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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오리드. 나는 왜 그곳으로 돌아가 나머지 생을 살고 싶은 것일까? 그곳의 무엇이 나를 매혹했을까?
 마케도니아의 오리드. 나는 왜 그곳으로 돌아가 나머지 생을 살고 싶은 것일까? 그곳의 무엇이 나를 매혹했을까?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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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가수 전인권을 인터뷰 한 뒤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기다림을 줄 수 있는 가수를 가진 우리 세대는 행복하다.

무언가를 그리워하거나,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다는 것은 고통인 동시에 생을 견디게 하는 희망이다. 내게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가 그런 존재다. 인구 200만 명 남짓, 공업생산 기반시설 거의 전무, 불과 20년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발칸반도의 시골마을이 왜 내 마음에 들어왔을까?

2011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두 번에 걸쳐 1개월 넘게 마케도니아의 호숫가 작은 마을 오리드(Ohrid)에 머물렀다. 내가 그 마을에 얼마나 크게 매료된 것인지는 당시 심경을 기록한 여행 메모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남은 생 모두를 거기서 보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앞서 전인권 인터뷰에 사용된 문장을 살짝 변용해보자.

돌이키고 싶은 생의 한때가 있는 삶은 불행하지 않다.

저물녘의 오리드 풍경. 현실의 공간 같지 않은 묘한 매력이 있다.
 저물녘의 오리드 풍경. 현실의 공간 같지 않은 묘한 매력이 있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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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일기들, 나는 왜 외국 깡촌에 매료되었나?


어제 저녁,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3시간 정도를 남서쪽으로 달려 '호수가 아름다운' 오리드에 도착했다. 소문은 과장이 섞여있지 않아 이곳은 어린 시절 읽던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조그만 산골마을. 머물고 있는 숙소 3층 발코니에 앉으면 투명한 푸른빛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거기서 아침을 먹고, 어제 밤엔 맥주와 향이 좋은 소시지를 먹고 마시는 소박한 호사를 즐겼다.(2011. 6. 30.)

오늘이 4일째다. 마케도니아 남쪽 끝 시골마을 오리드에서 낮에는 더없이 맑은 옥빛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저녁 무렵이 되면 이곳 재래시장에서 돼지고기나 쇠고기, 감자, 양파, 마늘 따위를 사다가 호스텔 주방에 있는 말린 피망과 바질 가루 따위를 이용해 '유사' 한국식 찌개를 끓여 싸고 맛있는 마케도니아 와인을 마신다. 나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네덜란드, 프랑스, 핀란드, 체코, 호주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별 것 아닌 게임에 열중하는 것도 웃으며 지켜보고, 가끔은 서툰 영어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하며 즐거이, 아주 즐거이 '동유럽의 7월'을 즐기고 있다. 내가 언제 다시 낯설고 물선 여기로 와서 이렇게 얼마간이라도 살아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현재를 더 기꺼이 받아들여 즐겨야겠다.(2011. 7. 3.)

내 안에 어떤 '황무지'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나는 번듯한 것들보다는 '무너진 것들'에 마음이 간다. 여기, 마케도니아 시골마을 오리드가 그렇다. 무너진 성곽과 번듯함과는 거리가 먼 골목들. 또한, 가난하게 늙어가는 사람들.(2011. 7. 5.)

아름다운 동유럽 호숫가에서 아주 편안하게 머물고 있다. 여기 쇠고기는 1kg에 겨우 6000원. 소금과 후추만 뿌려 구워 마늘과 양파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는 근사한 안주가 된다. '스콥 스코'와 '암스텔' '투버그'라는 이름이 붙은 마케도니아-네덜란드-덴마크 맥주를 각각 1병씩 마시고 오늘도 기분이 좋구나.(2011. 7. 9.)

조그만 소읍 오리드에도 중심가는 있어 거길 걸을 때면 유럽과 오스만투르크의 혈통이 섞인 수많은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보게 된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친절함과 선량함이 마음에 든다. 소시지를 굽는 덩치 큰 대머리 아저씨의 착한 웃음, 호기심 많은 마케도니아 10대 소녀들은 보기 힘든 동양인인 나를 '매우, 아주, 몹시' 신기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를 띤다. 귀엽다.(2011. 8. 29.)

