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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 돈 때문에 목숨을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바로 무상의료다. 영국은 국가가 재정을 조달하고 의료 서비스를 관리하는 대표적인 무상의료의 나라다. 의료 서비스의 질과 재정 문제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60년 넘게 무상의료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의료 불평등과 의료시장 민영화 등의 한국사회 의료 문제의 해법을 영국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글 : 송주민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국가보건서비스방식(National Health Service, 이하 NHS)

사회보험방식(National Health Insurance, 이하 NHI)

민간보험방식(Consumer Sovereignty Model, 이하 CSM)

 

OECD가 분류하는 세계의 의료보장제도 3가지다. <오마이뉴스> 특별 취재팀이 방문 중인 영국을 비롯한 스웨덴, 이탈리아 등은 NHS 방식을 취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한국 등은 대표적인 NHI 운영 국가다. 미국은 CSM의 전형인 국가로 유명하다. 

 

의료보장의 두축 NHS와 NHI... 미국식은 안 쳐준다

 

NHS는 국가가 직접 의료제도를 관장한다. 일반 조세로 재원을 조달해 모든 국민에게 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 책임을 강조한 제도다. NHI는 의료 서비스 이용에 대한 개인 책임을 전제하되, 시장이 아닌 사회화된 보험 재원 마련을 통해 공공성을 기하는 형식을 띤다. CSM은 사회정책적인 제도로 보기는 힘들고, 공적인 보장 시스템 없이 민간 영역을 중심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시장주의적인 형태다.

 

영국에 와서 살펴보니, 전문가든 시민이든 할 것 없이 미국과 같은 민간 보험 중심 의료보장은 아예 '논외'로 치는 분위기였다. 연구자들은 미국식을 '예외'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시민들은 의료 서비스를 정부로부터 제공받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NHS에 불만을 토로하던 미국인 유학생마저도 "미국은 너무 극단적인 경우"라고 지적했다. 실제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는 대표적인 분야인 보건의료마저도 시장을 중심으로 설계한 미국식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엔지니어링디자인센터에서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하고 있는 에바-마리아 헴프(Eva-Maria Hempe, 박사과정 연구원)가 8일 케임브리지에서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엔지니어링디자인센터에서 보건의료체계를 연구하고 있는 에바-마리아 헴프(Eva-Maria Hempe, 박사과정 연구원)가 8일 케임브리지에서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 8일(현지시각)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에바-마리아 헴프(Eva-Maria Hempe, 박사과정 연구원)씨는 독일인이다. 독일은 프랑스와 더불어 NHI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그는 독일과 영국 시스템에 대해 "매우 다르다"고 평했다.  

 

같은 날 만난 애널린 콘클린(Annalijn Conklin, 유럽 RAND 의료서비스 분석전문가)씨는 캐나다 출신이다. 캐나다는 국가보건서비스(NHS)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 주에서는 사회보험(NHI)을 도입하고 있다. 

 

두 제도는 어떻게 다르고 장단점은 무엇일까? 모국에서 NHI를 경험했고 현재는 영국에서 NHS를 중심으로 연구 중인 케임브리지의 두 연구자와의 대화, 그리고 'NHS만' 경험한 영국인과 'NHI도' 이용해본 영국의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발견한 양자 간의 차이를 전한다. 

 

[NHS, 이래서 좋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누구나 인정하는 NHS의 장점은 아무도 차별 않고 누구나 소외 없이 모두를 포괄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영국인들은 NHS에 대해 물을 때마다 첫 반응이 "Free medical service!(무상의료)"라는 말이었다. 런던 그린공원에서 만난 제임스(James)씨는 "다른 나라에선 돈을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모든 사람이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헴프씨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만 해도 원칙적으론 직업이나 돈이 없으면 치료받을 수 없는 제도"라며 "(민간보험보다 많이 느슨하지만) 평상시의 '기여'를 전제로 하는 사회보험에 비해, NHS는 조건 없이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평등 측면에선 앞선 제도"라고 지적했다. 콘클린씨도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장하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가 많은 사회보험에 비해, NHS는 차별 없는 보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유럽 RAND의 의료서비스 분석전문가인 애널린 콘클린(Annalijn Conklin)씨. 그는 "전체적인 의료비 지출 대비 효과는 NHS가 뛰어나다"고 단언했다.
유럽 RAND의 의료서비스 분석전문가인 애널린 콘클린(Annalijn Conklin)씨. 그는 "전체적인 의료비 지출 대비 효과는 NHS가 뛰어나다"고 단언했다. ⓒ 남소연

 

의료비 낭비를 막고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NHS의 장점이다. 콘클린씨는 "전체적인 의료비 지출 대비 효과는 NHS가 뛰어나다"고 단언했다.

