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RT로 했어요? 이왕이면 프로로 하죠."지난 주 리뷰용으로 빌린 '서피스 RT'는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부분 키보드까지 딸린 낯선 태블릿에 감탄했지만 정작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한 동료는 '서피스 프로(Pro)'가 아닌 데 실망감을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둘 사이의 결정적 차이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11일 국내 출시된 두 제품 가운데 난 대뜸 서피스RT를 선택했다. 서피스 프로는 이미 살펴봤던 LG 탭북처럼 노트북에 가까운 반면 서피스 RT는 어엿한 마이크로소프트(MS) 첫 태블릿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워드, 엑셀 같은 윈도우용 프로그램들을 태블릿에서 쓸 수 있다는 데 호기심이 생겼다. 아이패드나 안드로이드 태블릿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영상 생중계도 인터넷뱅킹도 '불가'... 윈도우 태블릿 맞아?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오피스 프로그램까지 가보기도 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발목이 잡혔다. 국회 본회의 취재를 갔다 인터넷 생중계를 보려고 접속했더니 동영상 재생이 안 되는 것이었다. 전용 프로그램을 내려 받았지만 막상 실행하려하자 '현재 PC에서는 이 앱(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지시대로 '윈도우 스토어'를 뒤져봐도 국회 생중계를 볼 수 있는 앱을 찾을 순 없었다. 결국 아이폰 '국회의사중계' 앱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갑자기 '컴맹'이 된 듯했다. PC 운영체제(OS)인 '윈도우8'과 태블릿용 OS인 '윈도우RT'의 차이점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윈도우RT 역시 애플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와 같은 모바일 운영체제여서 PC용 프로그램은 실행할 수 없다. 서피스RT에 담긴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오피스 프로그램들 역시 모바일용으로 따로 만든 전용 앱이었던 것이다. 윈도우8과 비슷한 '데스크탑 모드'에 깜빡 속았을 뿐이다.
문제는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는 이미 앱 숫자가 100만 건을 넘겼지만 윈도우 스토어 앱은 지난 4월 5만 건을 넘긴 게 고작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MS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최대 경쟁자인 크롬 웹브라우저도 서피스RT에선 사용할 수 없었다. 최근 마이피플이나 라인, 멜론, 벅스 같이 친숙한 국산 앱도 늘고 있지만 아직 100여 건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서피스RT로 할 만한 '일'이 없었다. 다행히 공인인증서 앱은 있었지만 정작 거래할 수 있는 은행 앱은 기업은행 정도뿐이었다. 이밖에 온갖 보안 프로그램을 내려 받으라고 강요하는 인터넷뱅킹이나 쇼핑몰 결제는 아예 불가능했다. 한국에 '액티브엑스'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마이크로소프트 자신이 판 함정에 서피스RT가 제대로 걸려든 셈이다.
외형은 수준급... 앱 부족으로 '쓸모'는 아이패드 못 미쳐가격도 비싼 편이다. 국내 출시가 6개월이나 늦었지만 가격은 60~70만 원대로 4세대 아이패드와 맞먹는다. 과연 그 만한 값어치를 할까? 먼저 외형과 휴대성을 살펴봤다. 서피스RT는 지금까지 태블릿들과 달리 22도 각도로 세울 수 있는 접이식 받침대(킥스탠드)와 USB, 마이크로 HDMI 단자가 눈에 띈다. 몸체는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느낌을 주지만 무광택인데도 지문이 잘 묻어났다. 커버 역할을 하는 키보드나 전원 연결 부분에 강력한 자석을 사용해 탈부착이 쉽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외형 완성도는 합격점을 줄만했지만 휴대성은 다소 아쉬웠다. 10.6인치 화면에 무게 680g, 두께 9.3mm로 새 아이패드(9.4mm, 635g)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16대 9 화면비로 가로가 길다 보니 한손으로 들고 보는 데는 불편했다. 커버 역할을 겸하는 키보드를 접어서 볼 때는 자판이 만져지고 후면 카메라 렌즈를 반쯤 가리기도 해 거추장스러웠다. 또 아이패드 전용 커버와 달리 5mm 두께에 무게도 218g 정도여서 본체와 함께 들고 다니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키보드 커버는 '별매'여서 15~16만 원 정도 주고 따로 사야 하지만, 워드, 엑셀 같은 문서 작업이 잦은 서피스RT 특성상 필수품이기도 했다. 압력 센서를 이용한 '터치형 커버'는 직접 써보지 못했지만 실제 키보드 느낌을 살린 '타이핑형 커버'는 노트북과 큰 차이가 없었고 트랙패드 감도도 좋았다. 다만 커버를 뒤로 젖히면 일단 키보드 입력이 중단되는데 다시 키보드를 펼쳤을 때 입력이 원활하지 않는 오류도 있었다.
서피스 프로보다 휴대성 등 장점도... 'MS 천국'에선 안 통해
상위 버전인 서피스 프로에 비해 서피스 RT도 나름 장점도 갖고 있다. 일단 32GB 제품이 62만 원, 64GB 제품이 74만 원으로, 서피스 프로(64GB 110만 원, 128GB 122만 원)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또 서피스 프로와 달리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MS 오피스2013 RT 버전도 포함돼 있다. 휴대성도 두께 13.5mm에 무게 903g에 달하는 서피스 프로와 비교할 수 없다. 저전력 ARM 기반 모바일 프로세서를 쓴 덕에 사용시간도 최대 8시간에 달한다.
실제 서피스 프로는 PC용 인텔 i5 프로세서에 '윈도우8프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노트북PC다. 다만 LG 탭북이나 삼성 아티브처럼 키보드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휴대성을 강화해 태블릿처럼 쓸 뿐이다. 또 서피스 프로는 윈도우8 운영체제 용량만 45GB에 달해 출시 초기부터 저장 공간 부족 논란에 휩싸였다. 서피스 RT도 운영체제가 16GB 정도를 차지해 용량 부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서피스RT는 누구를 위한 제품일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서피스RT 32GB 제품을 단 199달러(약 23만 원)에 교육기관에 제공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미국 출시 6개월이 넘도록 시장에서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한 데 따른 고육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태블릿 역할을 제대로 하기엔 앱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PC용 프로그램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서피스RT가 설 자리는 너무 좁다. MS가 만든 윈도우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액티브엑스 천하인 한국에서 애플 맥이나 리눅스 기반 크롬북 등 '아웃사이더'들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처럼 서피스 RT도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서피스 RT의 '고전'은 MS가 어느 정도 자초한 셈이다.