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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상비약 슈퍼 판매와 관련, "논의의 본질인 국민 건강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은 형국"이라며 "정치권과 약사회는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21일 <오마이뉴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상비약 슈퍼 판매와 관련, "논의의 본질인 국민 건강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은 형국"이라며 "정치권과 약사회는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선대식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휴대전화'를 가진 이를 꼽으라면 단연 김태현(46)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일 것이다. 김태현 팀장은 "하루 업무의 4/5를 전화 통화하는 데 쓴다"고 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첫 인사를 나눌 때도 그는 통화중이었다. 인터뷰 중간에도 전화벨이 울렸다.

김태현 팀장은 "퇴근 시간이 대중없고, 주말에도 휴식과 업무의 구분이 없다"고 했다. 그만큼 바쁘다. 'A부터 Z까지' 알려달라는 기자의 전화부터 거센 항의를 쏟아내는 약사들까지, 그가 상대해야 사람들은 많고 다양하다. 김태현 팀장이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논란의 한복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얘기다.

경실련은 지난 2006년부터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주장해 왔다. 지난 3월부터 지역 경실련을 통해 이러한 논의를 확산 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일 보건복지부가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허용하지 않은 점을 질책하자,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대한약사회의 격렬한 반발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문제는 현재의 논의구조가 문제 해결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일부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결정했지만, 이를 반대하는 약사회는 오히려 전문의약품 479개 품목을 의사처방 없이 약국에서 팔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 적당한 봉합을 원하는 눈치다.

김태현 팀장은 "논의의 본질인 국민 건강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은 형국"이라며 "정치권과 약사회는 국민을 무시하지 말고, 정말로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김태현 팀장과 나눈 인터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미 1000곳의 특수장소서 약 판매... 부작용 우려 적다"

- 상비약 슈퍼 판매는 오래 전부터 제기된 이슈다.
"1999년 의약분업 당시에 논란이 커졌다. 당시 의료개혁위원회에서도 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건의했지만, 당시 국민의 정부는 의사와 약사 간의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이 사안을 도입하기가 부담스러워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논란이 대두됐지만, 복지부는 약사회 눈치만 봤다."

- 약사회는 심야영업 약국 등을 통해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약사회는 심야약국 56곳을 운영한다 했는데, 실제로는 48곳만 운영되고 있다. 전국 약국(2만1096곳)의 0.2%다. 이마저도 서울·경기에 집중돼 있고 강원도에는 한 곳도 없다. 서울 강남역 주변에 심야약국 3곳이 몰려 있다. 정작 주거지역에는 몇 군데 안 된다. 밤에 배 아프고 열났을 때 상비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해결되지 못했다."

- 상비약 슈퍼판매가 이뤄지면, 동네 약국이 망해 국민 편의가 줄어든다는 주장이 있다.
"이미 동네약국은 많이 사라졌다. 병원 주변에 있는 문전 약국이 대부분이다. 상비약 슈퍼 판매를 막는다고 동네 약국을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동네 약국 살리기는 조제 수가 재조정이나 다른 지원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 약 오남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약국의 95%가 약을 팔 때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처방전을 들고 가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다. 또한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나 선박 등 전국 1000곳의 특수장소에서 의약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도 안정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슈퍼에서 팔았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김태현 팀장은 기자에게 "집에 상비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두통약 등이 있다"고 하자, 그는 "두통약을 먹을 때, 의사나 약사한테 전화하느냐?"고 되물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김 팀장은 "이미 약사의 도움 없이 두통약을 먹고 있다, 이런 두통약을 굳이 약국에 가서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상비약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됐고, 자가치료하는 약들이다. 상비약을 언제든 집 근처 슈퍼에서 팔게 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포장 단위와 함량을 줄이고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히 제공하면 된다. 이러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한 문제지, '오남용 우려가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이미 국민 건강권은 뒷전, 밥그릇 싸움과 표 계산만 남아"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장.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팀장. ⓒ 선대식
현재 논란에서 국민 건강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약사회는 상비약 슈퍼 판매에 대해 '절대 반대'를 외치면서도 일반의약품을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태현 팀장은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등 의약품 재분류는 꼭 필요하다"면서도 "상비약 슈퍼 판매를 볼모를 잡고 이런 주장을 내놓는 것은 이중 잣대"라고 일침을 가했다.

- 상비약 슈퍼 판매가 종합편성채널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다.
"과도한 주장이다. 현재 일반 의약품은 광고가 가능하다. 상비약 슈퍼 판매와 광고 확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약사회의 주장대로 479개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게 되면 종편이 바라던 광고 시장 확대가 이뤄진다. 약사들 스스로가 '약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셈이다."

- 상비약 슈퍼 판매는 기획재정부에서 강하게 요구하는 사안이다. 결국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실련은 의료 민영화 얘기가 나오기도 전에, 자가치료 확대와 국민편의를 위해 상비약을 슈퍼에서 판매하자는 주장을 했다. 겉보기에 의료 민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해서, 이들의 주장에 포섭된다는 말은 과도한 것이다."

- 상비약 슈퍼 판매가 의약품 가격 인하에 영향을 줄 수 있나?
"외국의 경우, 의약품이 슈퍼에서 판매되면 가격 경쟁이 이뤄져서 가격이 떨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이를 권고한 바 있다.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다소비 의약품의 가격 편차가 최대 3배에 달했다. 약국 독점 판매로 가격이 임의대로 결정되는 탓이다. 또한 국민들은 가벼운 증상에 병원이나 약국에 가지 않아도 되니,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다."

- 복지부는 일부 의약품을 슈퍼에서 팔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약이 약국 바깥에서 판매되는 첫 단추를 꿰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약사회를 설득하고 의견을 관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22일 복지부는 감기약과 해열제 등을 편의점에서 팔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 약사들 눈치만 보고 있다"

김태현 팀장은 상비약 슈퍼 판매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빠지게 된 점을 우려했다. 복지부가 감기약이나 해열제 등의 슈퍼 판매를 추진한다 해도 관련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4월 6일 국회의원 전원에게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를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지금까지 답변을 준 국회의원이 10명도 안 된다. 알고 보니, 약사회가 의원들한테 경실련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자료를 보내는 등 압력을 가했다. 약사들은 지역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로, 국회의원 후원도 잘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들이 약사회 눈치를 보고 있다."

보수단체들이 상비약 슈퍼 판매 논란에 개입한 것도 표 계산 때문이라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소비자시민모임을 제외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들이 올해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해 활동을 하고 있다"며 "선거를 앞두고 일종의 이명박 대통령의 사조직으로서 대중정치조직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현 팀장은 "정부나 국회는 정책을 결정할 때 국민을 염두에 두는 게 아니라 무시하고 바보로 알고 있다, 표 계산만 하고 있다"며 "일부 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한다고 했지만 논의 과정을 보면 그 진정성을 믿기가 어렵다, 진지한 논의 끝에 결론이 날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전했다.


#김태현#상비약 슈퍼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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