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어린왕자>를 동화 속 눈같이 순수한 왕자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장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로서 이 책을 단연 으뜸으로 꼽는다. 하지만 세계명작인 <어린왕자> 책을 마냥 순수함으로만 바라보기엔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읽는 나이마다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어린왕자>는 단연, 명품 중에서도 명품책임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보았던,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집어 들었던 <어린왕자> 이야기는 마냥 순수한 어린 아이의 이야기만은 아니였다. 그것은 가장 깊고 찐한 사랑이야기임이 분명했다. 굳이 구체화시켜서 이야기한다면 아주 순수한 어린소년의 사랑이야기 말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 동화책이라고 집어들었던 <어린왕자>의 내용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스무살이 넘어간 지금 그 책을 펴넘기었을때 어찌나 나의 심장을 콕콕 쑤셔대는지 나는 이제야 어린왕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어린왕자> 중 아주 유명한 말이 있다.
"넌 나에게 아직은 수 없이 많은 다른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널 필요로 하지 않아. 너역시 날 필요로 하지 않고. 나도 너에게는 수없이 많은 다른 여우들과 조금도 다를게 없는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 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꺼고…"바로 그것은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에는 무한히 많은 생물이 있고 그것은 모두 같기에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 때 수많은 종(種)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로서 우리에게 각인되어지는 것이다. 어린시절 읽었던 <어린왕자> 이야기는 이처럼 그저 다른 어떤 책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책은 그저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책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그제야 내가 이 책에 길들여 질 수 있을 만한 준비가 됐음을 깨달았다.
책 속에 엄청난 큰 의미가 함축되어 담겨 있고 유구한 역사가 담겨 있다 할지라도 읽는 독자가 그 마음을 공감할 수 없다면, 그 역사를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그 책의 내용은 그저그런 수많은 책들 중의 한 권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의 마음을 독자가 이미 공감하고, 그 마음을 뼈져리게 자신의 경험처럼 느끼게 된다면, 그 순간 그 책은 기존의 책들을 넘어선 일반적인 여느 책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로서 독자들에게 읽혀지게 된다.
대개 베스트셀러인 책들을 살펴보게 되면 흔히 유익한 정보를 가져다 주는 난해하거나 까다로운 책이기보다는 독자가 공감할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을 가진 책들이다. 독자는 스스로 그것을 공감할 수 있을 때에 가장 좋은 책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경험을 안고 살아간다. 행복하거나 혹은 잔혹하거나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혼란, 아픔, 상처는 이들의 인생 속 하나의 무늬로 자리잡게 되고, 그 흔적을 통해서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을만한 안목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나는 <어린왕자>를 읽으며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그것은 많은 시간이 지나며 겪어왔던 나의 경험의 소산이요, 응집이었다. 어린왕자가 장미꽃과 함께 하며 이야기함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수많은 장미 꽃들 중에 그 장미꽃이 어린왕자에게 특별한 의미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에 어린왕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많은 시간과 추억들이 지나온 시간에 버무러져 내 마음을 길들인 것이다.
얼마나 주옥 같은 말들이 이 책에 가득 담겨 있는지, 밀밭에 흩날리는 바람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어느날 누군가가 아련히 생각이 날 때쯤, 이 책을 읽으면 비로소 이 문장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참 슬프다. 여기저기 신문기사의 제목들만 봐도 여기저기 탄식과 고함소리가 절로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슬프다고 해서 사랑마저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다. 요즘 같이 뼈아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만이 위로가 된다. 마음이 시리고 코끝까지 시린 이 가을, <어린왕자> 책 한권 꺼내어 우리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을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