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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코쿠대학 국제문화학부 아시아문화(담당 서광휘 교수, 사진 왼쪽) 수업시간에 고베대학 문학부 도노하시아키호(百橋明穗, 사진 오른쪽)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류코쿠대학 국제문화학부 아시아문화(담당 서광휘 교수, 사진 왼쪽) 수업시간에 고베대학 문학부 도노하시아키호(百橋明穗, 사진 오른쪽)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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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일본 류코쿠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는 아시아문화(담당 서광휘 교수) 수업시간에 아시아 불교미술을 테마로 고베대학 문학부 도노하시 아키호(百橋明穗)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습니다. 도노하시 교수는 오랫동안 일본 불교미술 가운데 둔황석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오신 분입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기독교 문화유적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되어 기독교 문화가 뿌리 깊게 확산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이곳저곳에서 불교 사원인 절이나 불교 관련 유물이나 유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에 일찍이 불교가 전파되어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둔황 막고굴 254 호 굴에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사신사호도(捨身飼虎?)」또는 「시신문게도(施身聞偈?)」라고 하는 것으로 석가의 전생담입니다. 석가가 굶주린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서 절벽에서 몸을 떨어뜨려 배고픈 호랑이를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막고굴에 있는 이 그림은 나라 호류지(法隆寺)의 옥충주자(玉蟲廚子)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앞 오른쪽에 석가가 쓰러져 있습니다.
 둔황 막고굴 254 호 굴에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사신사호도(捨身飼虎?)」또는 「시신문게도(施身聞偈?)」라고 하는 것으로 석가의 전생담입니다. 석가가 굶주린 호랑이를 구하기 위해서 절벽에서 몸을 떨어뜨려 배고픈 호랑이를 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막고굴에 있는 이 그림은 나라 호류지(法隆寺)의 옥충주자(玉蟲廚子)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앞 오른쪽에 석가가 쓰러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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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에 불교가 일찍이 전해져 많은 불교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있지만 이 가운데 근본적이고 빼어난 것을 손꼽는다면 둔황석굴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둔황은 중국 간쑤성 서쪽에 자리 잡은 실크로드의 요충이며 동서양 문물이 만나는 접점이었습니다.

오래 전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간다라지방에서 유럽문화와 만나면서 불상이나 불화 등 불교 예술품으로 표현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다시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에 전해집니다. 이때 둔황은 무역 상인이나 불교 구법승 등이 쉬어가는 사막의 오아시스였습니다.

둔황에서 2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막고굴이 있습니다. 이 막고굴은 서기 366년  낙준(樂樽)스님이 명사산(鳴砂山)과 삼위산(三危山)에서 이상한 빛이 서려 있음을 깨닫고 돌 벽을 파서 굴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 뒤 14 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많은 승려와 많은 기술자들이 오고 가면서 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들이 보고 듣거나 깨달은 불교의 세계와 진리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청 강연에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초청 강연에 학생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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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은 천 년 동안 천 개가 넘는 굴을 파서 부처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놓거나 진흙으로 소조상을 만들어서 표현하거나 돌을 파서 방을 만들어 다시 그 안에 부처와 보살 등을 새겨 놓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처의 전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불전도(佛傳圖)라고 하고,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을 본생도(本生圖, Jataka)라고 하고 그밖에 부처의 설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 이야기를 비유도(譬喩圖, Avadana)라고 합니다. 

둔황 막고굴에 있는 불교 예술품들은 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걸작입니다. 천 년이나 된 것도 있고 도중에 기존의 것 위에 다시 그리기도 하고 새로 그리기도 하면서 변화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재해 등으로 지형이 바뀌거나 지진 등으로 굴이 무너져 다시 굴을 파서 그림을 그리거나 불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둔황 막고굴에 있는 여러 불교 그림들은 인도와 간다라에서 시작하여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 불교 예술이 전해지기 이전의 그림들입니다. 따라서 둔황 막고굴의 불교 예술품들은 한국, 중국, 일본 불교예술의 기본이 되는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당나라 때에는 당나라에서 만들어진 여러 작품들이 이 둔황을 통해서 서역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둔황은 사막의 오아시스이면서 동서양 불교문화의 교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예술품들은 처음 1900년 프랑스 사람에 의해 발견된 이후 프랑스, 러시아, 일본, 영국, 독일 등 여러 제국주의의 약탈로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둔황 막고굴 안에는 불교 유물뿐만 아니라 많은 문서와 책들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신라 때 혜초스님이 남기신 <왕오천축국전>이 17번 굴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둔황 막고굴에 있는 여러 그림들입니다. 왼쪽부터 난타출가인연(難陀出家因緣, 254호 굴), 마가살타본생(摩訶薩?本生, 428 호 굴), 이불병좌도(二佛竝座圖, 303 호 굴)입니다.
 둔황 막고굴에 있는 여러 그림들입니다. 왼쪽부터 난타출가인연(難陀出家因緣, 254호 굴), 마가살타본생(摩訶薩?本生, 428 호 굴), 이불병좌도(二佛竝座圖, 303 호 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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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 百橋明穗,「敦煌壁画における大乗経変の出現」『芸術学フォ-ラム』4東洋の美術 p31-46 勁草書房 2006年7月25日



#둔황 막고굴#왕오천축국전#불교 미술#아시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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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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