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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일)

일요일 아침, 여수시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에 하나인 오동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여수시 자산공원에서 오동도까지 돌로 축대를 쌓은 제방이 연결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그 제방 위를 걷거나 순환 열차를 타고서 오동도까지 들어간다.

오동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식물원이다. 온실에 갇힌 인공 식물원이 아니라, 태양광 아래 마음껏 가지를 뻗은 나무들이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자연 상태의 식물원이다. 앞서 지나온 완도항 앞의 주도나 마량항 앞의 까막섬과도 같다. 그때 섬 전체가 까맣게 숲을 형성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소망을 여기서 풀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오동도까지 건너갈 수 있다.

섬 위로 산책로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퍼져 있다. 머리 위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어 하늘을 올려다보기 힘들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마치 나뭇가지 아래로 검은 터널을 뚫어 놓은 것 같다. 산책로 여기저기에 갯바위로 내려가는 갈래길이 열려 있다.

갯바위 위에 올라서서 절벽 위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들을 올려다보는데, 그 모습이 또 장관이다. 다음 산책로에서는 또 어떤 풍경이 나타날지 궁금증을 억누르기 힘들다. 오동도는 섬을 뒤덮은 나무숲뿐만 아니라 섬 주위를 돌아가는 갯바위 또한 그냥 소홀히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오동도 대나무 숲
오동도 대나무 숲 ⓒ 성낙선

 오동도 들어가는 길. 오동도 쪽에서 바라본 장면.
오동도 들어가는 길. 오동도 쪽에서 바라본 장면. ⓒ 성낙선

 오동도 갯바위 풍경
오동도 갯바위 풍경 ⓒ 성낙선

오동도를 나와서 해안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독특한 모양의 터널이 나온다. 마래터널이다. 터널 앞 도로는 2차선인데, 터널 입구는 차 한 대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비좁다. 그 터널 오른쪽으로 기찻길이 나 있고, 왼쪽 언덕 위로는 지금 한창 또 다른 터널을 뚫고 있다.

달리 돌아갈 길이 없다. 이 길로 어떻게 지나다니라는 건지 의아하다. 유심히 살펴보니, 터널 중간 중간 차들이 한쪽으로 비켜서서 대기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는 모양이다. 터널 안이 꽤 어둡다. 먼저 자전거 전조등과 후미등을 켠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막상 터널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까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길이 640m. 별다른 시설 없이, 터널이 그대로 바위를 뚫고 지나갔다.

이 터널은 80여 년 전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그때 당시 순전히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터널 표면이 울퉁불퉁한 게 바위를 뚫던 당시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폭이 좁은 대신, 천장이 요즘 만들어지는 터널 못지않게 높다. 이 터널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마래터널
마래터널 ⓒ 성낙선

터널을 다 빠져나와서는 얼마 안 가 또 하나 의외의 현장이 나온다. 도로변 산 밑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검은 비석이 하나 서 있다. 그 앞에 '여순사건 62주기 추모 위령제' 문구를 적은 현수막이 걸려 있고, 옆에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이곳은 여순사건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여순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이곳에서 '부역 혐의'를 받고 있던 '수백 명'의 민간인들이 집단 학살됐다. 이 외진 곳까지 끌려와서는 별다른 소명 절차도 없이 죽어, 한꺼번에 매장이 되었다. 그 후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들의 억울함이 그대로 어두운 땅 속에 묻혀 있다.

학살이 자행된 뒤로는 한동안 사람들이 이 앞을 지나다니기를 꺼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검은 위령비 앞으로 수시로 자동차와 기차가 지나다닌다. 더 이상 그 일의 진상을 땅속에 묻어둘 이유가 없다. 마래터널을 지나가는 길에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관통하는 현대사의 한 면이 잘 드러나 있다. 그놈의 현대사가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가고 있다.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 성낙선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앞을 지나가는 도로.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앞을 지나가는 도로. ⓒ 성낙선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씻어주려는 듯 만성리해수욕장에 맑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하얀 백사장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무척 따사롭다. 이 해수욕장은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이곳 만성리해수욕장을 이색적인 해수욕장 중에 하나로 꼽을 만하다.

