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생태철학자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는 세계 강대국의 핵 정책을 몸으로 항의하면서, 인도에서부터 미국까지 2년 반 동안 걸어서 순례를 했습니다. 녹색연합은 이 정신을 계승해 1998년부터 녹색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비무장지대'로 발걸음을 옮겨 한국전쟁의 참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강원도 철원을 시작으로 남북 긴장의 역사인 서해 5도의 최북단 백령도까지, 정전협정 60년의 역사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순례는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9박 10일간 진행됩니다. [편집자말] |
녹색순례단이 걷는 길 곳곳의 얇은 철조망과 역삼각형의 붉은 안내판에 "지뢰, MINE"라고 적혀 있습니다. 철조망 한 줄이 농경지와 지뢰지대를 나누고, 가드레일 한 줄로 도로와 지뢰지대가 나뉩니다.
생명이 움트는 흙 안에 생명을 없앨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살생무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하지만 이내 얇은 철조망 하나를 의지하고, 계속 지뢰지대를 지나며 지뢰에 대한 무서운 감정이 무뎌지곤 합니다.
지금부터 지뢰를 없애도 489년 걸려2011년 7월 집중호우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 기억하시죠?
산사태라는 재해도 문제였지만, 한국전쟁 당시 우면산에 매설되었던 대인지뢰의 유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대인지뢰가 유실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뢰는 어디든 매설 가능성이 있고, 언제든 유실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녹색순례단이 둘째날 걸었던 백마고지 전적비가 있는 정착촌 대마리는 정착이 시작되면서 농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한집 건너 지뢰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올해 4월 접경지역인 경기도 연천군에서 밭을 갈던 농민이 지뢰(대전차 지뢰로 추정됨)로 인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장마기간에는 강화, 연천, 철원 지역에 북한에 매설되어있던 목함지뢰가 강으로 흘러내려와 낚시꾼, 마을 주민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연천 사미천 구간에는 목함지뢰의 위험함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집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이후 비무장지대의 지뢰 제거가 가능했던 것은 위치가 정확히 표시된 지뢰 매설 지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남한의 모든 지뢰를 제거하는데 489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비무장지대에 무작위로 지뢰를 매설하였고. 미군기지를 반환 받으며 미군이 매설한 지뢰의 수 및 지뢰 매설 지도를 전달받지 않아 지뢰 매설지점에 대한 추적도 힘든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매설한 M14, KM14 대인지뢰는 격발부를 제외한 몸체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금속탐지기로 탐지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한국지형 조건상 땅속에 묻혀있는 돌의 철 성분이 오탐지를 불러와 사실상 표준지뢰탐지기(AN/PRS-17K)로는 탐지가 불가능한 지역이 상당합니다.
경사 및 계곡부에 설치하여 유실의 우려도 큰 상황입니다. 현재 남한의 지뢰 매설량은 100만 개로 추정하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지뢰 매설량에 대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군부대에 밉보일까 벙어리 냉가슴 앓는 주민들지뢰사고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 보상 및 배상에 대한 절차를 몰라서(128명), ▲ 군부대에 밉게 보이면 불이익을 당할까봐(33명), ▲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각서 때문(11명)이라는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평화나눔회 2011년 조사, 228명 대상).
현재 "지뢰 등 특정 재래식무기 사용 및 이전의 규제에 관한 법률"외에는 지뢰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법률에는 지뢰피해에 대한 배상 등에 관한 조항은 전무합니다.
수년 전 부터 "지뢰피해자 지원에 대한 특별법"이 발의되고 있으나 국회 계류 중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접경지역인 강원지역 민간인 지뢰 피해자는 228명으로 강원도 자체 조사에서 확인하였고, 경기지역은 300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지뢰 피해자 수치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않는 주민까지 감안하면 더욱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 됩니다.
한국정부는 2009년부터 지뢰제거 및 지뢰 피해자 지원 국제 신탁 기금(International Trust Fund for Demining and Mine Victim Assistance, ITF)에 2009년(2억1660만 원), 2010년(3억3176만 원), 2011년(3억3111만 원)을 기부하고 있지만, 국내 지뢰 제거 및 지뢰 피해자에 지원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ICBL(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의 2012년 지뢰 모니터링 보고서에 "한국 정부는 대인지뢰에 대해 비인도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는 것은 꺼려하고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까지 한반도는 "휴전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뢰 사용이 안보를 위한 최적의 선택이라는 것을 이유로 "지뢰를 생산하지 않고 수출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고 제거해야 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작년 3월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한 ICBL 청소년 대사이자 지뢰 피해자인 송코샬은 초청강연에서 지뢰 피해의 대다수는 민간인이라고 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비지뢰나 불발탄을 만지다 사고가 난 아이들, 밭을 갈다가 매설된 지뢰에 목숨을 잃은 농사꾼. 지뢰는 적군을 살상하기 위해 제작된 잔인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전쟁은 중단되었지만, 전쟁 기간에 매설된 지뢰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자희 녹색연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