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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모 전 회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양윤모 전 회장이 감옥에서 나온 후 제주대학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 양윤모 전 회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양윤모 전 회장이 감옥에서 나온 후 제주대학병원에 입원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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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이 감옥에서 출소한 후 입원해 있는 제주대학병원을 찾았다. 4월 6일에 경찰에 강제로 연행된 이래, 6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곡기를 끊었던 양 전 회장의 건강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병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언론이 죽었다고 분노했던 양 전 회장이다. 최근 들어 일신상의 여러 가지 이유로 강정마을 주민들과 양 전 회장의 고달픈 투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내 발이 저릴 수밖에.

필자가 병실에 들어서니 그는 침대에 앉아서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가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았다. "귀농했다던데, 농사는 잘 되나"며 안부를 물어본 후에 "나도 빨리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영화인 양윤모는 필자에게 제주도에 '농사짓는 영화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농사를 짓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했다. 땀이 영글어 결실을 맺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서둘러도 때가 되기 전에는 소출이 없는 것도 그렇다고 했다. 손수 농사를 지어본 학생이라면 영화도 제대로 만들 자질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나도 농촌으로 들어가서 영화학교를 만들 거야. 내가 이 나이에 영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데 해군기지가 문제야. 이거 빨리 철수시켜야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여."

벽에 붙은 사진들 양전회장의 머릿속에는 강정마을에 대한 걱정 뿐인 듯 했다. 양전회장은 입원 중에도 병실 벽에 강정마을 사진들을 붙여놓고 틈날 때마다 쳐다보고 있다.
▲ 벽에 붙은 사진들 양전회장의 머릿속에는 강정마을에 대한 걱정 뿐인 듯 했다. 양전회장은 입원 중에도 병실 벽에 강정마을 사진들을 붙여놓고 틈날 때마다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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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침대에 앉으면 마주하는 정면의 벽에는 강정마을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강정마을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으니, 사진만이라도 봐야 한다는 거다. 필자가 병실로 들어설 때 정면을 주시하던 것도, 강정마을의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6월 1일 공판에서 양 전 회장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젊은 여성 판사는 그에게 "피고는 법정에서 사람의 신체와 생명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밝혔는데, 그 신체와 생명에는 피고의 것도 포함됨을 유념하라"고 당부했다. 건강을 위해서 단식을 중단하고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60일 가까이 단식을 이어왔던지라, 그의 소화기관 상태로는 지금 물밖에 마실 수가 없다. 양 전 회장은 시간이 나면 건강과 관련된 책을 본다. 오랜 단식으로 기운이 다 빠져 있는 상태라, 양 전 회장 스스로도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눈치다.

"감옥에서 나올 때 누가 내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을 봤는데, 정말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감옥에서 내가 그렇게 망가졌나 싶더라고. 애들이 서울에서 내려와서는 내 처참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울더라고. 그런데 병원 검사를 받아보니 심장박동도 호흡도 모든 게 정상이라는 거야. 나도 내 몸의 상태를 보고 놀랐다니까. 강정마을에서 지낼 때, 내 몸이  미리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비축해 놨나봐."

그는 여전히 머릿속에는 강정마을에 대한 걱정뿐이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의논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도 "건강을 위해서 말을 아끼라"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느라고 오는 전화만 받는다. 하루빨리 퇴원해서 그가 2년 동안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지내왔던 '중덕사'(그가 강정마을 해안에서 생활했던 천막을 사람들은 '중덕사'라 부른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출감하는 날 6월 1일, 그가 재판을 받고 출소하던 순간이다. 마을 주민들이 출소하는 그를 감격스럽게 맞았다. 그는 당시 "강정마을은 지금 평화롭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아무도 "예"라고 답하지 못했다.
▲ 출감하는 날 6월 1일, 그가 재판을 받고 출소하던 순간이다. 마을 주민들이 출소하는 그를 감격스럽게 맞았다. 그는 당시 "강정마을은 지금 평화롭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아무도 "예"라고 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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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퇴원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더니,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며 싸우는 분들과 의논하며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해군기지 반대에 대한 그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했다.

"방법이야 어찌 되든 해군기지를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내 의지는 단식을 통해서 더 확고해졌어. 외부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지지해줘서 그런지 몰라도 마을 주민들도 다시 싸울 의지를 되찾았어. 요즘 마을 주민들과 통화하면서도 오히려 내가 힘을 얻게 되었어."

몇 해 전 필자와 인터뷰하면서 양 전 회장은 "강정마을은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라고 했다. 여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마을에는 지금도 해군기지 공사가  한 평씩 두 평씩 진행되고 있고, 그 진행을 막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6월 1일 공판을 받고 풀려날 때, 양 전 회장은 "지금 강정은 평화롭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아무도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난 그의 출소 후의 행보를 당시의 선문답을 듣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강정마을#양윤모#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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