오리드, 이곳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유럽 친구들은 '오흐리드' 혹은, '오크리드'라고도 발음하는 도시. 날개만 달아주면 천사가 돼 날아갈 것 같은 인형 닮은 아이들이 거리를 아장거리고, 석양 무렵엔 백조가 유유히 호수를 헤엄친다. 합숙여행 온 열일곱 벨기에 걸스카우트 7명과 낄낄대며 음식을 나눠 먹고, 덩치가 산만한 호주 사내 5명과 맥주를 마시고,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마케도니아 사내 니콜라, 나자르와 배를 타고 근사한 경치를 찾아다니다가, 시네이드 오코너처럼 노래를 잘 하는 아일랜드 초등학교 교사와 재즈바에 가서 랭보와 베를렌이 즐겼다는 초록색 독주 압생트를 마시는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6개월의 '떠도는 여행'을 잠시 멈추고 정착한 도시 오리드에서.(2011. 9. 3.)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정원. 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벨기에 스카우트들이 머물렀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정원. 저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벨기에 스카우트들이 머물렀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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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걸스카우트 6인방, 요즘 앤트워프는 어때요?


'여행이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다름 아니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만약 내가 다시 길고 먼 여행을 떠난다면 그건 새로운 땅과 바다에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위와 같은 즐거운 일기를 쓰던 그해 8월. 머물던 숙소 '써니레이크 호스텔'에서 벨기에 앤트워프에 산다는 발랄한 여고 졸업반 소녀 6명을 만났다. 다음 달(유럽 학제는 9월이 입학 시기인 모양이었다)이면 대학생이 될. 스카우트 대원인 그 아이들은 대학에 다니는 선배 둘의 인솔 아래 이른바 '어드벤처 캠핑'(모험 여행)을 온 것이다. 호스텔 정원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나흘을 묵었다. 

친절하고, 싹싹하며 나이답게 순수한 그 소녀들과의 더듬거리는 영어 대화가 즐거웠다. 벨기에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쓰는 나라. 그럼에도 다들 영어를 곧잘 했다. 나만이 아니라, 여행 중이던 대학 1학년 열여덟 네덜란드 소년 루벤 역시 신이 난 눈치다. 왜 안 그렇겠나. 당신의 열여덟을 떠올려보면 이해되고도 남을 일.

형이 한국 유학생과 친한 탓에 소녀시대와 카라의 뮤직비디오를 봤다는 루벤에게 슬쩍 물었다.

"'걸스 제네레이션(소녀시대)'이랑 쟤들 중에 누가 더 예뻐?"

어색하게 웃으며 우물쭈물 말끝을 흐린다. 재밌다. 나도 마찬가지. 재잘대는 그녀들의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사라진 '청춘'이 복원되는 듯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벨기에 소녀들 중 매우 뚱뚱한 친구가 있었는데 스스로도 전혀 기죽어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그 아이를 따돌리는 기색이 없다는 거였다. '왕따'와 '자살'이란 단어가 신문 사회면 기사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한국 상황이 동시에 떠올랐다. 너나들이로 어울리고, 너나없이 평등하게 마음을 나누는 듯한 그네들을 보며 벨기에 교육의 어떤 면이 '왕따'를 막아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벨기에 소녀들은 낮에는 인근 산에 오르고, 산재한 유적을 찾아다니거나 배를 빌려 섬으로 소풍을 가는 등 '호연지기'(?)를 기르다가 해가 질 때면 돌아와 정원에서 콜라나 우유 따위를 먹으며, 주방에서 서툰 솜씨로 요리를 했다. 누구랄 것도 없었다. 모두가 귀여웠다. 있지도 않은 내 딸들 같았다.