 

"독일은 GDP의 11%, 영국은 7% 정도를 의료비로 쓴다. 사회보험 방식은 상대적으로 사후적인 질병 치료에 많은 지출을 하게 된다. (2차) 병원진료는 비싸다. 그러나 영국은 재정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GP(일반의) 등의 1차진료에 중점을 두고 투자한다. 비싼 병원진료에 대한 낭비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감기에 걸린 사람들도 동네 병원이 아닌 대형 병원을 찾는다. NHS 하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 경쟁이 심해지면서 동네 병원에까지 고가의 의료장비가 설치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넘겨진다.

 

헴프씨도 "영국식은 비용 대비 효과성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심지어는 독일에서도 질병 상태나 필요와 관계없이 개인이 가진 보험의 종류에 따라 서비스 정도를 배분한다"며 "그러나 영국식은 환자의 질병 상태로만 평가해, 필요한 사람 순으로 서비스를 전달하므로 낭비요소가 적다"고 말했다.

 

[NHI, 이래서 좋다] 의사 기다릴 필요 없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박준형씨는 "영국보다 한국 제도가 훨씬 좋다"며 "어느 정도 범위에서 재정 부담을 하더라도 개인의 선택권이 더 보장되는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배분되고 관리되는 '답답한' NHS보다, 한국처럼 개인이 마음대로 선택해 진료 받는 구조를 더 선호한다는 의미였다.

 

가령 이렇다.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중한 병이 아니나, 개인이 느끼기엔 심각해 정밀검사를 받고 싶은 경우가 있다. NHS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요청해도 중한 병이라고 판단되지 않으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독일이나 한국의 경우, 사회적인 적절성 여부와 관계없는 개인의 선택권을 더 많이 보장하고 있다.

 

콘클린씨는 "사회보험 방식의 경우 진료나 처치 등에 있어 일부 비용은 지불해도 개인의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편"이라며 "영국은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선택권적 요소가 도입되긴 했지만, 독일 등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기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원하는 시간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헴프씨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NHS는 매 순간 '기다림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면 사회보험 방식은 진단은 물론 처치에서도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전문가를 찾아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콘클린씨는 "정부의 입김이 너무 센 NHS와 달리 사회보험방식은 정부와의 '파워게임'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존재"한다며 "완전하진 않지만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정치 논리에 말려들지 않고 꾸준히 운영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의료서비스 질은?... "평가 어렵다"

 

'의료서비스 질'에서는 어떤 방식이 우월할까? 헴프씨는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은 상류층에겐 질이 높겠지만, 다수는 아니다. 영국은 개개인의 불만은 터져 나오지만, 사회 전체적인 국민 평균치로 본다면 확실히 미국보단 높을 것이다. 독일 등은 그 중간쯤이 아닐까. 아직 답을 내리기 위한 충분한 크기의 샘플이 없다. 어떤 계급계층에 기준을 둘지, 서비스 질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분석전문가인 콘클린씨도 "현재로선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불충분하고, 중간에 영향을 미치는 고려요소도 너무 많아 파악하기 힘들다"며 "서로의 신념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인 상황"이라고 답했다.

 

향후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의료시장화 쪽으로 가지 않는다면, 길은 두 가지다. 건강보험보장성을 강화해 발전된 형태의 NHI를 갖추는 것. 혹은 영국과 같은 NHS방식으로 방향을 트는 것. 둘 중에 무엇이 더 적절할까?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영국편 특별취재팀

:  남소연·박순옥 기자, 송주민 시민기자


#NHS#영국 NHS#무상의료#사회보험#N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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