼 일이다. 체벌이 아닌 학생의 미래를 걱정하는 진심어린 교사상이 그립다.

"아동폭력은 예방될 수 있으며 폭력 없이도 잘 훈육할 수 있다"

유엔으로부터 아동폭력(체벌)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아 2003년부터 3년간 조사를 실시한 파울로 세르히오 파네이로 박사의 결론이다.


#체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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