밤이 깊어지면 선배 언니들이 취침을 권했지만, 멀리 여행 온 10대의 마음은 다 마찬가지. 잠이 올 리가 없다. 그럴 때면 마케도니아의 록음악 연주자 나자르가 선배들 몰래 백포도주 1잔씩을 소녀들에게 따라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나이라면 그런 사소한 일탈도 즐거울 것 아닌가. 이윽고 시간이 자정을 넘겨 사위가 고요해지면 나자르가 조용한 곡을 골라 기타를 연주했다. 또래다운 꿈꾸는 눈동자로 그 곡을 허밍 하던 벨기에 소녀들.

마케도니아에서 너나들이로 친해진 라제 파마코스키. 애칭 나자르. 우리는 나자르 아버지의 배를 타고 섬으로 놀러다녔다.
 마케도니아에서 너나들이로 친해진 라제 파마코스키. 애칭 나자르. 우리는 나자르 아버지의 배를 타고 섬으로 놀러다녔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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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유로(약 3000원)짜리 선글라스를 호수에 빠뜨렸다고, 하루 종일 물가에서 놀았더니 피부가 햇볕에 타서 벗겨지고 있다고 칭얼대던 그 소녀들도 이젠 대학 2학년이 됐을 것이다. 금발이 곱던 벨기에 일란성 쌍둥이 자매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그랬다. 왕따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고 자랐으니, 교사가 돼서도 그렇게 가르치겠지.

오리드의 물빛을 닮은 사파이어보다 환하게 밝던 벨기에 소녀 6인방. 앞길이 구만 리 같은 그 친구들의 청춘에 축복의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일상 속에서만 살았다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아저씨가 꾸준히 너희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마.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주인이자 '쿨한' 사나이 지코(좌). 우측 소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붙임성 좋은 스무살 소녀 알리나. 둘 모두 요새도 가끔 페이스북이나 메일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는다.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주인이자 '쿨한' 사나이 지코(좌). 우측 소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붙임성 좋은 스무살 소녀 알리나. 둘 모두 요새도 가끔 페이스북이나 메일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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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에 머문다면 그 동네 친구를 만드는 거다


또 한 사람, 오래 기억에 남을 친구 하나가 떠오른다. 애칭 나자르(본명 Laze Farmakoski). 13살의 나이 차이 탓에 한국에서라면 친구가 되기 힘들었을 나자르. 그러나, 여행은 나이의 벽을 가끔 아니, 자주 허물게 한다.

오리드에 도착한 지 이틀째. 써니레이크 호스텔 정원. 늦은 밤, 훈연한 돼지고기와 마늘을 안주 삼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출렁이는 긴 머리칼을 가진 잘 생긴 사내 하나가 등장했다. 호스텔의 주인인 지코(본명 Gyoko Spaseski)와 친구라고 했다. 점액처럼 보이는 생수병에 든 투명한 액체를 마시고 있었다. 물었다.

"그게 뭐냐?"
"술이다. 우리 집에서 만든 거다."
"이름이 뭐냐? 독하냐?"
"라키아. 알코올 함량 55%다"
"멋지네. 나 독주 좋아한다. 한 잔 줄 수 있나?"
"그래? 이거 정말 '스트롱'한데, 괜찮겠나?"
"걱정마라. 보일러 메이커(폭탄주)에 단련된 몸이다."

마케도니아 전통주 라키아를 마시고 흥겹게 취한 나와 나자르.
 마케도니아 전통주 라키아를 마시고 흥겹게 취한 나와 나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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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다. '술'이 매개가 됐으니 '한국식 인연 맺기'에 가깝다. 첫 만남 이후 나자르는 태어나 처음으로 말을 섞어본 동양인인 내게 '홈메이드' 포도주와 홈메이드 치즈, 홈메이드 샐러드 등을 무한정 가져다줬다. 함께 먹고 취해서 낄낄거리는 일이 잦았다.

나자르와 호스텔 주인 지코를 매개로 '마케도니아 친구 만들기'는 거기 머문 1개월 내내 이어졌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 만나기'. 나머지 친구들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가기로 한다.


태그:#마케도니아, #오리드, #여행,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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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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