처음에는 그냥 모래사장이 있는 평범한 해수욕장 중에 하나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해수욕장 중간 지점을 지나면서 어느새 하얀 백사장이 검은 몽돌 해변으로 바뀌어 있다. 해변이 절반은 검은 모래이고 절반은 몽돌인 특이한 해수욕장이다. 해변이 어떻게 해서 이런 모양을 갖추게 된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만성리해수욕장
만성리해수욕장 ⓒ 성낙선

이 해안 길을 따라 두 개의 해수욕장이 더 있다. 가능하면 이들 해수욕장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가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들 해수욕장 뒤로는 '여수산업단지' 중심부를 지나가는 힘들고 괴로운 고행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갓길도 없는 도로 위로 대형차들이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주변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고 공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데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 가히 최악의 조건을 갖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여수산업단지 진입로.
여수산업단지 진입로. ⓒ 성낙선

여수산업단지를 지나가는 길에 묘도 선착장을 들른다. 묘도는 말만 섬이지, 앞으로 섬 구실을 하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섬이다. 묘도 위로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한창 건설 중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묘도 선착장 역시 다리가 건설되는 사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묘도를 지나가는 이순신대교 건설 현장.
묘도를 지나가는 이순신대교 건설 현장. ⓒ 성낙선

 조만간 사라질 묘도 선착장.
조만간 사라질 묘도 선착장. ⓒ 성낙선

묘도는 그나마 섬이라는 겉모습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게 됐지만, 이 부근에 있는 다른 섬들은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이미 육지가 됐거나 앞으로 육지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율촌공단이 들어서면서 이미 육지가 된 섬, 장도는 특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태종), 이 섬에 한때 코끼리가 살았던 적이 있다.

일본이 조선에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했는데, 이놈이 먹성이 너무 좋은 데다 성질도 그렇게 고운 편이 아니어서 사육하기가 무척 곤란했던 모양이다. 조선 조정에서는 꽤 난처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보낸 귀한 손님을 박대했다는 말이 새나가면 외교적 결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코끼리가 사육사를 밟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이 코끼리를 살인죄로 멀리 유배를 보내는데 그 유배지가 바로 장도였다. 짐작컨대 코끼리 유배 보내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코끼리를 배에 태울 수 없어 양 옆에 배를 대고 헤엄쳐 건너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코끼리가 유배를 온 뒤로 장도에서는 난리가 났다. 끼니마다 엄청난 양의 식사를 대령해야 하고, 까탈을 부리는 그 성질을 받아주느라 섬 주민들의 허리가 휠 수밖에 없었다. 이 코끼리, 결국 섬에서 굶어 죽는다.

단순히 웃고 넘기기에는 역사 속 배경에 숨어 있는 사실들이 상당히 무거운 면이 있다. 코끼리 하나 감당하기 어려웠던 현실이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 같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장도가 육지화하면서 코끼리와 관련한 섬의 역사 역시, 섬과 함께 산업단지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외에도 이 일대의 바다에는 비극의 섬, 삼간도가 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남부럽지 않은 부자 섬으로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지금은 사방이 높은 제방으로 가로막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섬이 되었다. 이미 섬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삼간도는 앞으로 산업단지 부지가 확장되면, 바로 육지가 될 예정이다.

목포에서는 '삼학도'가 섬으로 복원이 되고 있는 마당에, 광양에서는 '삼간도'가 육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곳에서, 섬 주민들이 오랜 세월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던 바다와 갯벌이 사라지는 과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산업단지가 그 모든 걸 깨끗이 집어삼키는 광경을 직접 목도할 수 있다.

 제방으로 가로막힌 삼간도 중 일간도.
제방으로 가로막힌 삼간도 중 일간도. ⓒ 성낙선

해가 질 무렵 겨우 산업단지를 벗어나 광양시로 진입한다. 그런데 광양시 외곽에서 하루를 머문다는 게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시내로 직행한다. 아마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올라탄 게 아닌가 싶다. 일반국도 같으면 중간에 갈림길이 여러 개 나왔을 터인데, 이건 아무리 가도 다른 길이 나오질 않는다.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애초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차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지나가는 걸로 봐서는 그건 또 아니다 싶다. '초남대교' 푯말이 서 있는 다리를 지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겨우 광양항으로 빠져나온다. 그 사이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는다. 식은땀이다. 그 도로를 다 빠져나오고 나서도,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지극히 혼란스러운 밤이다. 여행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험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89km, 총 누적거리는 3181km다. 여기까지가 전라남도다. 전라남도로 들어선 지 어언 20일, 이제 겨우 전라남도를 벗어나게 됐다. 전라남도는 엄청난 길이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해안선만 놓고 보면, 전라남도처럼 큰 땅도 없다.


#오동도#마래터널#만성리해수욕장#삼간도#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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